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다음 주 월요일까지 상영한다기에 영화 <파묘>를 보고 왔다. 아이들을 집에 두고 혼자 버스를 타고 극장에 갔다. 영화를 보기 전엔 카페에 가서 커피를 한 잔 했다. 에스프레소를 시켰는데 너무 써서 결국 물을 타서 마셨다.
마법, 초능력, 귀신, 좀비 등이 나오는 영화를 즐기지 않는다. <파묘>는 그런 영화였다. 아무래도 상관은 없었다. 좋아하는 한국 배우들이 나오는 영화를 자막도 없이 그것도 혼자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주어진 시간을 즐길 충분조건은 갖춰졌으니.
한국 사람으로 추정되는 남자 한 명과 외국 사람으로 추정되는 또 다른 남자 한 명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 영화를 보았다. 혼자가 아니라 다행이라 생각했다.
다 보고 극장을 나오니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환할 때 들어갔는데 어두워졌다. 저녁 7시가 넘었다. 맥주 한 잔 할까 잠깐 고민하다가 집에 가기로 했다. 버스 시간에 늦을까 봐 정류장까지 뛰어갔다. 미세한 수분 입자가 안경에 부딪혔다. 앞을 보는데 좀 방해가 되었지만 닦기 귀찮아 그냥 두었다.
뛰니까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 들숨과 날숨이 가빠지자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지 기분이 업됐다. 도시의 밤거리를 뛰어본 게 얼마만일까. 조해진의 소설 <로기완을 만났다> 속 주인공인 로기완은 영국 런던에 사는 걸로 되어 있는데 <파묘>는 봤을까, 외롭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버스가 왔다.
어떤 영화는 영화 내용으로 기억되지 않는다. 그때의 분위기나 일어났던 일 같은 걸로 남는다. 나에게 영화 <파묘>는 비 오는 에든버러 밤거리를 가슴 설레며 뛰었던 장면으로 남을 것이다. 봄이 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