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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글음 Mar 02. 2024

초코파이 재료명을 확인하는 마음

친한 언니가 우리 집 올 때 사들고 온 한국산 '초코 찰떡 파이'의 상자를 들여다보다가 앞 면에 써진 문구를 읽게 되었다. 과자에 들어간 대표 재료의 이름과 그것이 각각 얼마나 들어 있는지 써 놓은 거였다. 


준초콜릿 16%, 땅콩버터 4%, 찹쌀 2.8%, 땅콩분말 0.6% 


별생각 없이 숫자를 더했다. 23.4%. 그리곤 궁금해졌다. 나머지 77%는 무엇으로 되어 있을까? 밀가루? 그리고 음... 밀가루랑... 밀가루랑... 초콜릿? 아니지. 준초콜릿은 이미 16%가 들어갔다고 했잖아. 상자를 이리저리 돌려보면 나와 있을 재료명을 괜히 스스로 맞춰보고 싶어 머리를 굴렸지만 떠오른 건 밀가루 밖에 없었다. 


동시에 준초콜릿은 또 무언가 하는 문제에 봉착하고 말았다. 검색해 보니 카카오 함량이 7% 이상 20% 미만인 초콜릿을 뜻한다고 한다. 카카오버터 대신 대용유지를 사용한다고. (사실 뭔 말인지 모르겠다.) 하는 수 없이 재료명을 확인했는데 생각보다 빽빽이 들어찬 가짓수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올리고당이 가장 먼저 나왔다는 건 그게 가장 많이 들었다는 뜻일까? 혼합분유에 설탕, 땅콩버터까지는 알겠는데 계속 읽다 보니 사건은 점점 미궁으로 빠져든다. 말티톨시럽, 덱스트린, 쇼트닝, 레시틴. 학교 다닐 때 들어본 것 같기도 하다. (나는야 식품영양학 전공자!) 그다음은 폴리글리세린지방산에스테르, 프로필렌글리콜지방산에스테르? 아따, 이름 한 번 길다.


그 사이 중간보다 더 뒤쪽에서 얌전히 들어앉은 이 세 글자를 찾았다. 밀. 가. 루! 초코파이의 대부분이 밀가루가 아니었을까 생각했던 나의 짐작은 제대로 틀렸다. 그러니까 초코파이는 초코와 단 것들을 섞어 이름도 어려운 여러 첨가물을 넣어 만든 것이었다. 


더 놀란 건 굵은 글씨로 써진, 재료가 만들어진 나라 이름들이다. 그때 깨달았다. 고작 과자 하나 만드는 데도 세계화가 이루어지는구나!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 유럽까지 가세해야 쫄깃쫄깃한 찰떡 파이가 탄생한다니 세계가 손잡고 한국 파이를 만들었음에 하마터면 인사를 할 뻔했다. 


"여러 나라님들, 이렇게 재료를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불금의 반나절을 과자 재료명을 따지며 보내다 보니 갑자기 배가 고파졌다. 두 초코판 안에 쫀득한 내용물이 들어간 초코 찰떡 파이를 하나 뜯어먹을까 하다가 폴리글리세린지방산에스테르가 생각 나 라면을 끓였다. 끓이는 김에 라면 재료명도 살폈다. 오, 밀가루가 88%! 근데 이건 뭐지? 


산도조절제: E501, E500, E339                                                                                                                          


암호인가? 라면에 산도는 왜 조절하지?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우린 뭘 먹고사는 거지?




새해에는 흘러가는 시간을 잠깐 멈추어 세워 나의 '일상을 살피는 마음'을 가지려고 합니다. 의미 없이 지나친 순간도 그러모으면 하루를 사는 비타민 한 줌이 될 거라 믿어요. 아무리 바빠도 매일 글 쓰는 작가 여섯이 꾸려가는 공동매거진 <일상을 살피는 마음>을 구독하고 당신의 일상에도 영양을 듬뿍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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