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스러움, 그 감정에 대하여
#독일을벗어난 #첫번째 #나홀로해외여행 #암스테르담 #여행
#능력주의 #제국주의 #proudness #정치 #난민
여러 여행들이 나에게 큰 생각의 변화를 주었지만, 그중에서 굉장히 낯설게 다가와 나를 크게 흔들어놓았던 변화의 기억을 뽑자면, 암스테르담을 손꼽을 수 있다. 그중에서 "Proudness"에 대한 경계는 암스테르담에서 만난 이들과 했던 토론이 시작이었고, 그리고 그 이후 내 속을 깊게 파고들어서 다양한 대화를 통해 더 자라게 된 생각이다.
Are you proud of your country?
당신은 당신의 나라가 자랑스러운가?
국가와 히로뽕을 섞은 국뽕이라는 신조어가 생긴지는 좀 된 듯하다. 국뽕을 조장하는 영상들을 나도 본 적이 있는데, 그래서 국뽕이 주는 벅차오르는 뿌듯한 감정이 무엇인지 참 잘 안다. 사실 국뽕의 역사는 오래되었는지도 모른다. 학교에서는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국민의 경례를 하며 애국가를 불렀던 기억이 있고, 3.1절에는 국기를 다는 등 국기, 애국가 이런 것들이 우리의 삶에서 모두 자연스럽다. 나 또한 내 나라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우리의 역사에 가슴 아파하면서 지금까지의 우리나라를 지켜내고 만들어낸 조상님들을 항상 존경하고 사랑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더 행복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런데,
역사를 배우고, 애국가를 부르고, 국기를 달고 모든 나라가 그런 거 아닌가?
태어난 나라를 자랑스러워하는건 자연스러운 감정이 아닐까?
뭐를 경계해야 한단 말인가?
처음 생각의 시작은 앞에서 말한 대로 암스테르담에서의 여행이었다. 하이델베르크에서 만난 친구의 집에 초대돼서 지내다가 함께 당일치기로 네덜란드 Maastricht를 갔고, 아쉬운 마음에 혼자서 네덜란드를 좀 더 여행하기로 했다. 막상 암스테르담에 도착하니 비가 쏟아졌고, 호스텔로 가서 몸을 녹이다가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게 됐다. 처음에는 캐나다인, 벨기에인, 독일인, 이탈리아인, 그리고 나 총 다섯 명이서 이야기를 하다가, 새로운 친구가 오게 된다. 그동안 나 빼고 모두 남자였던 지라 여자인 친구가 반가웠었는데, 그 친구는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덴마크에서 온 친구였다. 그녀는 목소리부터 행동까지 정말 자신감이 넘치는 친구였다.
하지만 그 자신감이 무례함으로 바뀌는 건 한순간이었다.
옆에 앉은 캐나다 친구의 발음을 공격을 하기도 하고
"너 발음 진짜 미국인 같아서 나는 너 미국인인 줄 알았어. 소리가 딱 멍청한 미국인 발음이야."
....
가만히 있는 독일인에게 시비를 걸기도 했다.
"나는 나치 정당을(Afd, 극우 포퓰리즘 정당) 지지하는 독일인들이 그렇게 많은지 몰랐어! 지지율이 10프로를 넘었다는 뉴스를 봤을 때 우리 모두 기절하는 줄 알았어. 우리에게 위협이야. 어떻게 너희는 그런 역사가 있는데도 그럴 수가 있어? 너희는 이웃 국가에 그게 얼마나 위협적인지를 알아야 해"
(*1940년에 독일은 덴마크를 침략하였다)
"우리들도 놀랐어. 우리들한테도 그건 분명히 무서운 일이야. 하지만 그 당시의 상황도 분명 고려해야 해. 우리는 그때 난민들을 너무 많이 받아들이느라 생긴 반발과 난민 관련 사건들 때문에 지지율이 높아졌던 거야. 지금은 다시 한 자릿수로 낮아졌어." - 독일인
(*UN 기준으로 2020년 독일의 난민 규모는 121만 명, 세계에서 난민을 제일 많이 수용한 나라다.)
