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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당 송영대 May 31. 2016

고전에게 길을 묻다 #1

남을 위한 삶이 진정 나를 위한 삶이다.


‘어려서부터 우리집은 가난했었고 남들 다하는 외식 몇 번 한 적이 없었고 일터에 나가신 어머니 집에 없으면 언제나 혼자서 끓여먹었던 라면, 그러다 라면이 너무 지겨워서 맛있는 것 좀 먹자고 대들었었어. 그러자 어머님이 마지못해 꺼내신 숨겨두신 비상금으로 시켜주신 자장면하나에 너무나 행복했었어. 하지만 어머님은 왠지 드시질 않았어. 어머님은 자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어머님은 자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GOD의 〈어머니께〉라는 노래의 가사입니다. 울림이 있는 노래이지요.

     

제가 어렸을 적 우리집도 가난했었습니다. 그 가난은 부모님 세대에서부터 이어내려 온 것이었지요. 부모님은 그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피나는 노력과 폭우 같은 땀을 흘리곤 하셨습니다. 마치 굶주린 배를 안고 쉼 없이 돌아가는 기계처럼 말입니다. 이 집 저 집 전전긍긍 이사를 다니며 동네 구멍가게를 하셨던 부모님께서는 우연한 기회에 건축업을 시작하게 되셨습니다. 다행이 사업은 번창하였고 남부럽지 않은 살림을 꾸리게 되었습니다. 집안 형편은 점점 나아졌지만 행복 수치가 높아지지는 못했습니다. 사업이 번창할수록 부모님의 다툼이 많아졌기 때문이지요. 서로 의견의 일치되지 않고 집안에 두 분의 언성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올랐습니다. 서로 자신의 생각만 옳고 상대의 생각은 잘못되었다는 이기적인 생각의 차이가 소통이 아닌 먹통과 불통을 불러온 결과였지요. 물질적인 여유가 생기자 부모님께서는 다른 일에 손을 대기 시작하셨고 가세는 다시 기울기 시작하여 힘들게 모은 재산은 옛 추억이 되어버렸습니다.

어려서부터 부모님의 다툼을 곁에서 지켜보며 성장을 했고 어느 덧 성인이 되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인이 되었지요. 하지만 부모님의 다툼은 여전히 꺼지지 않는 용광로와 같았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활활 타오르고 더욱 뜨거워졌지요. 그때부터였습니다. 부모님께서 다투시는 날이면 집에 들어가기가 싫어졌습니다. 그런 날이면 회사에 야근이 있다는 핑계를 대고 외박을 했고, 외박을 하는 날이면 술을 벗(友) 삼아 밤을 지새우게 되었죠. 그런 날들이 하루 이틀 늘어가면서 술값은 카드 값으로 쌓이게 되고, 티끌이 모여 태산을 이루듯 카드 값은 점점 쌓이더니 월급으로 감당할 수 있는 한도를 넘어 빚이 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빚은 대출로도 감당을 할 수 없게 되었고, 결국 술값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사채에 손을 댈 수밖에 없었습니다. 백수도 아닌 직장인이 노름 때문도 아니고 술값 때문에 사채에 손을 대다니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지요. 그렇게 중소기업과 벤처기업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기업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15년이라는 시간을 방황과 방탕 그리고 방랑을 하며 흘려보냈습니다.

     

“지금 네 곁에 있는 사람, 네가 자주 가는 곳, 네가 읽는 책이 너를 말해준다.” 괴테의 말입니다. 발걸음의 방향을 바꾸면 만나는 사람이 바뀌게 되고, 만나는 사람이 바뀌면 곁에 있는 사람이 바뀌게 되지요. 또한 목표가 생기면 읽는 책도 바뀌게 됩니다.

직장생활 14년차 되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퇴근을 하면 매일 술집과 당구장 배회하던 제가 발걸음의 방향을 강연장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소설가 김홍신선생님의 강연을 듣기 위해서였지요. 그날 90분 강연을 듣고 세 가지를 가슴에 담게 되었습니다. 첫째, 행복은 항상 내 곁에 있고 내 마음 속에 있다. 둘째, 남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나 자신부터 변화해라. 셋째, 나보다는 남을 위한 삶을 살아라.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배우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는 것이 없고, 생각만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 學而不思則罔(학이불사즉망), 思而不學則殆(사이불학즉태).”라고 하셨습니다. 배웠으면 생각하고 실천을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해서 김홍신선생님의 가르침을 하나씩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첫 번째는 바로 공부였습니다. 술집과 당구장의 발걸음을 끊고 강연장과 서점을 찾아다니기 시작한 것이지요. 이것은 바로 나 자신에 대한 변화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렇게 배움을 시작하니 한 가지 욕심이 생기더군요. 배운 것을 팀 동료들과 함께 공유를 하고 싶어졌습니다. 해서 강연장에서 배운 것을 정리하여 팀 동료들에게 메일로 전달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이 메일을 본 옆 팀의 동료가 내용이 좋다며 함께 공유를 해달라고 하더군요. 기쁜 마음에 함께 전달해 주었지요. 이렇게 자기계발을 하며 내 삶의 변화를 조금씩 이끌어가게 되었습니다.

