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인간 이분화된 우리의 주거공간
나는 얼마 전부터 일 때문에 스리랑카에 살고 있는데 이 나라는 나에게 많은 긍정적인 변화를 주었다.
우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게 되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2021년 10월 말까지 통행금지 조치가 내려졌었다. 밖에 자유롭게 나가지도 못하고, 저녁에 혼자 딱히 할 게 없었다. 술을 벗 삼아 밤을 달래는 것도 하루 이틀이요, 매일 마실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하여 의도치 않게 9-10시면 취침하는 습관이 생겼고, 대신에 고요한 새벽에 일어나게 되었다. 예전처럼 헐레벌떡 쫓기듯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편안하고 느긋한 마음으로 아침을 시작하니 그 날 하루 전체의 리듬이 수월해졌다.
둘째로 지구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라는 깨달음과 겸손함을 배우게 되었다.
스리랑카의 수도인 콜롬보 도심 한가운데 있는 호수에서는 펠리컨, 까마귀, 박쥐, 그 외에 이름 모르는 새가 날아들고, 가까운 조상님이 공룡인 것 같은 왕도마뱀도 볼 수 있다. 콜롬보 외곽으로 여행하면 도로에서 공작새, 원숭이, 코끼리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하늘에는 펠리컨, 학, 까마귀가 날아들고 지붕 위에는 다람쥐가 뛰어다니며, 집 벽에는 도마뱀이 기어 다니고, 주방에는 개미가 긴 줄을 이어서 다닌다. 그리고 물론 빼놓으면 섭섭한 바퀴벌레도 우리와 함께 산다.
한국과는 다르게 인간과 자연이 철저하게 분리되지 않은 생활이 아직 신기하면서도 한편으로 익숙해졌을 때쯤 일까, 직장 동료랑 한식당에 점심 식사를 하러 간 적이 있다. 한국 음식이 너무 그리울 때라 한동안 한식당에 자주 갔었다. 그날 점심에는 육개장을 시켰다.
얼큰한 국물로 해장할 생각에 신이 났던 나는 들뜬 마음으로 숟가락을 집어 들었다. 우선 뜨거운 우거지를 따로 접시에 담아 식히기 위에 첫 술을 뜨는 순간 엄지손가락 반만 한 갈색의 것이 눈에 들어왔다. 불길한 마음이 엄습해 왔다. 나의 직감은 이미 알고 있었으나 애써 아니기를 바라며 함께 온 동료와 육개장을 숟가락으로 들추며 한참 눈을 껌뻑이며 확인했다. 그러나 도저히 부인할 수 없는 불탕에서 운명한 바선생이였다.
나는 조용히 손을 들어 가게 주인을 불러 아무말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될 것’을 가리켰다. 주인은 처음에는 무엇인가 어리둥절했으나, 금세 경악을 하며 죄송하다며 사과를 했다. 주인은 미리 많은 분량의 육개장을 만들어 놓고, 소량을 덜어서 끓이는데 그 과정에서 들어간 것 같다며 사과를 하고 다시 만들어 오겠다고 했다.
나는 정중하게 사양하고 대수롭지 않게 육개장 대신에 동료가 시킨 냉면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 그간 혐오대상 1위를 차지했던 바선생을 식당 바닥이 아니라, 먹는 음식에서 나왔는데도 나는 그날 이상하게도 그 자리에서 화도 내지 않고, 당황하지 않았다. 예전의 나는 같은 식당에서 다른 음식을 주문해 먹는다는 것을 생각도 못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당시에 어쨌든 점심시간은 곧 끝나는데 배는 고프기 때문에 이를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이 더 강했다.
그날 나는 식사하러 같이 온 동료한테, 그래도 그 해장국을 먹지는 않아서 다행이라며 능청을 떨었다. 하마터면 원효대사의 해골물 깨달음을 재현할 뻔했다며 농담을 했다. 물론 내가 그 국물을 한입이라도 입에 댔다면, 나는 그 자리에서 구역질을 하며 식당을 뛰쳐나갔을 수도 있다. 신의 도움으로 숟가락으로 국을 펐을 뿐 입에는 아무것도 들어가지 않았다. 그 덕에 나는 간발의 차로 나는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여유로운 웃음을 지을 수 있었다.
그날은 신기하게도 ‘그 자리에 있으면 안 되는 것’이 ‘그 자리에도 들어갈 수도 있을 법한 것’으로 바뀌었다. 물론 내가 앞으로 주문한 음식에 기타 재료가 들어가는 것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필시 식당의 청결관리 문제는 있지만, 인간과 벌레, 곤충, 동물이 넘나드는 공간에서 어쩌면 당연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간 나는 바퀴벌레는 내 집, 내 공간을 침범한 침입자로 여겨왔다. ‘너와 나와는 삶의 터전이 다르니, 여기서 나가 달라. 네 발로 나의 공간에 들어왔으니 나는 너를 죽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만 생각을 해왔다.
그러나 진짜 온전히 나의 공간인가? 따지고 보면 인간은 나무를 자르고, 산을 깎고, 땅을 헤집고 아파트를 짓고, 도로를 깔고, 울타리를 치고 자신의 영역을 선포하였다. 나의 허락을 받은 것 이외의 모든 생명체가 ‘그 자리에 있으면 안 되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은 아주 오랫동안 인간과 자연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생활공간, 방식, 사고에 기인한 것으로 생각된다. 얼마나 인간 중심적 생각이며, 오만한 생각인가. 바선생도 그 다른 생명체도 인간이 선포한 구역에 동의한 적이 없다. 더 강한 자가 살아 남고, 다른 동물들도 자기 영역에 누군가 침입을 하면 공격을 한다. 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인간이 지구의 주인이라는 착각에 빠져있던 것은 아닐까.
2022년 어느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