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자족의 착각

– 특히, 여성은 돈을 어느 수준까지 벌어야 하는 걸까? -


돈은 어느 수준까지 벌어야 하는 걸까? 특히, 오늘날 여성은 어디까지 경제력을 갖춰야 하는 걸까?

나는 ‘내가 큰 부족함 없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해 왔다. 나름 좋은 대학을 나오고, 좋은 직장을 다니면서 스스로에 대한 만족감을 느끼면서 살아왔다.


그러나 몇 년 전 부모님께서 퇴직을 하신 이후, 나는 진정한 자립자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되었다. 부모님 퇴직 이후, 부모님께 매달 생활비를 보내고 있다. 나는 아직 미혼이라 개인적으로 쓸 곳이 많지 않고 부모님과도 한 때 같이 살기도 했기 때문에 생활비를 드리는 건 당연하기도 했다. 그러나 부모님께서 정기적인 수입이 없으시기 때문에 생활비는 고정비에 해당했고 액수도 적지는 않았다. 반면, 회사에서 계속 나의 몸값을 올리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전까지는 내가 다른 사람에게 손을 빌리지 않고, 내 생활을 영위할 수 있으면 경제적으로 자립을 하였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오로지 나 자신만을 지탱할 수 있는 자립자족은 허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나는 이 세상에서 혼자 독립체로만 살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부모님, 형제, 자매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내가 아끼는 사람들까지 돌볼 수 있는 수준이 되어야 한다. 내 주위에 경제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경우, 내가 모른 척할 수는 없지 않은가. 결국 진정한 자립자족이란 내가 나를 돌보고도 여유가 있어 다른 이를 돌볼 수 있는 수준이 되어야 한다. 남을 돌보아도 내가 흐트러지지 않고 나를 간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모님 퇴직뿐만 아니라 가족이 아플 수도 또한 내가 아플 수도 있다. 내 가족을 돌본 후 내가 흔들린다면 내가 진정하게 자립자족을 이뤘다고 할 수 없다.


나는 여태까지 남들처럼 많이 노력하고 사회에서 어느 정도 인정하는 위치까지 왔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물론, 한국 사회 전체적으로 노후 대비, 교육정책, 부동산 정책 등 이 상황을 녹록지 않게 만드는 많은 구조적인 이유가 있지만, 지금 당장 내가 어쩔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러서 나는 나 자신에게 질문하였다. 나는 왜 이런 상황에 오게 된 것인가?


답은 바로 내가 돈에 대한 계획 및 야망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중산층 가정에서 비교적 평탄하게 유년기를 보냈고, 부모님께 감사하게도 성인이 되기 전까지 (성인이 된 이후에도 꽤 오랫동안) 경제적인 부분에 대해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나는 내가 부모님께 받았던 성장환경과 그 보다 조금 더 윤택한 생활을 영위하면 된다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큰 부에 대해서는 욕심이 없었다. 욕심이 없다기보다는 그냥 내가 알지 못하는 무지의 영역이었던 것이다.


그럼 나는 왜 부에 대한 욕심이 없었던 것일까? 나는 경제적 성공은 학벌이나 배경보다는 부를 이루겠다는 의지를 가졌느냐에 달렸다고 본다. 나는 나 자신의 '의지 부재'를 사회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부의 기준, 특히 여성과 남성에게 기대하는 경제력 수준으로 부터 실마리를 찾아본다.


남성은 으레 ‘가장’으로서 처자식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압박을 아주 어려서부터 주입받는다. 성공한 남성이 미인을 차지하는 이미지로 도배된 오늘날 사회에서 남자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경제적 성공의 압박을 받는다. 남성들은 (주로 경제적으로) 성공하지 못하면 도태되는 일종의 생존 게임을 아주 어렸을 때부터 학습하게 되는 것이다. 반면, 여성은 남성만큼의 압력을 받지는 않는다. 오늘날 여성과 남성이 동등하게 공부하고, 일하고, 자기 계발 및 성장을 해야 된다는 생각이 많이 자리 잡은 것은 사실이다. 나 역시 그렇게 살아왔다. 그러나 나는 생존보다는 자아성취를 우선시하면서 살아왔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이가 허용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살아오면서 했던 선택을 보면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나의 남동생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취직을 한 반면, 나는 대학원을 선택했던 것도 아마 나에게 그 여유가 사회적으로 허락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남동생은 내 주위 많은 남자 동기들처럼 대학 학부 공부와는 전혀 무관하게 돈 많이 주는 업계로 취직을 하였다. 나의 선택은 물론 내가 공부에도 욕심이 있었고 대학원 졸업 후 더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함이었지만, ‘생존’의 관점에서 본다면 졸업 후 반드시 연봉이 높아질 것이라는 보장도 없기 때문에 일종의 도박이며 지금 당장 돈을 버는 것이 더 현명하였을 것이다. 이처럼 내가 알게 모르게 삶의 여러 순간에서 나는 경제적인 성공보다는 사회적 또한 심리적 안위를 선택했다.


개인적인 성향 탓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나는 엄청나게 부자가 되고 싶다고 열망해 본 적이 없다. 엄청난 부를 보지도 경험하지도 사회에서 나에게 강요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저 내 인식 속에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아주 미묘한 사회적 고정관념에 지배당하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를 인지한 후 땅을 치며 후회했으며 무지했던 나 자신에 대해서 반성하였다.


나는 지금도 까무러치게 엄청난 부를 바라지는 않지만, 앞에서 논의한 대로 자급자족을 넘어서 내 주위를 돌볼 수 있는 수준의 진정한 경제적 자유를 꿈꾼다. 오늘날에는 여성들은 남자만큼, 아니 남자보다 더 벌어야 된다.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력을 갖추는 것은 한 인간이 자신의 고유성을 간직하고 독립된 삶을 살아가는데 필수적이라는 가르침이다. 이는 남녀를 불문하고, 어렸을 때부터 부모로부터 사회로부터 받아야 하는 가르침인 것이다. 그리고 나 자신을 넘어서 주위를 돌볼 수 있을 때 진정한 자유가 온 다는 것이다. 나는 아직 아이가 없지만, 미래 나의 후손에게 어떤 가르침을 줘야 할지 고민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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