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미오와 로미오

4. 아버지

by 이도원

어느 날 초원장 앞으로 편지가 도착했다. 발신자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되었지만 내용은 아버지를 돌보고 있다는 안, 이라는 사람이 쓴 것이었다. 할머니는 아버지를 찾아가고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다. 엄만 수부실 금고에서 현금의 을 다 갖고 튀었다. 할머니는 넋이 빠진 듯 말문을 닫았고 미자이모는 울부짖었고 화를 내었다.

“너무하네. 여기 아들이 있는데 어쩌자고 이런 일을. 아무리 힘들어도 그렇지. 나도 사는데.”

할머니가 말했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

아버지의 집에 다녀온 뒤로 엄마는 자주 충동적으로 발작했다. 불쑥 밥을 먹다가도 이렇게 말해서 분위기를 망치곤 했다.

‘나는 이제 사는 것을 그만두려고 해요. 로미오를 부탁해요. 키울 자신도 나를 지킬 자신도 없어요. 나와 로미오의 밥에 독극물을 넣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혀요. 매일 밤이면 관 속에 누운 나를 상상해요. 그러니까 이제 그것을 그만두려고 해요. 어머닌 이렇게까지 해서 살고 싶어요? 나, 로미오, 어머니, 아주버님까지. 우리 네 명 모두 같이 죽으면 좋잖아요.’

그래서 내가 그랬지. ‘넌 네 아들은 생각도 안 하니? 난 내 큰아들이 죽고 난 다음날 죽으련다. 이틀도 아니다. 함께 장례식을 할 수 있도록. 미자가 그 일을 해줄 거야.’

할머니가 이를 악문 채 말했다.

“얼마나 답답했으면 이렇게 했을까, 잘 살아야 할 텐데.”


엄마에게 그날의 일은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로미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할머니의 걸음은 자꾸 처졌다. 처음엔 엄마의 걸음을 따라가기 힘들었는데 나중엔 로미오 보다 엄마와 할머니의 발걸음이 더뎠다. 할머니의 한복치마는 자꾸 밑으로 내려와 그때마다 엄마가 할머니의 치마저고리를 여며주었다. 버스에서 내렸을 때 할머니의 얼굴은 완전히 노랬다. 손수건을 입에 갖다 댄 할머니는 구멍가게 옆 채전밭에 주저앉아서 구역질을 했다. 엄마는 할머니의 등을 문질렀다. 채전밭엔 노란 꽃이 가득했는데, 엄마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배추꽃이 피었네.’ 엄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미쳐버린 것인가. 엄마의 표정은 우는지 웃는지 알 길이 없었다. 큰아버지처럼 미쳐버린 것인가. 이것은 전염일까, 로미오는 뒷걸음쳤다.

엄마가 말했다.

“어머님, 우리 그냥 그만 돌아서요. 도저히 못 가겠어요.”

“뭐든 누구하고 살든 아비가 아프다 하니까 가보자꾸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니까. 편지에 그렇게 씌어있네. 본인이 편지를 쓰지도 못하는 지경이면 아무래도 심각한 게 아니겠니?”

“그이가 아파도 난 간병 같은 건 안 할 거예요 내가 설 자리는 없을 거예요. 이미 그이 옆엔 다른 사람이 있을 거니까요.”

할머니의 신음과도 같은 한숨이 길게 이어졌다.

“저 아이를 위해서 가는 거야. 아비 노릇도 안 하는 것은 막아야지. 책임감도 없이 누리기만 하겠다는 것은 도둑놈 보다 못한 짓이다. 아비가 악독하고 방탕하면 자식이 어떻게 된다는 것을 난 누구보다 잘 안다. 가자. 가서 보고 결정해도 좋아. 너도 좋은 사람 나타나면 … ”

할머니는 말을 잇지 못했다. 로미오는 그것을 듣지 않는 척 딴청을 하고 있었지만 귀는 맹렬하게 열려있었다.

“이건 모두 내 탓이다. 난 네 시아버질 끝까지 설득하지 못했다. 큰아들이 저렇게 되고 나니 빨리 결혼시켜서 손자를 볼 옥심에. 나도 마찬가지야. 결혼을 서두르지 않았어야 했는데. 걔가 결혼을 하지 않을까 봐 걱정했다. 그 아이가 여자가 아니라 남자를 더 좋아하는 것을 알면서도. 나쁜 짓이었지. 내가 너에게 죄가 많다. ”

할머니의 말에 엄마가 입술을 깨물었다.

“저 아이는 내가 키울 테니. 자유롭게 훨훨 날아가거라. 네가 원한다면 말이다.”

로미오는 공연히 화가 나서 길가에 있는 구멍가게 앞에 놓인 깡통 더미를 발로 찼다. 개집에서 개가 뛰쳐나와 짖어대었다. 다시 한번 더 휴지통을 걷어찼고 그때 가게 안에서 주인 여자가 나왔다.

“누구야? 아니 이게 뭐야. 너 왜 찬 거니?”

할머니가 말했다.

“아이고 미안해요. 철없는 아이가 한 거니까 좀 봐주시오.”

“아니 어른이 이렇게 버젓이 있는데도 아이가 이런 짓을 한단 말이에요? 무슨 가정교육을 이 따위로 시킨 거야?”

엄마가 말했다.

“여기 다 원상태로 치워줄게요. 그러니까 그런 말은 하지 마세요. 가정교육이라니요?”

“아니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아, 댁이 엄마인가 본데 그럼 안 돼요. 귀한 아들일수록 엄하게 길러야지.”

“엄하든 엄하지 않든 아줌마가 끼어들게 아니잖아요?”

엄마가 로미오에게 말했다.

