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에는항상 상훈이형이 있다

영화가 운명이 된 사람, 한상훈감독

by 이도원

최근 열린 한 북 토크에서 구입한 책이 있다. 책 제목은 『극장에는 항상 상훈이 형이 있다』이다. 놀랍게도 책을 추천한 이는 김지운 감독, 봉준호 감독이다.

책 제목에서 극장이라는 말이 친근하게 느껴졌다. 오래전, 지금의 멀티플렉스가 아니라 오직 단 한 편의 영화가 상영되던 공간의 이름 ‘극장’이다. 책제목의 ‘극장’은 단번에 과거의 한 시절로 돌아가게 만들어주었다.

감독이자 작가(이하 감독으로 통일. 그가 제작한 최근의 영화 제목은 『동재기나루터의 여름』이다) 는 책제목에서 나오듯 한상훈이라는 영화감독이자 영화평론가이다. 프로필엔 극장의 유령, 몽상가라고 자신을 밝히고 있다. 북 토크에서 작가는 자신이 몽상가 일 수밖에 없었던, 유령일 수밖에 없었던 일화를 무심하지만 따뜻하게 고백했다.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것이 영화였다, 라는 그의 뜨거운 고백은 유령과 몽상가를 훌쩍 뛰어넘은 듯 느껴졌다.

책은 영화에 대한 고백과 평론으로 반반 균등하게 이루어진 느낌이었다. 그 반반은 물처럼 흘러 종국엔 인생으로 흘렀다.

감독은 자신이 여러 번 본 팔천 여 편의 영화 중 「현기증」(알프레드 히치콕 감독)과 「벌새」(김보라 감독)를 특히 경탄하고 있었다. 애석하게도 나는 명작인 이 두 편의 영화를 보지 못했다. 영화에 관해선 음식 보다 더 극단적인 취향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이 두 영화에 대한 명성은 익히 알면서도 적극적으로 보려고 시도해보진 못했다.

나로선 감독의 전문가적 평론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실지로 그가 세세하게 묘사한 영화 평론은 마치 영화 한 편을 두 번 본 것과도 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재미있고 풍부하고 유익했다. 적어도 영화를 보려면 이러저러한 시대적, 역사적 배경과 아울러 영화음악, 감독의 철학, 영화배우의 특색 정도는 필수라는 사실을 확인함과 동시에 이 책은 그러한 가이드로는 최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암울하고 고통스러웠을 때 운명처럼 본 영화가 위로와 치유와 생명의 동력이 되었다는 감독의 말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과 나의 교집합인 영화는 고작 서른 편이 안 된다. 게다가 감독이 경탄한 영화는 내가 보지 못한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파리, 텍사스」가 「수색자」와 비슷한 줄거리와 주제라는 것에, 또한 「파리, 텍사스」의 감독인 빔 밴더스가 「수색자」의 영화감독인 존 포드 감독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감독의 말에 평행이론과도 같은 기이한 느낌을 받았다. 실지로 나는 「파리, 텍사스」에서 받은 감동으로 소설을 쓰기도 했는데 소설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비디오대여점에서 일하는 여주인과 비디오테이프(VHS)를 빌리러 가는 한 남자가 영화, 「파리 텍사스」로 정서적 교감을 나누는 것이 주제였다.

또 하나 「파리, 텍사스」 주인공의 이름이 트래비스(해리 딘 스탠트 분)인데 감독이 언급한 영화 「택시 드라이버」의 주인공 이름도 트래비스 (로버트 드 니로 분)다. 앞의 트래비스가 가족의 상실감에 텍사스 사막을 방황하고 있다면 뒤의 트래비스는 전쟁의 상흔에 고통스러워하며 뉴욕 시내를 달리는 택시 기사이다. 트래비스의 어원을 찾아보면 고대 노르만 프랑스어 단어에서 파생된 것으로 ‘가로지르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렇듯 영화는 시간과 공간을 가로지르며 세대와 성별, 인종, 계급을 초월한 세계를 확장시켜 준다.

그러므로 영화의 최대 수혜자이자 안내자, 제작자로 확장한 한상훈 영화감독이 쓴 「극장에는 항상 상훈이형이 있다」는 바로 영화가 운명이었고 앞으로 운명일 사람들에게 보내는 뜨거운 사랑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가 쓴 책 속의 인용을 인용한다.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긴다.’ 그리고 덧붙인다. '그리고 영화도 모든 것을 이긴다. 고통도 시련도 죽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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