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칠기삼


오늘 부모님 집에 갔다가 우연히 아빠와 단둘이 점심 식사를 하게 되었다. 엄마는 쉰 중반이 넘어서 시작한 미술 공부에 빠졌고 요즘은 미술 작가의 길을 걷느라 아침부터 외출을 한 관계로 나는 아빠와 단둘이 집에 있었던 것이다.


어렸을 적에는 아빠와는 단둘이 식사할 기회가 없었는데, 내가 성인이 되고 아빠가 퇴직을 한 이후에는 가끔 둘이 식사할 시간이 있곤 했다. 작년에는 코로나로 재택근무를 하면서 부쩍 잦아지기도 했다. 아빠와의 식사는 기분이 좋으면서도 어색하고, 내가 식사를 차려야 한다는 부담감에 약간 긴장이 되고는 한다.


오늘도 그런 점심 식사를 예상하며 냉장고에 엄마가 사둔 불고기를 꺼내 불판에 구워 먹었다. 아빠와 나는 많은 부녀 간처럼 대화거리가 별로 없기 때문에 나는 아빠와 단둘이 식사를 할 때 꼭 텔레비전을 크게 켜 둔다. 텔레비전을 실제로 보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화이트 노이즈가 주는 안정감 때문에 트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 어떤 채널을 틀어 놔도 상관이 없다. 하지만 나는 괜히 이 시간을 활용해 영어 공부를 해보고자 CNN 또는 BBC를 켜 둔다. 아빠도 이에 대해는 이의가 없으시다.


점심식사를 마쳐갈 때쯤 텔레비전에서 한국 관련 다큐멘터리가 나왔다. 다소 생소하고 흥미로운 주제였다. 타로점에 관한 내용이었다. 기자는 타로 점집에 찾아가서 직접 점도 보고, 한국 IT기업에서 만든 로봇 부처를 찾아가 점을 보기도 했다. 다룰 수 있는 많고 많은 주제 중에서 어떻게 타로점을 선정했을까 궁금증을 가지면서 아빠에게 별생각 없이 질문을 했다.

“아빠는 점 본 적 있어?”

예상대로 대답은 아니오였다.

나는 이어서 “그럼 타로점은?”

“그럼 미신은 믿어?”

나는 아무거나 질문 잔치를 이어갔다. 역시나 답은 둘 다 아니오였다.

반면 아빠는 세상을 살다 보니 운이라는 것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아빠는 얼마 전 구정 때 가족끼리 쳤던 고스톱에 인생을 비유를 했다. 고스톱을 “운칠기삼” (운이 7 기술이 3)이라고 하듯이 인생도 운에 의해서 많이 좌우되는 것 같다고 했다. 아빠는 나이 들어서 친구들과도 고스톱을 치면 게임에서 돈을 따면 서로 90%는 다 돌려준다고 했다.


구정 때 엄마, 아빠, 동생, 나 이렇게 넷이 고스톱을 쳤다. 게임을 할 때 넷이 치면 점수가 잘 안 나니, 한 사람은 쉬었다. 보통 들어온 패가 안 좋으면 게임을 쉬겠다고 한다. 그렇다. 내가 크게 점수를 낸 경우는 다 패가 기가 막히게 좋거나 남이 쌓아놓은 똥을 내가 가져갔을 때이다.


내가 손에 쥐고 있는 패는 과연 얼마나 내 실력으로 쌓았다고 할 수 있을까. 오늘 기사를 보니 배달의 민족 창업자 김봉진과 그의 아내 설보미가 재산의 반을 사회에 기부한다는 The Giving Pledge를 선언을 하였다. 또한 얼마 전에는 카카오 창업자 김범수가 재산 절반을 약속하였다. 이들은 운칠기삼의 지혜를 터득한 자들일까.


한국 사회에서 기부 문화가 아직 활성화되지 않은 것은 그동안 너무 ‘기’에 치중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일제 식민, 한국 전쟁 등 국운이 바닥을 내릴 칠 때는 ‘운’이라는 것을 신뢰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극한 가난에서 나를 구해준 것은 오직 나의 노력이었을 것이다.


모두가 똑같이 가난하던 과거에 비해 오늘날은 많은 것이 풍요로워졌다. 물론 상대적 박탈, 불평등은 심해졌지만, 오늘날 사회발전 및 기술 진보는 과거에 상상하지 못했던 부를 개인이 창출하고 영유할 수 있게 해 준다.


배민, 카카오 창업자들처럼 엄청난 기술을 가진 자들도 운에 감사하고 자신의 운을 또 다른 운으로 사회에 환원하는 것에 존경을 표한다.


흔히들 운을 만드는 것은 나 자신이라고 한다. 나는 운은 감사한 마음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오늘 아빠와 모처럼 단둘이 점심 식사를 하고 뜻하지 않게 즐거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