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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녜 Feb 13. 2022

배우자와 옆집 살이 하는 삶

이상적인 결혼 생활을 한 번 그려보자

한 두해 전까지만 해도 결혼하지 말라던 아빠의 태세가 바뀌었다. 

어느 가족 여행에서는 뜬금없이 결혼할 거면 빨리하라는 말을 던지기도 했다. 애인도 없는 데 난데없이 무슨 소리냐 반문하는 내게 돌아온 답은 집값이 너무 빨리 오르니까, 혼자서는 집 사기 어려우니까, 얼른 둘이 합쳐 집을 하라는 거였다. 나는 뭐 결혼은 혼자 하냐, 순서가 이상하지 않냐, 집 사려고 결혼하냐- 같은 뻔하고 흔한 대답을 하다 이 말로 아빠의 기세를 꺾었다.


내 이상적인 결혼 생활은 옆집 살림인데, 일 가구 일 주택해야 하니까 결혼 안 하는 게 이득이야


솔직히 말해서 이 말은 아빠를 이겨먹으려고 한 말도, 농담도 아니다. 실현 가능하기만 하다면, 정말 이렇게 하고 싶다. 


미혼 직원들에게는 얼른 결혼해야지 말을 달고 살던 전 직장의 기혼 동료들이, 결혼식을 앞둔 직원들에게는 또 좋은 날 다 끝났다며 겁을 주는 꼴이 나는 그렇게나 보기가 싫었다. 

애인이 집에 안 가요, 같은 힘으로 결혼을 설명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면서 다들 대체 결혼을 왜 하라고 하는 건지, 정말 자기들만 그 “불행”을 겪고 있는 게 아쉬워서 다른 사람들도 끌어들이고 싶은 건지. 농담 이래도 왜 그런 농담을 하는 건지, 배우자가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속상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지, 혹은 자신의 배우자가 저런 얘기를 하고 다니는 것이 본인에게는 상처가 되지 않는지.


나도 안다. 

누군가랑 함께 사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내 평생의 80% 이상을 같이 살아온 지금의 가족과도 함께 사는 게 이렇게나 복잡하고 다사다난한데, 평균 30년 이상 따로 살던 두 사람이 함께 사는 건 당연히 조율의 영역이 끝도 없을 거라는 걸. 그래서 하는 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굳이 그걸 감내하려는 사람에게 이미 감내하고 있고 앞으로도 감내할 사람이 구태여 말을 보태는 게 싫었다. 


그러면서도 나중의 나도 저러면 어쩌나 두렵다. 에이 다 밈이지- 라며 발언을 조심하지 않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다. 이왕 할 거라면 결혼 생활이 얼마나 좋은지를 이야기해주는 기혼자가 되고 싶다. 


그러다 떠 올린 건 옆집 살림이었다. 

자녀 계획이 없는 내게 결혼은 꽤나 단순한 목적만을 가진다. 더 자주, 시간 구애 없이 보고 싶다는 마음을 충족하기 위한 목적. 

그렇다면 굳이 한 집에 살 것 없이 충분히 가까운 거리에 사는 것만으로도 뜻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게다가 이러면 같이 한 집에 살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들도 다 없을 테다. 


왜 양말을 뒤집어 벗어놨느니, 바로 설거지를 하지 않느니, 오늘 청소는 네 차례니…


내 집에서 보내는 시간은 내가 책임지면 되고, 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은 네가 책임지면 되니까. 내가 네 집에서 함께 뒷정리를 할 때는 공평함에 대한 재고 따짐 없이 호의만으로 도울 수 있을 테니까. 거기에 더해 혼자만의 공간에서 충분히 평화로울 수 있다면, 가끔 생기는 갈등 후에도 좀 더 쉽게 안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물리적인 각자의 공간과 시간이 존재하고 그걸 충분히 존중할 수 있는 관계. 내가 그리는 이런 이상적인 그림을 그리려면 일단의 필요조건은 내 집이 있어야 한다는 거다. 결국 일인 가구로서 자립할 수 없다면, 내가 바라는 결혼 생활도 이룰 수 없고, 이런 상황에서는 더 이상 내 집 마련을 위한 결혼에 대한 이야기는 성립하지 않겠지. 


근데 같이 살 것도 아니면, 그렇게 거리를 두고 지낼 거면 결혼은 왜 하냐고? 

그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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