2010년 8월1일 인생2막의 커튼이 열렸습니다. 15년의 직장생활을 뒤로 하고 일명 백수의 삶, 좋은 표현으로는 1인 기업가의 길을 선택하고 첫 걸음을 내딛게 된 것이지요. 그때의 나이 마흔. 미혹(迷惑)하지 않고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하는 불혹(不惑)의 나이에 IT엔지니어의 삶에서 글쟁이 삶으로의 무모한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이런 제 모습을 보고 시쳇말로 ‘맨땅에 헤딩’이라고들 표현하지요. 준비된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냥 하고 싶었기에 첫 발을 내딛었습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도 꽤나 어울릴 듯합니다.

직장을 나오기 전에 한 가지 시작한 것이 있습니다. ‘나보다 남을 위한 삶’으로 무엇을 실천할까를 고민하다가 2009년 11월2일부터 ‘월요편지’라는 것을 시작하였습니다. 직장인들의 월요병을 치유해 주기 위한 목적으로 좋은 글을 써서 메일로 배달을 하였지요. 그 당시 제1회 메일을 받아 본 동료들의 반응은 그리 달갑지 않았었습니다. 그들의 표현을 빌리면 이렇습니다.

“네가 드디어 미쳐가는 구나.”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는다는데 혹시 죽을 때가 된 거냐?”

“네가 언제까지 하는지 지켜볼게. 100회까지 달성하면 찐하게 술 한 잔 사마.”

이런 내용의 답장들은 제 의지를 더욱 불태워 주었습니다. 동료들의 무시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시작한 월요편지는 7년차를 맞이하였고, 지난 월요일까지 총 342주 동안 한 번의 빠짐없이 실천하여왔습니다. 다가오는 11월이면 만으로 7년 됩니다.

월요편지를 시작하게 된 것은 한상복님의 《배려》라는 책을 읽고 ‘책 속의 주인공을 따라 하기’로 시작을 한 것이었습니다. 월요편지를 작성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5년 동안은 수없이 찾아 다녔던 강연 중 좋은 내용의 녹취 내용을 텍스트로 바꾸어 편집을 하였습니다. 보통 90분 강연을 텍스트로 변화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8~9시간 정도 소요됩니다. 그 작업을 일주일에 한 번씩 한다는 것은 고통의 시간이었습니다. 오랜 컴퓨터 작업으로 인하여 손가락과 손목이 정상 상태가 아니기에 더욱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남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현재로서는 그것이 전부라고 여겨졌기 때문이지요. 강연의 내용을 사실에 근거하여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녹음된 내용을 지속적으로 반복해서 들어야 했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수없이 많은 날들을 남을 위해 투자한 시간은 결국 수행의 시간이었고 내 자신의 내공으로 쌓인다는 것을 말입니다. 이 과정을 통해 3년 전 《행복은 희망에서 싹튼다》라는 제목으로 한 권을 책을 출간함으로써 작가로서의 첫 걸음을 내딛게 되기도 하였습니다.

나보다 남을 위한 삶으로 시작한 것은 월요편지 뿐만이 아닙니다. ‘고전 일독일습’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3년 전 페이스북에 동양고전을 매일 한 구절씩 읽고 필사하여 올리기를 시작하였습니다. 고전 일독일습을 시작하면서 혼자 하는 것보다는 페이스북 친구들과 함께 하면 더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습니다. 하여 ‘고학사(고전을 함께 학습하는 사람들)’을 모집하여 함께 고전 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어느덧 1,000일을 넘기게 되었습니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처럼 고전 일독일습을 통해 혼자가 아닌 여럿이 함께 공부하였던 것이지요. 함께 공부하는 모임을 이끌어가다 보니 이제는 함께 하는 회원들을 위해서라도 활동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고학사 분들은 저와 함께 고전 일독일습을 통해 하루를 시작하고, 짧은 시간이지만 오롯이 자기성찰의 시간으로 여겨 왔습니다.

고전 일독일습은 오늘로서 1,031일이 되었고, 《순자》, 《논어》, 《대학》을 비롯하여 《중용》의 필사를 마쳤습니다. ‘끄트머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전적으로는 ‘끝이 되는 부분’라는 의미이지만 요즘은 ‘끝은 새로운 시작’이라는 의미로도 많이 회자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내일부터는 《맹자》 필사 시작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 또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철학자 들뢰즈는 인생을 ‘주름’에 비유하였습니다. 그것은 소설가 이외수선생님께서 학창 시절 스승님으로부터 배우신 “세월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쌓이는 것이다.”라는 것과 일치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시간은 강물처럼 쉼 없이 흐르지만 나이가 들면 주름이 늘어나는 것처럼 세월도 차곡차곡 쌓인다는 것이지요.

