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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자발적인 볼런티어 활동

가든센터, 만들기 교실에서 봉사활동을 하다

by 영글음

작년 6월부터 볼런티어 - 자원봉사 활동을 시작했다. 스코틀랜드에 온 뒤 오래전부터 해보고 싶긴 했는데 생각과는 달리 실행에는 속도가 붙지 않았다. 내가 태어나서 봉사활동을 해본 적이 있던가. 대학교 때 교양수업을 들으며 보육원에 몇 번 가긴 했지만 그건 봉사라기보다는 수업 참여였다. 이 나라에 와서도 늘 시간에 쫓기며 살다 보니 대가 없이 봉사를 한다는 건 결단이 필요했다. 내 시간을 내어주겠다는 결단, 영어 쓰는 사람들을 만나겠다는 용기 같은 거 말이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시작을 못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집으로 날아든 전단지 속에서 볼런티어를 구하는 광고를 봤다. 집에서 15분 정도 떨어진 옆 동네 가든센터에서 구하고 있었다. 영국에서 가든센터란 온갖 종류의 식물과 정원 관련 용품들을 파는 곳이다. 전국에 체인을 갖고 있는 대규모 상점이 있는가 하면 동네마다 개인이 운영하는 크고 작은 센터가 아주 많다. 어떤 곳은 식물원처럼 잘 꾸며 놓기도 했다.


그런데 가든센터에서 웬 자봉? 직원을 구할 것이지. 자세히 읽어 보니 일반 상점 같은 곳은 아니었다. 멘탈이 어쩌고 헬스가 어쩌고 하는 문구가 있었다. 뭐지? 멘탈과 가든의 관계란? 정신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곳인가? 전단지 귀퉁이에 조그맣게 난 광고라 자세한 설명은 없었다. 하지만 가든센터라는 말에 마음이 움직였다. 아름다운 꽃과 식물들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전화를 하고 약속을 잡았다.


주소를 보고 찾아간 사무실에서 나는 매니저인 캐빈과 에밀리를 만났다. 두 사람은 센터 운영 이래 첫 볼런티어 광고를 낸 뒤 맨 처음으로 찾아온 사람이 나라면서 환한 미소로 맞아 주었다. 커피잔을 앞에 두고 면접(?) 비슷하게 묻고 답하는 시간이 오갔다. 단체의 정확한 명칭은 <The Brock>. 만성적인 정신 관련 질환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원예, 목공예, 수공예 등의 활동을 통해 치료를 돕는 사회적 자선단체라고 했다. 허, 너무 거창한 곳에 온 건 아닐까?


그들은 원예 치료와 수익 창출의 일환으로 자그마한 가든센터를 운영 중이다. 설명을 들을수록 지금 내 코가 석자인데 남을 도울만한 상태인가 싶었지만 대화가 끝날 무렵에는 벌써 그들과 악수하며 다음 주부터 나오겠다는 망발을 한 나를 발견했다. 나는 항상 생각보다 말이 앞서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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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봉사 활동을 했던 가든센터


센터에는 키가 크고 훤칠하게 생긴 젊은 남자 원예치료사가 정직원으로 있다. 그 외에 센터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요일마다 달라지지만 대개 5-6명쯤 되는데, 모두가 정신 관련 크고 작은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그들을 클라이언트라 부른다. 맨손으로 흙을 만지며 꽃과 식물을 가꾸는 일이 클라이언트들에게는 사회참여이자 치료를 돕는 과정이다.


볼런티어는 일주일에 두 번, 세 시간씩 하기로 했다. 나에게 주어진 임무는 클라이언트를 도와 식물을 관리하고 고객에게 판매를 하는 일이었다. 각종 꽃의 이름을 외우고 판매기 다루는 법을 배웠다. 하지만 센터 자체가 마을의 구석진 곳에 있는지라 고객은 많지 않았다. 대부분 화분에 물을 주거나 조그만 식물을 큰 화분에 옮기는 일을 했고 나머지 시간에는 클라이언트들과 커피를 마시며 보냈다.


일자리를 얻은 건 아니지만 일주일에 두 번씩 일정하게 참여하는 봉사활동은 새로운 충족감을 안겨주었다. 시간을 달리하여 꽃을 피워내는 여러 식물을 보는 재미도 있었고 나도 이 사회를 위해 쓸모 있는 활동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으며 헐겁지만 소속감 비슷한 게 생기기도 했다.






