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픽하이의 랩퍼 '타블로'의 솔로 앨범 '열꽃'의 커버이다.에픽하이와 타블로의 음악은 내 10대의 곳곳을 수놓았다. 이 앨범을 발표하기 전까지 그는 개인적인 신상에 대해 악플과 언론의 부추김이라는 방식으로 마녀사냥을 당했다. 인간 이선웅(타블로의 본명) 개인의 삶을 고통스러울지라도 역설적이게 이 앨범은 이 사건들로 인해 더 빛이 났다. 물론 기본적으로 음악이 좋았으니까 서사가 더해 최고의 앨범이 되었겠지.
택배 상자에서 그의 앨범을 꺼냈을 때 다 타버린 그의 심장을 들고 있는 것 만 같았다. '하얗게 불태웠다'가 물성을 갖는다면 이런 느낌일까. 폐허가 되어버린 그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졌다.
오늘 오후 두 시, 아직 한창 근무 시간인 평일 낮에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2호선 강남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가는 내내 이 앨범 표지가 다시 생각났다. 하얗게, 새하얗게 타버린 상태, 요즘의 '나'다.
지난 주 이사까지 끝내고 개인적인 일정이 마무리 되었다. 늦가을 비가 슬쩍 얼굴만 비치고 강추위가 덜컥 새치기로 끼여 들었다. 열이 나고 목이 아프고, 침대 머리맡에는 코 푼 휴지가 한 무더기 쌓였다. 집과 병원에서 코를 세 번이나 찔렀지만(정확히 한번의 검사당 20회였으니 자그마치 60번이다) 음성이 나왔다. 감기든 요즘 유행하는 독감이든 내 몸이 더이상 움직이지 못한다며 흰 수건을 던진다.
To do list에 체크하지 못한 일이 아직 남았다면 몸을 원망했을 것이다. 그래도 내 면역력이 눈치껏 주요 일정을 얼추 끝내고 뻗어주었다. 마음은 편하고, 몸이 고통스러울 뿐이다.
24시간 꺼지지 않던 불이 몇 개의 알약으로 내려간다. 아이러니하다. 글을 쓰고 책을 내며 이사까지 한다고 장작을 넣었다가 이제는 약국에서 '해열제'를 찾는다. 약은 잔해만 남은 몸 깊숙히 파고 든다. 소화전에 있는 호스를 품에 안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누비며 물을 뿌린다. 열이 차츰 내린다.
다시 원점으로 집에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나누고 싶은 말들이 많다. 뇌에서만 웅얼웅얼하다가 코를 한번 탱 풀고 기침을 하면 초성과 모음들로 흩어져버린다. 비염약도 필요하다. 당분간 몸과 마음을 복구하는 시간이다.
명동에 있는 신세계백화점 본점이 연말 기념 화려한 미디어 파사드를 곧 오픈한다고 한다. 경기가 어려울 수록 사람들은 화려한 것을 찾는다는 드라마 '미스코리아'의 한 대사가 떠오른다. IMF로 한국 경제가 침체를 겪던 시절 그 해의 미스코리아 진이 된 주인공은 색깔이 강렬한 빨간 립스틱을 발랐다. 정신을 차리니 화려함이 다르게 보인다. 이럴 수록 팍팍한 내 삶의 중심으로 돌아가 내실을 다져야 한다. 크고 반짝임에 눈이 멀지 않도록 건강해져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