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화 Apr 19. 2020

글 쓰는 일이 본업은 아니지만

스물다섯 번째 한 글자 주제, 일


 

글을 참 많이 쓰는 요즘이다.


한 글자 주제를 정해 2주에 한 편씩 친구와 써오다가(브런치 매거진 <한 글자에 글 두 개>), 최근에 '에세이 스탠드'라는 에세이 클래스를 듣고 이어서 온라인 글쓰기 모임인 '에세이 드라이브'를 하게 되면서 1주에 한 편씩 쓰는 에세이가 추가되었다. 3월 말부터는 소설 쓰기 강좌를 수강하고 있고 이 수업에서도 (아주 짧은) 단편소설 하나를 써내야 한다. 사실 이번 주가 아주 정점이다. 오늘은 이 글의 마감, 내일은 에세이 마감, 내일모레는 소설의 마감이라 3일 연속 마감을 해야 한다. 세상에. 이 사실 때문에 지난주부터 (글은 하나도 안 쓰고)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다. 전부 다 좋아서 시작한 일이지만… 그 누가 마감을 즐길쏘냐!



뭐가 됐든 직업을 가진다면 글 쓰는 일이 될 거라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기억하는 최초의 장래희망은 시인. 그 후에 소방관도 대통령도 선생님도 외교관도 꿈꿨지만, 나는 꿈이 많은 어린애였고 그런 꿈들은 금방 바뀌는 축에 속했다. (결국 바뀐 건 똑같지만) 그래도 꽤나 오래 간직했던 꿈들은 다 비슷비슷하다. 시인, 소설가, 기자, 카피라이터… 글을 쓰는 직업들. 그 모든 걸 뒤로 하고 팔자에도 없을 것 같은 회사원-그것도 인사팀-이 된 데엔 여기 다 실을 수 없는 많은 스토리가 있지만, 어쨌든 나는 그 과정을 참 잘도 합리화했었다. 돈이 안 될 것 같아서, 재능이 그렇게 없는 것 같아서, 워라밸이 구릴 것 같아서… 하나의 직업을 포기할 만한 이유는 차고 넘쳤고 그 모든 이유와 현실적 제약을 무릅쓰고 달려들기엔 내게 그만큼의 확신이 없었다. 포기는 쉬웠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하면 더 이상 즐길 수 없대. 그런 말을 주섬주섬 변명처럼 들이밀면서.


그래 놓고 이제 와서, 멀쩡히 꼬박꼬박 월급 나오는 좋은 직장을 다니는 지금에 와서, 어떻게든 글 쓰는 일의 비중을 늘려보려고 애를 쓰고 있다니. 꼭 직업이 아니더라도 좋아하는 일을 너무 많이, 자주, 지칠 정도로 하다 보면 그 애정이 떨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뭐랄까… 어떤 불가항력이 존재하는 것 같다. 꼭 짝사랑하듯 덕질하는 아이돌이나 배우 같은 느낌이랄까. 현실에는 없는 아주 완벽한 존재. 이 사람과 연애를 하면(뭐 그럴 일은 없겠지만 다들 상상은 하니까) 너무 행복하고 달콤하겠지만, 너무 속속들이 사람 대 사람으로 가까워진다면 환상은 깨질 테고- 결국 어떤 식으로든 감정이 닳아 끝이 날 거다. 멀리서 동경해오던 사람이었으므로 그만큼 작은 일에도 와장창 실망하게 되겠지. 그러지 않고 멀리서 좋아만 한다면 이 마음은 웬만해선 깨지지 않을 테고, 계속 환상 속에서 설렐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왜,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연애를 해보고 싶잖아. 하루 만에, 혹은 반나절만에 망하더라도! 그래, 그런 마음이다. 좋아하는 마음이 혹여 다 닳아 없어진대도,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라서도 일단은 있는 힘껏 너를 좋아하고 싶은 거.



@Unsplash



직장인에게 여가란 소중하다. 일단 누워서 넷플릭스를 보지 않고 어떤 생산적인 일을 한다는 것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시간과 에너지는 한정되어있고 그나마도 나이가 들수록 점점 총량이 떨어지기 마련이니까. 시간과 에너지를 동시에 들여서 생산성을 발휘하는 데는 노오력이 필요하다. 얼마 없는 자원이므로 신중하게 투자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딱 요만큼의 시간, 그렇게 거창한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은 아니지만 꾸준히 하다 보면 그래도 뭐 하나는 이룰 수 있는 시간. 그 요만큼을 투자해 무슨무슨 자격증을 딸 수도 있고 영어 공부를 할 수도 있고 하다못해 댄스를 배울 수도 있고, 생산성은 얼어 죽을 그냥 사실 좀 더 누워있을 수도 있는데… 글을 쓰기로 한 거다.


