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의 말, 나의 말

--책, 코 끝의 언어 중

by 이도원

오래전 읽은 책의 일부를 다시 한번 복기한다.


"대부분의 식물이 그렇듯이 풀잎은 냄새를 수단으로 서로 소통한다. 꽃이 피는 식물은 자신의 향기로

꽃가루받이를 해줄 매개자를 유혹하고 과실수는 냄새로 자신의 씨를 퍼뜨려줄 동물을 부른다. 식물은 자기들끼리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데, 이 사실은 아직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동물과 달리 식물은 한 장소에 뿌리를 박고 살아간다. 천적이 다가와도 도망칠 수가 없다. 그래서 냄새로 천적을 피하고 서로에게 경고를 보내준다.

천적의 공격을 받은 식물은 휘발성 화합물을 방출해 주변의 다른 식물에게는 눈앞에 닥친 위험에 대한 경고를 보낸다. 경고를 받은 식물들은 재빨리 자기 몸의 일부에서 영양소를 빼돌리거나 자신을 덜 맛있게 만들어서 천적이 흥미를 잃도록 만들거나, 그로부터 입게 될지도 모를 상처를 치료할 준비를 미리 해둔다.

식물의 일부에서 다른 일부를 향해 공격자가 다가오고 있음을 경고하기도 한다. 식물들은 어떤 곤충이든 자기 몸을 향해 다가오는 곤충을 향해 후각 신호를 보내기까지 한다.

"내 적의 적은 내 친구다"라는 논리다.

식물은 몸에 상처를 입으면 리폭시게나제라는 효소를 활성화시키고 (중략)"

코 끝의 언어 -우리 삶에 스며든 51가지 냄새 이야기 주드 스튜어트 지음 윌북 출판사


나는 이 문장이 주는 여러 의미 중 하나를 생각해 본다.


바로 식물의 냄새가 식물의 말이라는 것에 비추어 봤을 때 문득 드는 생각.

나의 말은 어떨까. 말투는, 말의 태도는, 말의 내용은.

식물이 생존하기 위해 냄새를 피우듯 나 또한 나를 드러내기 위해 말을 했었다. 숨기는 것 없이 여과 없이 튀어나오는 말 때문에 특히 말투로 인해 지적을 받은 적이 있었다. 솔직해서 좋겠구나, 넌. 하는 비아냥에 가까운 말도 들었다

국민학교(초등학교) 때 치렀던 한 시험에서 본 문제가 떠오른다. 토론할 때 해야 할 자세 같은 것이었다. 타인의 말을 자르지 말고 끝까지 듣고 논리에 맞게 말해야 한다는 모범 답안. 그중 이게 있었다. 겸손하지 말 것. 기억의 오류일지도 모르지만 토론에서 겸손은 피해야 하는 덕목이라는 것.


토론할 때 논리에 밀리면 바로 문제를 삼는 것이 내 말투였다. 말투가 그게 뭐야, 하고 상대방이 아니면 다수가 걸게 되면 백전백패가 되었다. 내용은 맞지만 전달이 거칠어. 결국 말투 때문에 내가 한 말의 진정성은 무시되기 십상이었다.


그래서 말 대신 글을 선택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겸손하면 할수록 작위적이고 위선적이 되기 쉬웠다. 특히 소설은 더욱 그랬다. 주인공 화자의 지극한 예의바름이나 순응적인 캐릭터는 소설의 주제를 약화시킨다는 ,

소설이 적어도 체제에 순응한 주인공을 만들지는 않는다는 사실에 닿은 것이다.


나는 오늘도 '내 적의 적은 친구다' 하고 말하는 식물의 냄새처럼, 식물의 말처럼 저항과 분노에 찬 한 주인공을 불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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