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미오와 로미오

2. 오래된 거울

by 이도원

로미오는 벽에 걸린 거울을 바라보았다. 할머니의 오래된 거울은 이제 볼품없다. 거울을 장식하는 나전칠기 문양은 칠이 벗겨지고 사각의 모서리도 깎여져 있다. 이건 내가 시집올 때 물려받았던 거울이야. 낡긴 하지만 좋은 말벗이 되어주었어, 하고 할머니가 말했었다.

할머니는 신혼방 가장 좋은 자리에 거울을 걸었다. 술을 마시고 들어온 할아버지는 사정없이 할머니를 덮쳤고 그러고 나면 코를 골며 잠에 떨어졌다. 할머니는 그럴 때마다 엉금엉금 무릎걸음으로 걸어서 자신의 얼굴을 비춰보며 신세타령을 했다.‘넌 내 마음을 잘 알겠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내 신세를 알겠구나.’


방앗간 일이 바빠지자 할머니는 거울을 방앗간에 옮겨 걸었다. 손님들이 한 마디씩 했다.

“흔히 보는 물건이 아니네. 마치 내 마음을 꿰뚫어 보듯 어쩜 이렇게 투명할까?”

“뭐가 투명하다는 거야? 음산해지는 게 겁나는구먼. 뭔가 영물이 숨어 있는 것 같아.”

“오래된 거울이어서 그런지 이상하게 서늘한 기분이 드네.”

사람들이 그러든 말든 할머니는 방앗간에 거울을 두고 고향의 부모와 형제 생각에 자주 눈물을 훔쳤고 옷소매로 흐릿해진 거울을 닦았다. 방앗간 안에서는 별 것도 아닌 이유로 쥐 잡듯 몰아붙이는 할아버지를 보아야 했다.


미자이모가 말했다.

“사장님은 손님이 가져온 좋은 쌀을 질 낮은 쌀로 몰래 바꾸거나 고춧가루의 양을 속이곤 해서 손님들과 대판 싸움을 벌이곤 했었어. 언니는 어떤 속임수도 쓰지 않았어. 외상도 내줬고 형편이 좋지 않은 사람에겐 공짜로 해주기도 했어. 가래떡을 뽑느라 쉴 새 없이 장작불을 때다가도 나를 앞에 앉혀놓고는 책을 읽어주곤 했지. 사장님은 못마땅해 했어. 그렇게 책만 읽으면 돈이 나오나, 밥이 나오나? 책을 읽는 것은 돈을 버는데 아무 소용이 없고 오히려 남자를 무시하는 도구가 될 뿐이다, 라고 말했지. 날 부려먹지도 못하니까 짜증을 내었던 거야. …그러다가 … 나를 덮쳤어. 큰 도련님이 이렇게 된 것은 모두 나 때문이야. … 난 평생 그 빚을 갚아야 해.”