말하자면 글쓰기는 그런 어떤 기회비용을 모두 고려하고서도 내가 제일 하고 싶었던 일이란 소리다. 가끔 이 시간을 들여 자격증을 하나 딴다면 훨씬 내 미래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잠깐은 후회도 한다. 그러나 다음 순간에, 그게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인지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한다. 이만큼 나이를 먹으며 배운 게 딱 하나 있다면, 어떤 순간에는 정말 내 마음을 동하게 하는 것에 과감히 발을 들여놓아야 한다는 거다. 그리고 모든 게 이성적인 장기계획 아래 놓여있어야 한다는 어릴 때의 순진한 생각과는 반대로, 그렇게 마음이 동해 나를 일으킨 일만이 나를 어떤 새로운 지경으로 보내준다. 마음을 다해 하는 일이니까, 분명히 다른 일과는 다르다. 요즘엔 그래서 그 마음을 아끼지 않고 있을 뿐이다.








글을 쓰는 건 꽤나 공수가 드는 일이다. '일'이다. 글 쓰는 걸 즐긴다고 이렇게 떠들고 있지만 그래도 힘든 것은 매한가지다. 단지 마감이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원하는 대로 줄줄 멋진 문장을 쓸 수 있는 천부적 재능도 없을뿐더러, 그나마 머릿속에 반짝 떠올랐던 게 금세 사라져 버리기도 하고, 뭔가 어색한데 어디가 이상한지 몰라서 한참 헤매기도 한다. 대단한 역작도 아닐진대 짧은 글 한 편 완성하는 과정에도 참 많은 돌부리가 존재한다. 그걸 낑낑대며 파내고 어떤 건 기어 올라 넘어서 겨우 하나를 완성해도, 결과물은 대개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내 글을 기다리는 독자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개중 괜찮다 싶은 걸 하나 건져도 그걸로 돈을 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세상엔 글 잘 쓰는 사람이 천지삐까리인 데다가, 어떤 건 (특히 이런 건) 타고나는 재능과 강한 연관이 있어서 내가 백날천날 노력한다고 해서 딱 그만큼 직선으로 나아지는 게 아니라는 것도 안다. 그러므로 글을 써서 대단히 성공하겠다는 욕심도 없고, 하다못해 본업을 때려치우고 이걸로 먹고살아보겠단 욕심도 별로 없다.


그러나 당장은 이것도  일이다.   대가로 돈을 벌어야만 일이 되는  아니니까. 누가 뭐래도 지금 이건 내 일이고, 그것도 꽤나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이다. 가끔은 본업보다도 더 잘하고 싶은 일이고, 본업보다도 신경 쓰이는 일이기도 하다. 물론 퇴근 후에 시간이 남고 또 그 시간에 글이나 쓰고 있어도 되는 건 본업이 튼실하기 때문임을 안다. 고맙게 여기고 있고, 돈 받고 하는 일이니 만큼 그 일도 뒤처지지 않게 열심히 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래도 내일의 본업을 생각하며 설레지는 않는다. 이 주제로 무슨 글을 쓸까, 어떻게 쓸까, 머리가 팽팽 돌아갈 때 어디서 스멀스멀 흘러나오는 것 같은 엔도르핀이 거기엔 별로 없다.


그래도 이러면 안 되지, 그건 본업이고 이건 부업이니까, 돈도 안 되는 일에 에너지를 다 쓸 수는 없으니까- 아무리 나를 말려봐도 마음이 자꾸 선을 넘어 동동 떠버린다. 본업이 너무 바빠져서 시간과 에너지를 많이 빼앗기는 날이면, 그래서 글 한 줄 쓸 여유가 안 남는 날이면 그 일이 참 얄밉기도 하고 말이지. 니가 돈을 주긴 하지만, 그래도 이건 쫌 너무한 거 아니니 얘, 그러면서.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 수는 없어


어린 내가 너무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 것 같았는지 어른들은 자주 이 소리를 했다. 착한 어린이였던 나는 하고 싶은 일만 하지 않고 해야 하는 일을 열심히 하는 착한 어른이로 잘 컸다. 그러나 정말 인생이라는 게 거기 있을까. 요즘의 나는 비틀거리면서도 조금씩 시소의 끝에서 가운데로 나아가는 중이다. 갑자기 확 옮겨 타서 쾅 바닥에 찧는 일이 없도록, 조금씩 균형을 맞춰가면서, 아주 조금씩. 앞으로도 노력할 생각이다.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 순 없어도, 하고 싶은 일도 하고는 살아야 하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일의 고통과 기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