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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원 Apr 28. 2024

꽃나비달, 경화 씨의 첫 시집

꽃나비달 -만인사시선 85

우리는 오래 만났다. 둘 다 공통점도 없고 딱히 교집합도 없는 우리는 그 무심함 때문일까, 이것으로  오래가고 있다. 내가 함부로 판단하는 것은 이렇다.  기다리는 것을 좋아하고 고기 보다 국수를 좋아하고 멍한 상태를 좋아하고  두 개가 있으면 하나를 기어코 나누려고 하고  나물 무치는 번거로운 행위를 마다하지 않는 것, 그렇게 아름다운 용모이면서도 한사코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이라는 것.


등단하고 34년 만에 첫 시집을 묶었다.  등단하고 20년 만에 첫 소설집을 낸  나보다 더한  결벽증이며 나태함이다. 뭐든 귀찮아하는 것, 그냥 혼자 멍하니 있게만 도와준다면 뭐든 할 수 있는 것, 아, 이것이 닮아서 이렇게 오래도록 만날 수 있구나. 쓰면서 깨닫는다.


나는 이 시집의 제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지금 와서 꽃을 나비를 달을 말하면 어쩌라고. 사람들은 이것들이 그저 반려의 대상일 뿐, 존재의 대상이 되지 않은지 오래되었다. 그래서 간절해졌다고 해도 너무, 우린 너무 멀리 와 있다. 게다가 그녀의  시집엔  빛나는  시어가  얼마나 많은가.  그냥  흔하디 흔한 명사를 한데 뭉친 것밖에 지 않았으니. 결국 취향의 문제인가.

 


지나가는 비


누가 하늘을 쳤는가


장대비 쏟아진다


꽃이파리도 다 떨어졌겠다


지금, 울기 좋은 시간이다



'지금, 울기 좋은 시간이다' 참 좋은 표현이다.


연애감정



그녀와 나 사이

남모를 텃밭 있어

허구 헌 날 피고 지는

깨꽃  파꽃 눈물 콧물

우스워라 서러워라

밀고 당기며

입질 호미질

무엇을 심으랴

무엇을 거두랴

개코 아무것도 아닌

쭉정이 개털도

어허둥둥 내 새끼


요것이 어디서 왔나

쳐들고 깨물고


그녀는 이렇게 제목을 잘 뽑는다. 이뿐이랴, 우는 감정에 대해서 모르고서는 쓸 수 없는 시다. 좀처럼 울지 않을 사람처럼 보이는데, 울음을 참는 행위를 수행의 한 방편으로 생각하는 사람처럼 보이는데. 울지 않으면서 우는 행위에 대한 분석을 마친 것처럼 보인다. 울컥, 울고싶은데 도저히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지 않을 때 이 시집을 읽으면 끝내 눈물로 흐르지는 않아도 찔끔 고일지는 모르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이 시집을 받고 돌아오면서 한 시간 넘게 걸었다. 시 때문은 아니었다. 시인 때문이라고 해야 하는 것이 정확할까. 그냥 걷고 싶었다. 한밤중 11시가 가까이 오가는 거리 술집마다 고기 타는 냄새가 났고 통음이 아니면 그 어느 것도 하기 싫은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의 내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외로움이나 서러움의 냄새도 맡는 듯한 착각이 일어났다.


집으로 돌아와 다시 한번 더 이 시를 읽으며 야식의 욕구를 물리쳤다.


밤참



나의 밤참은

찬밥덩이에 김치 얹어 먹는 것

잠든 세상 빠져나와

김치대가리 씹는 맛이란

그러다 목 막히면

찬물 쿨컥쿨컥 들이켜는 그 맛

펼쳐놓은 시집,

즐겨 읽는 시 위에

김치 국물 떨어뜨려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떨어진 국물을 재빨리

혀끝으로 불러들이며

핥아보는 식의 맛이란

떠나간 사람 그리워

배고프게 그리워

찬밥덩이로 그 울컥거림을

막아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시 제목에 대해 며칠 동안 생각했다. 나는 너무 무기력한지도 모르겠다. 꽃과 나비와 달을 지키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그것들을 외면하는 사람들 틈 속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것을 몰랐고 아니 알았다고 해도 너무 늦었다고, 늦었으니 그냥 이대로 종말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는 나약함을 토로했는지 모르겠다. 시인의 고군분투를 외면한 것에 대한 나의 무지를 발견함과 동시에 우물 속의 두레박 같은 시인의 깊은 마음도 확인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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