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약성의 현대 아가서

아가(雅歌) - 구약성경의 한 부분을 빌려, 본체를 드러낸다

by 손현란

나보고 응급실로 걸어갈 수 있냐고 물어보는 놈이었다.


나는 그때 너무나도 취약했다.
나에게 괜찮냐고 물어보지도 않은 인간이었고,
나는 회사 앞 시내버스를 타고, 물속에서 걷듯이 무거운 두 발로 응급실을 들어갔다.


나는 그때 미련을 버렸다. 맨 마지막까지 버텨보겠다고 광합성을 한번 더 해보는 시들어가는 꽃은 기어코 오래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화분 하나조차도 맡길 수 없는 상황을 다음날 떠났다.


살면서 나는 항상 반복적으로 들은 말들이 있다:

씩씩하다.
강하다.
멘탈이 강철이다.
독립적이다.
당당하다.
스스로 못하는 게 없다.
알아서 잘한다.
애인이 부담스러워할 수 있겠다.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주지 못해 할 것 같다.
너가 아픈 티를 안내서 그렇게까지 생각을 안 했나 보다.
너무 강한 면만 보여서 너가 괜찮다고 생각했나 보다.
너도 작작 좀 해라.


너무 강한 면만 보여서 너가 괜찮다고 생각했나 보다.


나는 강해서 강한 사람이 아니다. 나는 갑옷이 아닌 번데기 속에서 지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 번데기처럼, 나는 한때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애벌레였다. 사실 나는 이렇게 항상 강하고 싶지도 않다. 나는 취약함을 느낄 줄 모르는 사람이 아니다. 그저 지금까지 나를 잡아줄 사람이 없어서 기회가 없었을 뿐이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통보를 해본다.

기도를 해본다.


나는 취약함을 느낄 줄 모르는 사람이 아니다. 그저 지금까지 나를 잡아줄 사람이 없어서 기회가 없었을 뿐이다.


내가 찾고 있는 취약함의 기회는 나 자신을 스스로 잃어버리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을 되찾을 수 있는 순간을 원한다.

오히려 그 누군가가 있어서 나 자신을 잠시 내려놓는 거지, 그가 없어서 나 자신을 떨어뜨릴 사람은 아니다. 내가 나를 놓을 때 누군가가 그 빈손을 대신 잡아줄 거라는 자신을 가지고 싶다.

누군가에게 내 몸을 맡기고 싶다. 마찬가지로 그 누군가가 나에게 몸을 맡겼으면 좋겠다.

손이 잡힐 때 손가락을 사이사이로 맞추며 손등이 어디 평평한 곳에 눌려보고 싶다.

하려고 하지 않은 말을 내뱉어보고 싶다. 진짜 하고 싶지 않은 말이라서가 아니라 그저 나 자신을 통제할 수가 없어서.

쑥스럽고 싶다. 속이 터지고 싶다. 땀도 내보고 싶다.

서로의 더럽힘을 딲아주고 싶다.

이러한 진정한 마찰을 느끼고 싶다.


나를 재로 태워 분해시키는 게 아닌, 차라리 초처럼 천천히 녹이는 그런 불이라면 그럼 나는 불장갑을 한 번쯤은 벗어줄 생각할 수 있다. 결국 내가 경험하고 싶은 취약함은 포기가 아닌 무장 해체다.


결국 내가 경험하고 싶은 취약함은 포기가 아닌 무장 해체다.


그래서 나는 기다려 본다.

나를 뚫어보려고 하지 않을, 태워보려고 하지 않을, 그저 번데기가 끝날 때까지 지켜봐 줄 누군가를 기다려본다.

나를 지켜봐 줄 그 누군가여. 지금 내 인생 속에 어디쯤에 있을까?

당신은 운이 좋으면 나는 날개가 만지기에는 부드러워도 바람을 견뎌낼 수 있는 나비로 나타나줄 수 있을 자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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