“뭐 하니? 치우지 않고. 모두 말끔히 치워.”

로미오는 깡통을 모으고 쓰레기통을 바로 세웠다. 개는 계속 짖었고 할머니는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아니 어머님, 왜요?”

“빈손으로 갈 순 없지 않니? 여기 아줌마에게 뭐라도 사줘야지. 괜히 서로 소리 높일 필요 없다. 여기 수박 좋네. 한 통 주시오. 휴지도 한 다발 주시고.”

가게 여자는 더 이상 짜증을 내지 않았고 ‘근데 어디 가세요? 외지 분이신데.’ 하였다.

할머니는 주소가 나와 있는 편지봉투를 내밀었다. 가게 여자가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 거기라면 오동나무집이네요. 저기 이쪽으로 쭉 올라가서 첫 갈림길에서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서면 바로 오동나무가 보일 거예요. 거기 독채에 남자 두 사람이 사는데. 거기 집은 … 아들 때문에 한 집안이 망조가 든 집인데. 결국 그 집 외아들이 물려받아서 지금 거기에 살아요. 다른 한 남자가 좀 아픈지 응급차가 가끔 왔다가 갔는데. 제가 통장이라서 이 동네 모르는 게 없지요. 여자도 없이 두 장성한 남자가 살림을 하고 환자까지 있으니 얼마나 딱한지.”

할머니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엄마의 표정도 마찬가지였다. 주인여자도 그것을 알아챘는지 자신이 너무 많은 말을 했던 것을 뉘우치기라도 하듯 로미오의 손에 과자 한 봉지를 들려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엄만 수박을 손에 들었고 할머닌 휴지다발을 들었다. 두 사람의 발걸음은 발에 뭐가 걸린 듯 자꾸 비척거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가게여자가 말했던 갈림길이 나타났고 오른쪽에 골목이 있었다. 지붕 위로 오동나무가 보이는 집이 나타났다. 주인여자가 흘렸던 말이 떠올랐다. ‘근데 아픈 사람은 그 집 아들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던데. 예쁘장하게 생긴 남자던데.’ 나는 그 예쁘장한 사람이 아버지라는 것을 알았다. 아버진 여자 보다 더 곱고 여렸다. 가끔 집에 들어왔을 때 아버지의 몸에선 달콤한 냄새가 났다. 고등학교 졸업식 날 아버지는 나에게 꽃다발과 책을 건넸다. ‘와 네 아버지 맞아? 근데 네 엄마 보다 더 여자 같다. 야. 너도 그렇고. 너도 좀 여자 같잖아? 낄낄.’ 아버지를 본 친구가 말했다. ‘씨발 말조심해.’ 내가 욕설을 뱉자 친구가 달아나며 말했다. ‘자식, 발끈해 가지고. 모두들 네가 계집애 같다고 수군거렸어. 여관집에 사니까 그런가 하고 놀렸지. 잘 가라.’

그 말을 행여 아버지가 들었을까, 로미오는 아버지 쪽을 보았다. 아버지는 할머니와 사진을 찍고 있었다. 먼발치에서 본 아버지는 친구의 말대로 고운 용모였다. 졸업식장에서 하얗고 가냘프고 고운 남자는 아버지가 단연이었고 영화배우처럼 눈에 띄었다. 하지만 그것이 아버지의 잦은 외박과 가출을 덮어줄 수는 없었다.


오동나무가 마치 만화영화에 나온 괴생명체처럼 보였다. 어느새 우리 세 사람은 녹색 대문 앞에 서 있었고 로미오는 문패에 아버지의 이름과 낯선 이름이 나란히 함께 있는 것을 보았다. 엄마의 말대로 아버지의 옆엔 다른 남자가 있었다.

아버지는 휠체어를 타고 있었다. 마치 얇은 습자지처럼 금방이라도 찢어질 듯 위태롭게 보였다. 로미오를 보자 희미하게 웃었는데 로미오는 아버지의 얼굴이 찢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할머니가 통곡했다. 엄마는 굳은 얼굴로 입술을 깨물었다. 남자가 얼음이 든 음료수를 거실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남자가 선풍기를 할머니를 향해 놓았다. 할머니의 하얗게 센 머리카락이 땀에 뭉쳐져 있는 것을 엄마가 손수건으로 닦았다. 아버지가 로미오에게 힘없는 손짓으로 테이블을 가리켰다. 음료수를 먹으라는 뜻이었지만 로미오는 입에 가져가지 못했다.

“가자. 초원장으로. 내가 간호하마.”

할머니가 말했다. 아버지 옆의 남자가 말했다.

“가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네요.”

할머니가 다시 말했다.

“왜 병원에 가지도 않고 이렇게 고생하는 거니?

아버지가 말했다.

“여기 있을게요. 여기가 편해요.”

엄마가 남자를 향해 손짓을 하였다. 엄마와 남자는 다른 방 쪽으로 사라졌다. 할머니는 ‘도대체 어디가 아파서 그런 거야? 이게 사람의 몰골이 아니구나. 가자. 지금 병원으로 가자. 널 이렇게 두고 갈 수가 없구나.’하고 소리쳤다. 그때였다. 엄마가 방에서 뛰쳐나왔다. 마치 쓰러질 듯 거실 바닥에 주저앉았고 할머니가 소리쳤다.

“아니 아가야 왜 그러니? 도대체 무슨 일인지 알아야 할 게 아니니?”

아버지가 휠체어에서 완전히 뒤로 넘어졌고 남자가 아버지 옆으로 달려갔다. 로미오는 테이블 위의 얼음이 천천히 녹고 있는 것을 바라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로미오는 아버지가 에이즈에 걸린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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