9월이 되자 가든센터는 한가해졌다. 철 지난 꽃들을 할인하여 판 뒤로는 더 이상 새 식물을 들이지 않았다. 가든센터를 확장할 계획이라 그 공사를 먼저 할 거라고 했다. 그러자 내가 할 일도 줄어들었다. 마침 에밀리가 새로운 제안을 했다.


"영글음, 내가 곧 우리 클라이언트를 대상으로 크래프트 교실을 열 건데 그것 좀 도와줄 수 있을까?"


나는 그러마 했다. 어차피 가든센터에서는 할 일이 없었으니까. 그렇게 볼런티어 시작 3개월 만에 가든센터에서 만들기 교실로 자리를 옮겼다. 그 후로 우리는 주얼리, 마크라메, 카드, 모자이크, 펠트 공예 등 각종 만들기 교실을 열었다. 재료 수집의 명목으로 바닷가와 공원 등으로 도시락 싸들고 소풍을 가기도 했다.


그런데 암만 봐도 가든센터나 만들기 교실에 참가하는 그들이 우리의 클라이언트라는 게 믿기질 않았다. 전혀 마음이 아픈 사람들 같지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개개인이 어느 문제가 있는지 자원봉사자인 나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만들기를 할 때마다 웃고 수다를 떨며 서로가 만든 작품을 칭찬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모두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인다. 20대 아가씨도 있고 손주가 열명이나 되는 할머니도 있다. 거동이 불편해서 지팡이를 짚고 오는 이도 있지만 얼굴에 삶의 그늘 같은 것이 드러나 보이지는 않는다.


그제야 깨닫는다. 정신적인 문제들은 겉으로 봐서는 단박에 티가 나지 않는다는 것을. 가슴속에 어떤 분노를, 불안을, 짐을 안고 사는지 본인 스스로 말하지 않고는 다른 이들이 알아차리기란 쉽지 않다. 범인이 얼굴에 '나 범인이요'하고 써붙이고 다니는 게 아니듯 정신 질환이 있는 사람도 '나 멘탈에 병 있소'하지는 않는다.


그걸 알고 나니 내 주변에 행복해 보이는 어느 누군가도 정신적으로는 끙끙 앓고 있는 사람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 또한 나도 그들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강박, 불안, 우울 등등 살면서 때때로 느끼는 감정들에 빠져 허우적거렸던 날들이 빠르게 스쳐지나간다. 크기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살면서 정신적인 문제에 맞닥뜨리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우리는 모두 잠재적 클라이언트일지 모른다.


<The Brock> 센터에 찾아와 이런저런 활동에 참가하는 이들은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어떻게든 극복하고 이겨내려고 방법을 찾는 용기 있는 자들이다. 일주일에 고작 3시간씩밖에 안 하는 프로그램이 얼마나 큰 효과가 있을까 싶었지만 한 텀이 끝나고 남겨진 평가서에는 큰 도움이 되었다는 평가가 줄을 잇는다.


집에 혼자 있으면 누워서 멍 때리다가 우울해지는데
센터 나와서 사람들 만나니까 너무 좋아요.


클라이언트 중 한 명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볼런티어를 하면서 충족감을 느낀 것과 마찬가지로,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수업에 참가해서 손을 움직여 무언가를 만들며 충족감을 얻고 최소 그 시간 동안은 정신적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이들의 문화가 진심으로 부러웠다. 마음이 아프면 바로 정신과 의사를 만나 치료를 받고 동네에 마련된 무료 프로그램에 참가하여 만들기를 할 수 있는 이들의 사회 시스템이 부럽다. 우리는 이런 문제를 개인의 정신력으로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정신이 약해 빠졌다는 둥, 그런 정신 상태로 어떻게 살아 남으려냐는 둥 이해하기보다는 못난 사람이라고 낙인찍으려는 분위기다. 만약 <The Brock> 같은 사회적 단체가 한국에 있다고 해도 사람들이 쉽게 참여하지는 못할 것 같다. 남들 눈이 무섭기 때문이다.


만들기 교실에서 내 역할은 매니저와 함께 수업 준비를 하고 수업 시간 중 클라이언트들이 만들다가 어려워하면 도와주는 것이었다. 그런데 대부분 잘했기 때문에 조금씩 도우며 나도 내 작품을 만들다 오고는 했다. 남을 도우러 간 봉사활동에서 다양한 공예 기술을 배운 셈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의 손기술도 늘어갔다. 센터와 자원봉사자. 쌍방 간 윈윈이란 이럴 때 적합한 단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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