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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녜 May 05. 2020

일 년간의 글쓰기를 마치며

스물여섯 번째 한 글자 주제, 끝



1.

5월의 연휴도 어느새 끝이다.  

내가 생각했던 5월 초의 날씨는 이렇게 후텁지근한 게 아니었는데, 나의 연휴는 여러모로 생각과는 다른 연휴였달까. 날씨 덕에 밝은 때 먹던 맥주가 더 달고 시원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강아지 산책 후 시원한 물로의 샤워가 상쾌해 중간중간의 행복이 찾아오긴 했지만 말이다.


분명 올 초까지만 해도 이 오월의 황금연휴 때 해외여행을 가겠다며 벼르던 지인이 잔뜩이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가장 안전한 나라에 살고 있던 탓에(?) 다들 동네 나들이라던지 국내 여행으로 선회했더랬다. 그들의 연휴도 여러모로 생각과는 달랐겠지. 그나마 다행인 건, 이렇게 커질 줄 몰랐던 이 질병의 확산 폭이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만큼은 안정되어 가고 있다는 점이다. 재택근무를 반복하며 집 안에서 커피와 계란을 저어 달고나 커피를 만들고 수플레 팬케이크를 만들던 게 리프레시 가능한 방법의 전부처럼 느껴지던 시기를 넘어 조금은 활동 반경을 넓혀도 안전한 시기가 왔다는 데에서 위안을 받는다.  

사실 나도 했다, 달고나 커피!



2.

끝이 다가올 때면 시작을 생각하게 된다.

내가 이 일, 이 취미, 이 프로젝트를 왜 시작하게 됐는지, 어떤 마음이었는지, 대부분은 캐주얼하게 때로는 각 잡고 회고한다. 회고는 때로는 고통스럽고 때로는 귀찮지만, 그때마다 초심을 잃어버린 모습에 반성하기도 하고, 전혀 달라진 방향에 놀라기도 한다. 가끔은 지루한 과정의 연속인 줄 알았던 경험에 상상치 못한 즐거운 일이 껴있었다는 것을 발견할 때도 있다.


[한 글자에 글 두 개] 프로젝트도 어느덧 마지막 글이다.


시작은 우연했다. 그저 나도 내가 멋있어하는 이들처럼, 주기적으로 글을 써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조금 더 솔직히 말하자면 멋있는 그들에게 샘이 났다. 나도 멋있어지고 싶고, 멋있어지는 방법 중 하나가 글을 쓰는 버릇을 들이거라고 생각했다. 혼자 쓰면 몇 주, 아니 며칠도 못가 그만둘 것 같았다. 그래서 친구를 꼬드겼다. 고맙게도 친구는 흔쾌히 응해줬다. 그렇게 시작했다.


약 53주 동안 격주로 함께 글을 썼다. 각자 스물여섯 개, 총 52개의 글이다. 혼자 쓰고 싶었던 주제로 생각나던 것들이 마침 한 글자짜리 단어들이라 콘셉트를 이걸로 잡았다. 매주 주제를 새로 생각해내는 것도 고역이니 알고 있는 모든 한 글자 단어를 트렐로에 정리했다. 그중 하기 싫은 주제를 빼내고, 하고 싶은 주제를 추려냈다. 글감을 고르다 허송세월 할까 싶어 가나다 순으로 글을 쓸까 하다가, 처음 만난 단어가 '개'라는 걸 발견하고 멈칫했다. 반려인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겐 너무나도 거대한 주제라, 마음이 자꾸만 무거워졌다. 결국 프로젝트 시작의 의미를 담아 '글'로 시작했다. 그때의 나는 이렇게 적었더랬다.


내가 생각하기에 작가는 결과가 아니라 상태니까. 내가 글을 쓰면,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된다.


나름 희망차고 야망찬 시작이었는데, 과연 지금의 나는 내가 생각했던 글을 쓰는 사람이 된 걸까. 약간은 찔리지만 약간은 그렇기도 한 것 같아 복잡 미묘한 기분이다.


3.

정작 시작에는, (적어도 나는) 끝에 대해 잘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사실은 끝에 대해 생각하는 걸 피한다. 끝을 떠올리면 스멀스멀 겁이 나기 때문이다. 잘할 수 있을까, 중간에 그만두는 건 아닐까, 뭘 잘못하면 어쩌지 하는 말이 머리를 맴돈다. 괜한 마음이란 걸 알면서도 그 힘은 대단하다. 조금 더 완벽한 준비가 있을 거라는 마음만으로 시작을 하루하루 미루고 말기 때문이다.


[한 글자에 글 두 개]도 사실은 연초에 말은 꺼냈지만 정작 시작한 건 4개월이나 밀린 후였다.

일부러 미룬 건 아니었다. 그저 바빠서, 새해에는 원래 정신이 없으니까, 출장이라던지 여행을 가야 해서, 어떤 글을 어떤 템포로 어떻게 쓸지 잘 기획해보자는 말로 계획에 대한 계획조차 꾸준히 미뤄버렸다. 그러다 보니 4개월이 지나있었다. 게을렀다고 그때의 나를 탓해보지만, 사실은 덜컥 친구가 수락한 덕에 바로 글을 쓰게 되었다는 것이 겁이 났던 것 같다. 괜히 지키지도 못할 약속에 친구를 끌어들인 건 아닌지, 내가 금세 글쓰기에 질려버려서 아 이제 그만할래 내팽개치진 않을지 걱정이 됐다. 콘셉트도 이렇게 가는 게 맞을지, 평범하고도 평범한 나라서, 이야기할 내용이 금세 동나버리지는 않을지 온갖 걱정을 했더랬다.


그럼에도 다행히 시작을 할 수 있던 건, 그리고 그걸 일 년이나 이어올 수 있었던 건 친구에게 같이 하자고 질렀던 과거의 나 덕분이니, 그때의 마냥 미루고 싶던 나의 걱정은 정말 다 괜한 것이었음을, 다시금 깨닫는다.   



4.

끝에 서서 새로운 시작을 생각한다.


함께 해본 프로젝트는 돌이켜보니 더 재밌었다. 앞으로도 좋아하는 이와 재밌는 일을 만들고, 남기고 싶다. 그래서 새로운 시작을 또 고민한다. 다른 주제로 글을 써보는 게 될지, 다른 무언가를 만들어 볼지 갈피도 아직 잡지 못하긴 했다. 아마 이전처럼 괜한 고민과 걱정을 늘어놓으며 시작이 미뤄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기대된다. 또 다른 시작이 만들어낼 또 다른 끝에서는 어떤 추억과 결과물이 기다리고 있을지.


어서 빨리 만나보고 싶다. 그 미래의 내가 기대된다. 반갑게 그때의 나를 만나러 갈 수 있게, 새로운 시작을 생각한다. 이다음엔 어떤 재밌는 걸 해볼까, 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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