지난해 어느날 동생에게 카톡이 왔다.
"언니가 여우인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상여우인 줄은 몰랐네. 나랑 달라도 너무 달라. 짜증 나 정말."
나에게 무엇인가를 부탁했는데 들어주지 않자 분노와 서운한 감정을 담아 장문의 글을 보내온 터였다. 앞뒤에 붙은 내용을 종합하면 곧 의절을 해도 이상하지 않을 법한 글이었다. 유리잔 깨지는 것 같을 동생의 목소리가 귓전에서 들리는 듯했다.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메시지를 읽다가 눈길이 멈춘 건 '상여우'라는 표현에서다. 막장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단어처럼 보였다. 내 입으로는 한 번도 써본 적이 없는.
훗날 지인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네가 무슨 여우냐"며 고개를 흔들었지만 문자를 받았을 때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상.여.우. 어떻게 알았지?
동생의 말처럼 우리는 어른이 되고부터 사는 방식과 세상을 보는 시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그 차이는 내가 한국을 떠나오면서 더욱 벌어졌고 이제는 지구와 해왕성의 거리만큼 멀어져 서로를 이해하려야 이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씀씀이가 헤프고, 미래를 생각하지 않으며, 작은 것에 쉽게 화를 내는 그녀가 나는 늘 안타까웠다. 하지만 안타까운 건 안타까운 거고, 그것 때문에 내 인생에 손해를 감당하고 싶진 않았다. 특히 내 가족을 꾸린 뒤로는 더더욱.
자라면서 늘 불평과 불만이 많았던 동생은 중고등 시절 갖가지 하소연을 고스란히 나에게 토해내곤 했다.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그걸 듣다가 질린 탓이었을까. 어른이 된 후로도 가끔 카톡 메시지를 받으면 이야기가 길어질까 봐 바쁜 척하기 일쑤였다. 남자를 만나도 내 머리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이들을 만났고 간이 커서 대출을 받아 다양한 사업도 척척 벌였다. 하다가 망하는 건 수순이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동생에게 이기적이 되기로 했다. 사회에 나와서는 호쾌함과 큰 목소리로 무장한 채 타인의 호감을 사며 그들을 살뜰히 보살피는 마음을 동생에게는 주지 않은 것이다. 하나밖에 없는 나의 핏줄. 사랑하지만 그렇기에 나는 이기적으로 굴었다. 미워하기 싫어서다.
"엄마, 걔가 나랑 의를 끊을지도 몰라. 어떡해?"
"아이고 엮어봤자 너만 피곤해. 차라리 모른 척하고 살아."
동생의 피곤한 성격을 아는 엄마는 각자의 방식대로 살라 했다. 서로에게 도움의 손길 안 벌리고 사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엄마기에 그렇게 말한 거였다. 엄마는 나에게도 뭘 받으려고 하지 않는다. 나의 걱정과는 다르게 혼자만의 분을 삭인 동생은 며칠 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카톡으로 말을 걸었다. 나는 안도의 숨을 쉬며 문자 사건을 모른 척했다.
앞으로도 그 애는 나를 상여우라 여기며 살 것임을 직감했다. 어쩔 수 없다. 다만... 괴로운 점이 하나 있다. 두 살 터울인 동생과 나는 어릴 적 함께 나눈 추억이 많다. 걔 덕분에 한 번도 심심하다 느껴본 적이 없다. 친구들보다 동생과 하는 인형 놀이가 언제나 더 재미있었다. 둘 다 연기력이 뛰어난 덕분에 인형 놀이를 할 때마다 한 편의 연극을 무대에 올리는 기분이었다. 하소연도 자주 했지만 내 방으로 베개를 들고 온 동생과 좁디좁은 싱글 침대에 누워 밤새 이야기꽃을 피운 적도 많았다. 떠올리면 포근한 추억인데... 우리는 어느 지점에서부터 이렇게 어긋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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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여우가 되는 마음은 슬픈 마음이다. 나는 이기적이다.
새해에는 흘러가는 시간을 잠깐 멈추어 세워 나의 '일상을 살피는 마음'을 가지려고 합니다. 의미 없이 지나친 순간도 그러모으면 하루를 사는 비타민 한 줌이 될 거라 믿어요. 아무리 바빠도 매일 글 쓰는 작가 여섯이 꾸려가는 공동매거진 <일상을 살피는 마음>을 구독하고 당신의 일상에도 영양을 듬뿍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