"아무리 그래도 그게 가능한 일이야? 우리도 극단적인 우파가 있지만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소수라고."- 덴마크인
"우파적이면서 타지인들 배척하는 거는 덴마크가 가장 심하지 않아? 너희 나라는 외국인에 대해 엄청 폐쇄적이잖아. 독일은 정말 많은 난민을 받아들였지만, 너희는 난민 못 들어 오게 하려고 철도도 막았잖아. 그리고 나는 벨기에에서 여기를 올 때 경찰을 본 적이 없었어. 근데 내가 덴마크에 갔을 때 국경에도 총 든 군인들이 서 있었고, 곳곳에도 너무 많아서 무서웠어. 나는 그것도 문제라고 생각해" -벨기에인
"그래 너희들에 비해 우리가 닫혀 있다는 건 인정해. 그렇지만 군인들은 너희가 죄만 안 저지르면 안전한걸? 그들 덕분에 더 안전하다는 걸 너희는 느낄 수 있을 거야!" - 덴마크인
"총을 들고 있는데 외국인들이 어떻게 안전함을 느껴? 그거 자체가 배척을 드러내는 거 아니야?" - 벨기에인
...
그런가 하면 자신에 나라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나는 우리나라가 너무 자랑스러워. 여기서는 모든 게 다 잘 돌아가! 교육도 잘 돌아가고, 사회 시스템도 잘 돌아가고, 정치인들도 일을 잘해! 난 내가 내 국민인 게 행복해" - 덴마크인
"근데 네가 한 게 아무것도 없는데 어떻게 그거에 자랑스러워할 수 있어? 지금의 너는 그 시스템을 이루는 데 아무것도 기여한 게 없잖아. 어떻게 자랑스러운 감정이라는 게 맞는 단어야? 네가 거기에 태어난 건 단순히 운일 뿐이야." - 독일인
"그리고 여기에 있는 캐나다도, 이탈리아도, 벨기에도, 한국도 다 좋은 나라라고. 모두가 더 할 것도 덜 할 것도 없이 다 아름다운 나라야. 우리 모두가 다 운이 좋다고." - 벨기에인
"아니 근데..... 우리나라는 정말 다르다니까? 내가 하지 않았어도 내 조상들이 한 거고. 내 친구가 내 도움 없이 시험을 잘 봤다고 하더라도 난 네가 자랑스럽다고 말할 수 있는 거 아니야? 내가 한 게 아무것도 없다고 하더라도 자랑스럽다고 말하는 거 그게 나쁜 거야?" 덴마크인
....
덴마크 친구는 끝까지 자기 나라가 최고라는 걸로 우리를 설득하고 싶어 했고, 나는 불쾌했지만 끝내 내 감정을 말로 쉽게 표현하지 못한 채 불만족스럽게 이야기를 끝내야 했다. 사실 부끄럽지만 여기서 나온 대화 주제들도 모두 낯설었다. 난민에 대해서도, 유럽 각 나라의 역사나 현 정치 상황에 대해서도 충분한 지식이 없었기에, 그리고 자랑스러움이라는 단어에 대해서도 정립된 생각이 없었기에 쉽게 말을 하지 못하고 속으로 감정을 끓이기만 했다.
그리고 다음날 캐나다와 벨기에 친구들과 함께 돌아다니면서 좀 더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후 혼자서 네덜란드의 박물관에서 이 그림을 보는데 그동안 어떤 언어도 달지 못했던 나의 감정이 빵 터지고야 말았다.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를 340년이나 식민지로 삼았다.)
그럼 수많은 식민지들에서의 착취는?
무수한 사람들을 쥐어짜내서 노동력을 얻고, 자본과 자원을 빼앗아서 유럽은 발전했잖아
그런데 어떻게 proud 라는 단어를 쉽게 쓸 수가 있는 거지?
한동안 쳐다봤던 거 같다.
번쩍거리는 제복을 입고 있는 장군보다 절망하고 있는 이들이 더 눈에 들어왔다. 그림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배와 대포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나는 우리의 역사를 겹쳐 떠올리며 분노를 느꼈다.
이것이 나의 피해의식일지라도 그제서야 이해가 되었다. 아 나는 이래서 불쾌했구나.
자랑스러움이라는 건, 나라에 함부로 붙일 수 있는 단어가 아니구나.
나라를 사랑하는 것과, 맹목적인 자랑스러움은, 그리고 그로 인한 우월감은 분명히 다른 거구나.
