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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녜 Sep 22. 2019

"내 집"이 되는 조건

열한 번째 한 글자 주제, 집.

우리 집엔 4인 + 1견 가족이 산다. 엄마, 아빠, 나, 동생, 그리고 호두. 같이 사는 구성원들을 꽤 좋아하고, 가끔은 매우 보고 싶어 지는 날도 분명 있지만, 가끔은, 그리고 특히 요새 자주 드는 생각이 있다.


지금 사는 이 집은 내 집이 아니다. 


이 집은 우리 집이지 내 집은 아니다. 내가 점거할 수 있는 부분이 아주 없진 않지만 또 내가 온전히 점유, 혹은 점거할 수 있는 공간이 있냐고 하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집의 대부분의 부분은 내 것이라고 느껴지지 않는다. 특히 큰 사이즈의 집기일수록 그렇다. 내 방이라고 칭해지는 이 방의 어느 가구 하나도 내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나 말고 다른 누가 사용하는 것도 아닌데도 그렇다. 내가 이 방 안에서 내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고 실제로 그렇다고 믿는 건 가방 몇 개, 옷 몇 벌, 책 몇 권 등의 작은 것들이다. 


지금 있는 이 집은 내 공간이라기보다 잠시 얹혀 지내는 방 같은 느낌이다. 딱히 애착도 욕심도 나지 않는다. 변명으로 들릴지는 모르지만 방 청소에 대한 욕구가 영 생기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인 것 같다. (증인이 없어 아쉽지만 혼자 살던 공간들은 꽤나 깨끗했다.) 나는 내 삶 대부분의 시간을 집순이가 아닌 것처럼 살아왔지만 그건 그 집이 내 공간이 아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내 공간이라고 느껴본 곳에 진득이 늘어져 있는걸 꽤 좋아했던걸 생각해보면 더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내 기억 상 열한 개쯤의 집을 겪었다. 대부분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겨우 기억나는 것들은 이런 것들이다. 아파트 건물 옆 벽 적혀있던 동 번호의 색깔과 글씨체. 많이 눌러 바래진, 푸르스름하고 도톰하던 엘리베이터 버튼의 모양새. 아랫집에 놀러 간 엄마를 찾아 내려가던 계단의 자주색과 검은색이 섞인 계단 무늬. 오히려 집 안이 선명히 기억나는 곳은 남들이 생각하기엔 더 임시 거처라고 할법한 곳들이다. 1년마다 방을 바꾼 고등학교 기숙사, 교환학생 갔을 적의 플랫, 대학교 앞의 자취방. 그 공간들은 그 안에서 내가 움직이던 동선, 가구를 배치해두었던 구조, 아침과 한낮과 초저녁의 채광까지 눈에 선하다. 


그 모든 공간들 중 경제적으로 온전히 내가 부담했던 공간은 없다. 그러니 “내가 사지 않았음”이 “내 공간이 아님”에 크리티컬 한 요소이진 않을 테다. 혼자 살지 않은 공간도 있었기에 혼자 살아야 내 공간이 되는 것 같지도 않다. 오히려 결정권의 문제다. “오롯이 내가 결정할 수 있음”의 여부가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내가 이불을 바꾸든 방의 배치를 바꾸든 바꿨네- 정도로 끝나는 공간. 눈치 보거나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평가도 허락도 필요 없는 공간. 그런 곳이어야만 나는 내 공간이다, 내 집이다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런 공간에서는 실제로 무엇이든 가능했다. 계획적으로 방 정리를 하고 물건을 제 곳에 두는 것도. 꾸준히 일기를 쓰는 것도. 같은 시간에 일어나 아침 운동을 하는 것도. 마음 놓고 울다가 후련해진 마음으로 하루를 정리하는 것도. 작은 성공과 작은 행복들을 만들어 내는 게 내 공간에서는 조금 더 쉬웠던 기억이다.


한동안 바깥 생활을 하다 "우리 집"으로 돌아온지는 이제 4년 즈음이다. 이직을 한지는 일 년 반쯤 되었다. 적응이 된 탓에 여유가 생겨 여유를 부리고 싶은 건지, 적응이 안 되어 공백을 채우고 싶은 건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만, 왠지 모를 독립에 대한 욕구가 불쑥불쑥 올라오는 요즘이다. 내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잔뜩이다. 꼭 집은 아니더라도 아지트라고 할 만한 곳. 마음 편히 있을 수 있는 곳. 그리고 그게 집이라면 더 좋겠다.


[내 집 마련의 꿈]은 누군가에겐 경제적인 안정성의 지표로 가장 크게 다가온다더라. 하지만 나에게는 정착과 자유에 대한 욕구다. 내 마음 하나 편히 두고, 내 습관 내 마음대로 해볼 수 있는 안정감과 자유로움. 이제는 정말 그 날이 빨리 오도록, 준비하기를 다짐해야겠다. (내일의 나야 절약&저축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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