어진 인품이나 정직성 등 여간해서 할머니를 이길 수 없었던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이길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 돈을 버는 일뿐이었다. 돈에 관한 한 천부적인 감각을 가지고 있는 할아버지는 사업을 번창시키는 것에 대한 우월감이 있었다. 그러나 그 어느 누구도 그런 자신에 대한 존경심이나 경외심을 갖지 않는 것에 대해서 열등의식도 있었다. 모두들 자신의 돈만을 우러러볼 뿐 자신의 인품을 존경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에 대한 자괴감이 할아버지를 괴롭혔다. 할아버지는 돈이면 최고라고 여겼던 부모 밑에서 자라 물질만능주의로 자랐고 그에 반면 할머니는 사람은 자고로 덕과 지혜가 있어야 한다는 사고를 가진 부모 밑에서 자랐다. 필연적으로 할머니의 부모는 찢어지게 가난했고 그 가난으로 인해 영민한 딸을 무식하지만 돈 많은 할아버지의 가문으로 시집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날은 설날이었어. 하루 종일 떡을 뽑느라 온몸이 젖은 솜처럼 아팠는데 방앗간에서 뒤처리를 하고 있던 나를 사장님이 덮쳤어. 내 젖가슴을 움켜잡았는데 나는 비명을 질렀어. 그때 큰 도련님이 달려와 부지깽이로 사장님을 떼어냈어. 사장님이 어이쿠, 하며 바닥으로 넘어졌고 이내 벌떡 일어서서 큰 도련님의 뺨을 인정사정 보지 않고 갈겼어. ‘이 호래자식이 아비한테 무슨 짓이야.’ ‘너 같은 놈이 아비냐, 아이한테 무슨 짓이냐.’그러자 사장님이 떡가래를 끊어내는 가위를 들고 큰 도련님에게 휘둘렀어. 큰 도련님이 피하면서 그만 뒤로 넘어졌고 그만 고춧가루 빻는 기계에 팔 하나가 끼며 말려 올라갔어. 기계줄은 한 바퀴, 두 바퀴 돌아갔고 그 줄에 큰 도련님이 감겨 올라갔다가 바닥으로 요란한 소리를 내며 떨어졌어. 큰 도련님은 축 늘어졌어. 언니가 달려와 그 광경을 보았어. 사장님이 큰 도련님의 가슴에 얼굴을 갖다 대더니 뒤로 나자빠졌어. 큰 도련님의 잘린 오른손은 바닥에 툭 떨어져 있었어. 언니가 큰 도련님을 가슴팍에 안고 통곡을 하고 나는 끊어진 손을 품에 안고는 발을 동동 굴렀어. 병원에 갔지만 너무 늦어서 붙이는 게 어렵다고 했어. 오른손만 잃었다고 생각했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어.”

미자이모의 한숨이 이어졌다. “손이 아니라 머리를 다친 것이 더 문제였어. 처음엔 그것을 아무도 몰랐어. 큰 도련님이 이상한 소리를 하고 밖으로 다니며 기이한 행동을 했는데 … 길거리에서 사람을 모아놓고 대통령 이름을 부르며 욕설을 퍼부었고 옥상에 올라가서는 태양이 자신을 따라다닌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다녔어. 결국 나중에 간 병원에서 뇌를 다쳤다고, 정신질환자가 될 것이라는 판명을 받았어. 좁은 동네에서 소문은 들불처럼 일어났지. 식모로 부려 먹기 위해 고아원에서 데리고 온 계집애를 짐승처럼 덮치려고 한 것과 그것 때문에 아들이 사고가 난 것까지. 손님은 뚝 끊어졌어. 결국 할아버지는 방앗간을 처분하고 이 초원장을 인수받은 거야.”

할머니는 시간이 날 때마다 로미오를 데리고 큰아버지가 있는 정신병원에 갔다. 버스 차멀미에 얼굴이 노래진 할머니는 병원에 도착해서 매점에서 큰아버지가 좋아하는 과자를 사서 들어갔다. 이인실의 방에 누워있던 큰아버지는 이를 닦지도 씻지도 않은 채 과자를 허겁지겁 먹어치웠고 그것을 다 먹은 뒤엔 로미오의 손을 당겨 손가락을 펼치고 접어보며 환하게 웃었다. 그의 치아는 충치로 거뭇거뭇하였고 대부분이 빠져있었다. 오른 손목에서 뎅겅 손은 없었다. 할머니가 말했다. ‘네 큰아버지는 정의로운 일을 했단다. 그래서 저렇게 된 거지.’


할머니는 사고가 나고 미자이모를 포목상 집에 보냈다.

“미자를 지킬 방법이 없었어. 학교를 보내주고 나중엔 좋은 곳으로 시집을 보내준다, 하고 약속한 집에 보냈지. 여기 계속 두었다간 온전한 몸으로 시집을 가지도 못할 것 같아서.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포목상 주인의 전화가 걸려왔어. ‘아니, 밥도 먹지 않고 하루 종일 울기만 하는데 어떻게 데리고 있겠어요. 아이는 참한데 … 쯧쯧. 무슨 사연이 있는 건지.’”

결국 미자이모는 초원장으로 돌아왔다.

“언니, 여기서 제가 할 일이 더 많아요. 밥도 하고 청소도 하고 뭐든 할게요. 제발 보내지만 말아주세요. 그리고 큰 도련님도 제가 돌볼게요.”

“그래 준다면 나야 정말 고맙겠지만. … 그리고 여긴 보는 눈이 많아졌으니까 또다시 널 덮치지는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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