고전 일독일습을 꾸준히 실천한 결과 1,000일을 맞이하게 되었던 지난 4월19일에는 스승님으로 모시고 있는 소설가 이외수선생님으로부터 ‘원고지로 지은 집’이라는 의미가 담긴 고당(稿堂)이라는 호(號)를 하사 받게 되었고요. 내설악 예술인촌에서 돌에 생명을 불어넣고 계시는 전각장인 김주표선생님으로부터 돌로 제작된 낙관(落款)을 선물로 받기도 하였습니다. 참으로 영광스러운 순간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직장을 그만 두고 자유로운 영혼 백수의 삶을 살아가면서 지난 6년 동안 자기계발와 인문학(동양고전) 공부에만 집중하였습니다. 조선시대로 본다 치면 간서치(看書癡) 즉 책만 읽는 바보로 살아온 것이지요. 때문에 생활고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고 여러 가지 경험을 해야만 했습니다. 처음에는 생활비가 없으니 끼니 굶기를 밥 먹듯 해야 했고, 월간 잡지사에 글을 기고하면서 근근이 끼니를 해결하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자존심을 내팽겨 치고 사업하는 친구의 일터에서 일당 오만 원짜리 단순 작업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습니다. 심지어는 먼지 나는 공사장에서 노가다 아르바이트도 마다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공부와 글쓰기를 멈춘 적이 없습니다. 이 일은 제가 하고 싶어서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포기하고 선택한 것이니까요.

     

서두에 언급했습니다만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를 만들고, 오늘의 내가 내일의 나를 만든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살아온 날들 즉 빅데이터에 의해서 미래가 결정된다고 했습니다. 약 7년에 이어온 ‘월요편지’와 1,000일을 넘게 실천하고 있는 ‘고전 일독일습’을 멈춤 없이 실천해 간다면 현재 342주째 진행되어 온 월요편지는 842주째 진행이 되어 1,000주를 바라보고 있을 것이고, 1,031일째 실천해 온 고전 일독일습은 4,681일을 유지하게 될 것입니다. 이 과정을 통해 월요편지는 지속적으로 책으로 출간이 될 것이며, 고전 일독일습은 《순자》, 《논어》, 《대학》, 《중용》, 《맹자》는 물론이며 《시경》. 《서경》, 《역경》 등의 사서삼경을 넘어 여러 고전을 정독하고 필사를 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상상해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서당 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속담이 있고, 식당 개 삼년이면 라면을 삶는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습니다. 작년 11월 소설가 이외수선생님의 제자가 되어 가르침을 받고 있으니 아마도 10년 후에는 어쩌면 소설가가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싹은 솟았어도 꽃을 피우지 못하는 것이 있구나. 꽃은 피어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이 있구나. 苗而不秀者有矣夫(묘이불수자유의부). 秀而不實者有矣夫(수이불실자유의부).”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모든 행위가 달콤한 열매를 맺지 못할 수도 있다는 뜻으로도 해석을 할 수 있고, 결과보다는 과정을 더 중요시 여기라는 뜻으로도 해석을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지난 6년 동안 공부만 하면서 많은 어려움과 고통을 참고 견뎌왔습니다. 하지만 아직 이렇다 할 결실을 맺지는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실망을 하거나 좌절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이 앞으로의 날들을 더 밝게 비추어 줄 것을 믿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희망이라고 부르지요. “땅은 사람을 속이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땅은 정직하다는 뜻이지요.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흘리는 땀방울도 사람을 속이지 않습니다. 어제 그리고 오늘 내가 발품을 팔고 흘린 땀방울은 내일을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에 합당한 보상과 대가를 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지요. 그렇기에 우리는 지금의 순간을 헛되이 살아가서는 안 되며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지나온 46년의 삶이 그리고 앞으로 살아낼 나날들이 10년 후 미래의 모습을 만들게 될 것입니다. 그 모습은 어쩌면 소설가 한강작가님처럼 2026년 맨부커상의 수상자가 되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지요. 비록 맨부커상과 같은 멋진 상을 수상하지 못하더라도 지금보다는 조금 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가는데 작은 힘을 보태는 한 사람이 되어 있으리라 생각 됩니다. 작년 지역아동센터에서 중학생 친구들을 대상으로 시작하게 된 고당(稿堂) 송영대의 인문학당 운소치(雲笑治)를 통해 후학을 양성하면서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라틴어 격언을 외치며 이 글을 마무리 짓고자 합니다.

“Spero(스페로), spera(스페라). 나도 희망한다, 너도 희망하라.”


이 글은  MBC ‘지금은 라디오 시대’의 10년 후 행복한 미래 설계 공모전에 응모한 글임을 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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