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삶이 힘들더라도 버스 기사님께 화내지 말아주세요
우리 동네를 유일하게 다니는 마을 버스 한 대가 있다. 지대가 높은 동네에 살고 있어서 배차 간격이 이십 분이더라도 더위와 추위를 이겨내며 기다리고 반드시 타고야 마는 버스이다. 평소보다 지친 오늘의 퇴근길, 버스에서 한 바탕 소동이 났다.
회색 등산복을 입고 회색 모자를 쓴 술 취한 아저씨가 버스 기사님께 다짜고짜 화를 냈다. 자신이 버스를 기다리는 줄의 제일 앞에 섰는데 몇몇 사람들이 줄을 무시하고 뒷문으로 타버려서 화가 난 모양이다. 아저씨는 자리를 잡지 못해 기사님 등 뒤에 있는 기둥을 잡고 기사님의 뒷통수에 분노를 토하기 시작했다.
'왜 뒷문을 열었느냐'
기사님은 정류장이라면 문을 여는 것이 맞다고 말했지만 아저씨는 아랑곳 하지 않고 화를 내고 심지어는 '씨발'이라며 욕을 뱉었다. 그 순간 좁은 마을 버스의 안의 공기가 가열되고 불안한 기운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그 사이 새치기를 했던 아주머니들이 민망한 표정으로 자리를 아저씨에게 양보했지만 그는 십 분이 넘도록 불도저처럼 밀어 붙였다.
운전을 하는 기사님이 힘들고 외로워보였다. 기사님은 아무 잘못이 없는데 억울 당하게 폭언을 당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내가 울분이 치밀었다. 그렇다. 오늘 나도 회사에서 조금 억울한 일이 있었다. 최근 야근을 하느라 상당히 지쳐있고 피곤해서 나서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아침에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랐고, 우리 동네 유일한 버스기사님이 불필요하게 욕 먹는 일이 싫었다. 아저씨에 다가갔다.
"아저씨, 저도 피곤한데 사람들이 새치기해서 자리에 못 앉는 그 마음을 너무 잘 알아요.
아저씨 마음을 다 이해해요. 하지만 기사님이 아니라 새치기한 사람들이 잘 못이잖아요.
기사님께 뭐라하지 말아주세요. 이 버스는 이 동네에 유일하게 다니는 버스에요."
나의 간절한, 간곡한 부탁에 아저씨는 몇 마디 투덜거리더니 말을 멈추었고 이윽고 버스가 다음 정류장에 서자 버스 안의 공기가 바뀌었다.
아저씨의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이십 분 내내 버스를 기다렸는데 자리를 빼앗겨 짜증나고 지쳤을 것이다. 하지만 분노의 대상을 잘못 선택했다. 그동안 어디서 쌓인 울분까지 꺼내어 죄 없는 기사님을 마구 말로 때렸다. 나라도 기사님 편이 되고 싶었다.
지난 이 년 동안 코로나 19 사태를 겪으며 버스 배차가 줄어들었고, 이제는 배차를 늘리고 싶어도 기사님을 구하기 어렵다고 한다. 버스 창문에 늘 붙어있는 '기사님이 구하기 어려워 배차가 많지 않아도 이해바란다'는 문구가 항상 마음에 걸렸는데... 이렇게라도 기사님 편이 되고 싶다.
마을 버스 기사님은 최근에 가장 나에게 소중한 분이다. 이 분들이 나의 고된 짐을 함께 짊어주는 덕분에 매일을 견디고 있다. 다가오는 연말에는 몇 분 안 되는 버스 기사님을 위해 무엇이라고 하고 싶다. 내가 회사에서 겪은 외로움을, 누군가는 겪게 하고 싶지 않다. 당신을 응원하는 사람이 여기 한 사람이라도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