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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녕 Jun 28. 2022

야구를 모른다고 좋아할 자격이 없는건 아니잖아요

 

2019년 6월, 엄마와 함께 찾은 광주 챔피언스 필드. 엄마는 이제 무등 야구장에서 경기를 볼 수 없어서 아쉬워했다.


 나는 태어나기 전부터 기아 타이거즈의 팬이었다. 부모님은 과거 타이거즈의 홈구장인 광주 무등 야구장에서 주로 데이트하셨다고 했다. 엄마는 야구를 몰랐지만, 아빠 손에 이끌려 따라갔고, 시원한 생맥주의 맛과 응원의 재미를 배웠다.


 당시 (구)해태 타이거즈는 1986년부터 내가 태어난 1991년까지 5년 연속으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이런 역사적인 순간 동시대를 사는 팬들의 삶을 잠시 상상해본다. 몇만 명의 사람들이 어깨와 팔이 부딪치는 빽빽한 관중석에 앉아 큰 목소리로 응원가를 따라 부른다. 엄청난 함성이 야구장에 울려 퍼지는 소리를 들으면 심장이 두근두근, 벅찬 감정이 올라온다. 나는 이 팀의 열한 번째 선수이다.* 강렬한 소속감을 느끼며 이 팀의 활약에 나를 대입해본다. 매번 짜릿한 승리를 거두는 자랑스러운 우리 팀처럼 나도 나만의 그라운드에서 잘 해낼 수 있을 거란 희망과 용기를 얻는다.


 나의 부모님도 그 관중 무리의 한 커플이었다. 당사자에게 직접 물어보지 못했지만, 부모님의 결혼에 타이거즈의 승리가 꽤 기여했겠다고 짐작해본다. 그 후 부모님의 또 다른 결실로 ‘타이거즈 키즈’인 나와 내 동생이 태어났으니까. 그리고 어느새 서른두 살이 된 지금까지 이 팀을 응원하고 있다.

 엊그제도 평소와 다름없이 퇴근길 야구 중계를 보고 있던 중이었다. 한 해설진의 벼락같은 멘트에 이야기에 내 귀를 의심했고 ‘뭐?’하고 나도 모르게 지하철에서 육성으로 소리가 나왔다.


 “여자분들은 말이죠. 타자가 공을 치면 무조건 소리를 질러요. 공을 친다고 무조건 안타나 홈런이 되는 건 아니거든요.”


 마음속에 열 불꽃이 파바박 튄다. 불꽃이 향하는 방향은 해설가의 입이다. 모두가 보는 방송에서 성별을 특정하며 ‘여자는 야구를 잘 모른다.’는 편견을 당당하게 내뱉다니. 기분이 팍 식었다. 구닥다리 생각을 하는 사람이 하는 해설이라면 더 이상 들을 필요가 없었다. 중계 화면을 끄고 음악 앱을 열었다.


 음악을 들어도 화가 식지 않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야구를 모르는 사람을 비아냥거리는 그의 태도도 무례했다. 야구 지식이 없는 사람을 조롱하는 뉘앙스였다. 야구를 좋아하는데 어떤 자격이나 조건이 필요하진 않다. 야구장 가장 비싼 관중석에 있든 TV 앞 소파에 앉아있든 모두 똑같은 야구팬이다.


 야구를 오랜 시간 좋아했지만, 전문가처럼 잘 알지는 못한다. 투수가 던지는 공이 어떤 구종인지, 타자가 타석에 들어설 때 전광판에 크게 나오는 출루율**, 장타율***, OPS**** 같은 지표를 물어본다면 대답을 머뭇거릴 것이다. 하지만 나만의 방식으로 야구를 기억한다. 우리 팀 투수가 상대 팀의 타자를 세 개의 공으로 아웃 시켰을 때(삼구삼진*****), 타자가 친 공이 땅에 굴러가서 타자 두 명을 아웃 시켜 결정적인 득점 기회를 놓쳤을 때(병살타******). 그 행복하고 아쉬운 감정으로 야구의 룰을 익힌다. 만약 내 마음속 야구 사전을 펼쳐 본다면 용어의 사전적 의미보다는 기쁨, 감동, 분노, 벅참의 감정의 기억들로 빼곡할 것이다.


 저 해설자의 태도에서 그동안 야구 문화를 만들어온 사람들이(정확히 말하면 적폐들이!) 보였다. ‘선수가 있어 야구가 존재한다’는 생각으로 팬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고 책임감 없이 야구 경기를 하는 사람들. 팬의 사인을 거절하는 것은 기본이고 해외 도박, 음주 운전, 퇴폐업소 출입 심지어 작년에 가장 문제가 되었던 사회적 거리두기 방침을 어기고 숙소에 여성을 불러 음주를 즐기는 기행까지. 야구 협회(KBO)도 잘 못 하는 선수들을 감싸고 내버려두었다. 선수들이 잘 못 하면  하는 야구 협회(KBO)도 오히려 방치하거나 제 식구 감싸주기에 바빴다. 그래서 작년에 한국 야구의 팬을 처음으로 포기하고 한 경기도 제대로 보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실망’의 표시였다.


 야구 협회에서도 팬들의 차가운 시선을 느꼈는지 올해는 팬을 소중히 생각하겠다며 이런 저런 활동을 하고 있다. 그 덕분은 아니겠지만 올해 개막한 지 약 두 달째 150만 명이 넘는 많은 관중이 야구장을 찾았다고 한다. 나도 야구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호구인가 싶다. 하지만 모두가 같은 마음일 것이다. 좋아하는 야구를 오래오래 보고 싶다. 그래서 쓴 소리를 내면서도 티켓을 예매한다. 망하는 건 안 되니까. 망하면 선한 의도를 가진 누군가는 피해를 보게 될 테니까. 내 소중한 추억이 사라져버리니까.


 올해 다시 만난 야구. 부디 야구가 사회면의 안 좋은 이야기로 쓰이지 않길 바래 본다. 야구 경기를 보고 이야기하는 모든 사람들을 소중히 대하는 모습. 경기를 보며 마시는 시원한 생맥주맛, 경기장이 가득가득 울려 퍼지는 팬들의 응원소리. 내가 사랑하는 것들로 가득 채워지는 야구를 보고 싶다.


*야구는 한 경기에 선발 투수 1명, 타자(포수 포함) 9명이 뛰고 있다.

**출루율: 타자가 타석에서 베이스로 얼마나 많이 살아나갔는지를 백분율로 나타낸 수치.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장타율: 장타율 은 타자가 타격을 한 뒤 몇 루를 출루 가능한지의 기대 수치를 말한다. 단타를 1, 2루타를 2, 3루타를 3, 홈런을 4로 계산하여 합한 수를 타수로 나눈 값을 말한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OPS(On base Plus Slugging): 출루율과 장타율의 합으로, 타자의 성적을 간편하게 요약해 주는 평가 기준으로 인정받는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삼구삼진: 삼구삼진 (三球三振)이란, 야구에서 공 3개로 투수가 타자를 삼진 처리하는 것을 말한다.

******병살타: 병살(竝殺, 倂殺) 또는 더블플레이(영어: double play, DP)는 야구에서 노아웃 또는 1아웃 이상인 상황에서 타자의 타격 후 수비수가 그 타구를 잡아 2명의 주자를 아웃시키는 것을 말한다. 이때 병살의 원인이 되는 타자의 타격을 병살타(倂殺打, 竝殺打, hit into double play, grounded into double play, GIDP)라고 하며, 병살타를 친 타자의 타점은 타점으로 기록되지 않는다. (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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