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미오와 로미오

3. 초원장

by 이도원

할머니는 한 치의 어긋남이나 빈틈이 없는 팔순 넘은 여성이자 할머니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영민했다. 어떻게 여관 이름을 초원장으로 지을 생각을 하였는지 놀라울 지경이다. 할아버지는 할머니에게 여관 이름을 뭐라고 정해야 할지 물었다.

며칠 골몰하던 할머니가 내놓은 이름은 ‘초원장’이었다.

“여관이 더러운 곳이 아니라 청정한 곳이라는 것을 인식시켜 줘야 해요.”

‘좋아. 초원장으로 하지. 유명한 이름을 따는 게 위험부담이 적으니까.”

할머니는 남녀가 은밀하게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꼈다. ‘그것이 불륜이든 부부이든 연인이든 부적절한 관계이든 상관없이 사랑을 나눌 수만 있다면 좋은 일이지. 돈을 버는 것 때문만은 아니다. 그 어떤 것도 사랑을 이길 수는 없으니까. … 내 두 아들은 모두 용감해. 용기가 있으니까 그런 일을 당한 거지. 네 큰 아버지도 그리고 네 아버지도. 네 아버지를 선택한 네 어미도. 비록 더 이상 견디지 못했지만 … 네 어미를 원망해선 안된다. ”

하지만 할머니가 여관집 주인이 된 것을 알게 된 가족은 물론 동네친구들조차 모두 할머니에게 등을 돌렸다. ‘돈이라면 환장을 하는군. 결국 남편 닮아 변질되는 모양이네. 아들을 잃고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냐? 게다가 둘째 아들도 문제라며. 집안에 망조가 들었네. 쯧쯧. ’ 그러나 할머니는 그들이 그러든 말든 삼백육십오일 하루도 빠짐없이 수부실을 지켰다. 이렇게 된 데에는 할머니의 고질적인 차멀미도 원인 중 하나였다. 할아버지의 고급 승용차도 할머니의 멀미를 없애줄 수는 없었다.

벚꽃이 찬란했던 날이었다. 넓은 호수를 끼고 낮은 채마밭과 벚나무가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한참이나 달린 길의 마지막에 그야말로 눈이 시리도록 하얀 초원장이 있었다. 3층의 번쩍번쩍한 신식 건물이었다. 할머니의 말대로 불온한 욕망을 아름다운 사랑으로 합리화할 수 있을 만큼 눈이 시리도록 하얀 건물이었다. 오리배가 묶여 있는 호숫가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밀랍처럼 온통 새하얀 건물 앞에 초원장이라는 간판이 걸려 있었다.

할머니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구토하였다. 할아버지가 얼굴을 찌푸렸고 로미오와 엄마를 보며 ‘내가 저들 모자까지 벌어 먹여 살려야 한다는 말이지? 아, 그놈이 이렇게 달아날 줄은 몰랐어. 지 마누라도 새끼도 버리고 말이지. 그러니까 그렇게 더러운 짓을 하니까…’하고 말하다가 입을 닫았다. 할머니의 얼굴도 엄마의 얼굴도 창백하게 변했다. 로미오는 더러운, 이라는 말에 가시가 목구멍에 걸린 듯 답답했다.


뿌연 먼지를 뒤집어쓴 가구가 실려 있는 트럭 앞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말다툼을 했다.

“아니 이 낡은 자개장이며 문갑이며 가구가 이곳과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거야? 모두 다 버리고 오자는데 말을 듣지 않더니. 봐, 이게 저 수부실에 들어갈 것 같아? 거긴 이불과 텔레비전만 들어가는 공간이라고. 당신은 거기 하루 종일 지켜야 하고. 왜 말을 듣지 않아. ”

할아버지는 고함을 질렀고 할머니는 입술을 깨물고 트럭에서 내려오지도 못한 채 실려 있는 가구를 망연하게 바라보았다. 주위에 둘러 서 있던 인부들은 부부싸움을 구경하며 담배를 피워댔다. 할머니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것들은 부모님이 나에게 물려주던 것이니까 함부로 버리지 못해요. 저기 별채를 하나 지어서 거길 vip 방으로 꾸며요. 거기에 이 가구를 그대로 넣어요. 신혼여행 온 부부나 노부부들에겐 저런 고풍스러운 가구가 호텔처럼 느껴질 거예요. 그리고 큰아이가 돌아오면 … 병원에서 돌아오면 걔가 별채에 있어야 해요. 눈에 익은 가구를 보면 안정될 거고 그땐 내가 그 아이 옆에 있어 줄 거니까. 내 말대로 하지 않으면 난 여길 떠날 겁니다. 우리 셋 모두 볼 생각하지 말아요.”