하지만 사실... 나라뿐만이 아니다.
모든 성공이 그렇다.
아테네의 민주정은 서양의 민주주의 정치의 '자랑스러운' 근원으로 여겨진다. 그들은 배심원에게 수당을 지급함으로써 이들이 자신의 생계에 부담을 느끼지 않고 법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장려하기도 했는데, 엄청나지 않은가? 하지만 이 돈은 델로스 동맹의 자금을 멋대로 강탈하면서 나왔다. 델로스 동맹은 페르시아 전쟁 이후에 아테네가 다른 폴리스(도시) 들과 맺은 동맹이다. 이들은 페르시아가 다시 쳐들어올 것을 대비하여 전쟁 자금으로 쓰자고 돈을 금고에 모았고, 힘이 세진 아테나는 다른 폴리스들의 내정에 간섭하고 무역을 통제하며(아테네를 지나게 해서 교역 관세를 내게 함) 횡포를 부리다가 급기야 동맹의 금고를 멋대로 자신의 아크로폴리스로 옮긴다. 또한 아테네의 아티카 주민의 30~40%는 노예였다. 즉, '갈취'하여 확보한 재정이 아테네 민주정 운영의 기반이 된다. 아테네가 민주주의가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들이 민주주의의 피가 끓어서가 아니라, 수탈과 희생을 기반으로 둔 자금이 존재했기 때문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
우리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가 특정 성공을 이뤘을 때, 그것이 온전히 나만의 것이라고 할 수 있는가? 누군가의 희생이 있지 않은가? 나는 부모님의 희생으로 여기까지 왔다. 나를 위해 당신의 시간과 돈과 감정을 써주신 부모님이 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일상에서 내가 입고 먹고 살아가는 모든 것들이 그렇다. 모든 것들에 타인의 힘과 땀이 들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아이들은 여전히 수없이 많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가기 위해 죽었던 동물들은 또 몇 인가.
내가 했다고 하더라도
나 독단적으로 이룬 성공이란 없다.
독단적으로 성공한 나라 또한 없다.
그리고 이 모든 성공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운이다.
그런 환경이었기에, 그런 시대였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어떤 사람의 환경에서는 약간의 노력만으로도 큰 성공을 거둘 수 있고, 어떤 사람은 죽기 살기로 해야 한다. 거기에 불공정한 사회구조까지 있다면 후자는 더더욱 성공하기 어려워진다. 내가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건, 공부를 칭찬해 주는 가정환경과, 필요한 학원들을 갈 수 있는 경제력과, 운 좋게 만나 나를 칭찬해 준 좋은 선생님들, 운 좋게 만나 좋은 영향을 준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노력할 수 있다는 것도 얼마나 많은 우연들과 얼마나 많은 환경들이 뒷받침해 줬기에 가능한 걸까. '네가 무슨 공부야. 공부한다고 유난이야.? 너 주제를 알아.' 이런 언어를 수시로 듣고 자라나는 아이들과 나는 얼마나 다른 환경 있겠는가. 내 재능도 심지어 내가 노력을 하도록 하는 능력도 결코 온전히 내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하물며 내가 하지 않은 것에 대해 자랑스러운 감정을 가지는 것은 얼마나 위험한가
자랑스러움은 쉽게 특권의식으로 변질되고, 나는 내가 잘나서 된 것이며 너는 네가 못나서 그렇게 된 것이라는 능력주의적 사고방식에 취하게 된다.
나의 것이 우월하다는 생각은 남에 대한 배척과 차별로 이어진다.
우리나라는 잘하고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우리는 561명의 난민을 제주도에서 내쫓고자 20만 명이 한마음으로 청원을 한 부끄러운 국가다. 최근에 한국에서 만난 독일인 친구는 홍대에서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식당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한다.
이런 우리를 온전히 자랑스러울 수 있는 나라라고 할 수 있을까?
자랑스러움이라는 감정을 경계하자.
대신 내가 여기까지 오는 데 필요했던 무수히 많은 이들의 도움과 희생을 감사하며, 내 것만이 정답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자.
자랑스러움에서 벗어나서 내가 한 것이 없다는 겸손함과 주변에 대한 감사함이 타인을, 다른 문화를 존중할 수 있는 힘을 만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