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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두와 잘 지내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쓰는 반성일기. 오랜만에 쓰는 걸 반성합니다.

by 소녜

마지막 일기를 쓴 지 벌써 일곱 달.


너무나도 게으른 주인 탓에 반성일기를 미룬 지 한참 된 걸 반성하고 있다. 변명을 조금 하자면, 혹은 이유를 좀 대자면, 회사에 적응하느라 바빴다. 작년 초 이직 후 잔뜩 긴장했다가, 약간의 긴장이 풀리니 일은 더 재밌어졌고, 시간은 더 유연해졌다. 작년 초까지만 해도, 별 총총 떠있는 첫새벽에 졸린 눈을 비비며 출근하던 삶이었는데, 커튼 틈 사이로 비쳐오는 햇볕에 눈이 부셔 깨는 삶으로 바뀌어 실컷 즐기고 있다.


아빠가 아침 여섯 시쯤 테니스를 치러 나가시는데, 인간이 돌아다니는 시간인데 너는 왜 안 일어나냐며 호두가 짖으며 잠을 깨우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매일이 개운하다. 아침에 호두가 깨우든, 햇볕이 깨우든, 침대에서 일어나 처음 하는 일은 호두와의 아침인사다. 특히 날씨가 좋은 요새 같은 날들은, 나와서 기지개 한번 쭉 피고, 호두와 코를 비비며 아침인사를 한다. 아침부터 호두의 웃는 얼굴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서로 냄새를 맡고, 턱 살을 만져주고, 마당을 한 바퀴 돈다. 아침 햇살에 말랑말랑해진 고무 장난감을 몇 번인가 던져주다가, 준비를 하러 안으로 들어온다. 호두는 그동안 밥을 먹고, 나름의 산책을 하다, 뒹굴거린다.


내 출근길 배웅을 해주는 것도 호두다. 차고로 내려가는 계단 위에서, 계단을 내려가는 내 뒷모습을 빤히 쳐다보다가 창문으로 나를 지켜본다.


낮에는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을는지, 마당을 가꾸는 아빠를 졸졸 쫓아다니며 구경할지, 나무 위의 새를 구경할지, 저 멀리서 들려오는 다른 강아지들의 짖음에 귀를 기울이다 낮잠을 잘지. 호두의 하루가 궁금하다가도, 함께 해주지 못하는 게 미안해 죄책감만 가득해진다.

회사에서 틈틈히 꺼내보는 호두사진들.


퇴근하고, 가끔은 운동 가끔은 약속으로 늦게 들어오더라도 가장 먼저 나를 반겨주는 것도 호두. 깜깜한 현관을 밀어 열고 들어가면, 그 듬직한 존재감에 깜짝 놀란다. 그러고 반가움에 목소리를 한껏 높여 잘 있었냐 인사를 한다. 호두는 항상 최선을 다해 나를 반겨준다. 가방만 넣어놓고 마당 불을 켜고 한동안 앉아있으노라면 옆에 가만히 와 앉는 호두에 이걸로 충분할까, 뭘 어떻게 더 놀아줘야 할까 싶어 그다지 넓지 않은 마당이지만 숨바꼭질도 했다가, 술래잡기도 했다가, 공던지기도 해본다.


그러고는 다시 내일 아침에 보자는 인사로, 잘 자라는 인사로 마무리하는 하루.


요새는 이렇게 호두와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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