할머니가 엄마와 로미오의 손을 잡았다.

할머니의 단호한 말에 할아버지는 뒤로 물러섰다. ‘별채라면 돈을 더 받을 수 있겠군.’ 돈을 버는 것이라면 무슨 짓이든 하고야 마는 할아버지의 욕망이 결정을 빠르게 내릴 수 있었다.

로미오처럼 초원장이라는 공간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지 않는 사람은 할머니뿐이었다. 목욕탕이 딸린 여관을 운영하고 있는 할아버지는 평생 여관사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자신에 대한 자괴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좀 더 근사한 사업, 하다못해 대형마트라도 하나 하고 있었더라면 구의회 의원 정도는 능히 가능했으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청소를 하는 바람댁도, 보일러나 전기 기술자인 박 씨, 여관비품을 배달해 주는 사람들도 모두 여관에서 밥을 빌어먹고 있는 것을 남세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마당의 누렁이 개마저도 여관의 개라는 것이 수치스러운 것인지 맥을 못 추고 늘 깨갱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로미오는 그렇지 않았다. 로미오는 이곳 초원장이 존재의 시원이며 원천으로 생각할 정도였다.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가 사라지고 없는 적막감과 엄마의 조울증, 여자와의 스킨십을 이야기할 때마다 그 친구에 대한 서운하고 쓸쓸한 느낌을 가졌던 때의 혼란에 비하면 초원장은 단순하고 명확한 공간으로 생각되었다.

할머니의 오래된 거울은 이곳 초원장에서도 사람들에게 기이한 느낌을 주었다. 별채에 들어왔던 신혼부부들은 몇 만 원의 웃돈을 더 지불하면서도 고풍스러운 실내 인테리어에 탄복하였다. 특히 거울을 보며 ‘멋진 거울이야. 우리도 이렇게 백년해로할 수 있겠지.’ 하고 말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아직도 저런 거울이 있나. 그것도 이런 여관에 말이야. 몰래 훔쳐가서 팔아버릴까. 텔레비전의 진품명품 같은 프로그램 말이야’하고 말하거나 ‘저 거울을 보니 좀 으스스해지는데.’ 하며 당장 방을 바꿔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언젠가 로미오는 거울 속에 억울하게 죽은 자의 넋이 스며있어 살아있는 사람들을 차례차례 끔찍하게 살해하는 영화를 본 적이 있었다. VTR이 사라지자 비디오테이프도 모두 폐기처분하였다. 그 비디오테이프는 아마 주차장 한쪽 창고에 처박혀 있을 것이다. 할머니의 고집으로 살아남은 거울은 객실 안 남녀의 알몸과 성교를 비춰주며 그들의 욕망을 위로하였을 것이다. 어쩌면 사람들은 거울을 들여다보며 ‘거울아 거울아, 내가 행복하긴 하고 있는 거니?’하며 물었을지도 모른다. 거울은 어떻게 그것을 견딜까. 하루에도 몇 번씩 얼굴을 들이밀고 넋두리와 한탄을 하는 사람을 대하는 것은 고역이다.


‘거울도 갈수록 나처럼 변해가는구나. 네 어미에게 물려주려고 했었는데.’ 할머니는 말을 삼켰다. 엄마를 떠올리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 된 지 오래되었다. 말을 하고 나면 암울해졌다. 초원장은 더욱 퇴락하게 보이고 할머니도 큰아버지도 미자이모도 유령처럼 느껴졌다.

“내가 가질게요. 할머니.”

로미오는 이 말을 하고 말았다. 소설을 쓴다면 이 거울이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흠모했던 고등학교 남자선생님을, 같은 반 친구에게 감정을 고백하지 못했던 말을 입 밖으로 토해내듯 말하고 만 것이다. 할머니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로미오를 보았다. 타인의 마음을 용케 잘 아는 할머니가 로미오의 정체를 알게 될까 봐, 왜 대학교를 자퇴하였는지, 왜 여자든 남자 친구가 없는지를 알아차릴까 봐, 아니 그것보다 아버지를 닮은 것이 아닐까, 하고 의심할까 봐 서둘러 말해버렸다. 엄만 로미오 또한 아버지와 같다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어쩌면 엄마는 그 말을 하게 될까 봐, 발설하지 않기 위해 초원장을 뛰쳐나갔던 것인지도 몰랐다. 아니, 그것은 로미오의 존재를 부정하고 싶어 했던 엄마의 신념이었을지도 모른다. 남편에 이어 아들까지로 이어지는 비정상적이 자신의 생애 전체를 뒤덮는 것만은 피하고 싶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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