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가난한 연인
여전히 초원장 안에서는 온갖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외롭거나 불행하거나 가난한 사람들이 하루살이처럼 초원장의 누추한 방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하루살이처럼 이 초원장 안으로 날아 들어왔다. 그들은 도시의 야만적인 속도를 이겨내지 못했으며 도시의 거대한 욕망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이들이 맹목적으로 매달리고 있는 것은 우습게도 사랑이며 성욕이었다. 이미 오래전에 박제화된 채 박물관에서야 겨우 볼 수 있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이 여관에서 복원될 리는 없다. 성욕에 전폭적으로 몸을 내맡기는 전쟁터와 같은 꼴이다. 로미오가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초원장에서 소설을 쓰는 것, 그것뿐이었다.
남자는 전당포에 들어와 값비싼 장신구를 맡기고 돈을 빌리듯 수부에 서서 돈을 지불하고 여자는 먼발치에 서서 엉거주춤 서있다. 붉은 융단을 걸어 올라가면서 남자의 어깨는 잔뜩 굳어있고 여자의 구두굽 소리는 누구에게 쫓기고 있는 것처럼 성급하게 들렸다.
그들은 결혼제도 바깥의 유희를 즐겼다. 지금의 사회는 바로 과잉된 에너지의 분출구, 해방구가 필요하며 무엇보다 윤택한 삶으로 인해 잉여된 에너지가 너무 많이 축척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로미오는 알았다. 소비하기 위해 노동하듯 이런 성애 또한 소비가 필요한 것이다.
미자이모가 말했다.
“나는 머리끄덩이를 잡으면서 자신의 권리를 과시하는 본처보다는 잡히면서 사는 세컨드가 더 낫다고 생각해. 적어도 의심하고 감시하느라 인생을 허비하지는 않을 거 아냐? ”
“이모는 무슨 말을 그렇게 하세요? 이 여관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이 봤어요. 한 남자 때문에 본처와 첩이 피 튀기는 대결을 하잖아요?”
“세컨드와 본처는 자리이동에 불과해. 우리 여관만 해도 그렇지 않니? 본처가 바로 이곳에선 세컨드로 들어오잖아. 이거야 남자들도 마찬가지고. 어느 누구의 남편도 여기선 정부로 들어오니까 말이지”
미자이모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모든 여자들에겐 정부의 피가 흘렀다. 그리고 이 순정한 욕망은 대개 비참한 종말로 끝이 났다.
로미오는 지혜로움과 너그러움을 가진 본처를 본 적이 없었다. 본처들은 탐욕적이고 비겁하고 멍청하였다. 재물과 권력이 있는 쪽으로 언제든 기울 태세로 사랑을 호도하므로 영악했고 사랑이 영원할 것이라고 믿었으니 멍청하며 돈과 남편을 등가로 놓으면서도 입으로는 남편의 배신을 토로하니 절대적으로 비겁했다.
수치심과 흥분이 뒤엉킨 채 여관으로 들어오는 남녀를 보며 성장했던 로미오가 초원장에서 배운 것은 바로 이것일지도 모른다. 불온과 거짓말의 뒤에 웅크리고 있는 삶의 진실이나 본질 같은 것 말이다.
대부분의 부부는 이렇게 이중적인 일상을 살았고 이런 일상으로 인해 가정은 더욱 공고해졌다. 거짓말이 없으면 성사되지 않는 것이 부부이며 이들 가증스러운 부부관계의 온상이 되는 곳이 바로 초원장과 같은 여관이었다. 여관이 이렇게 창궐하는 것은 바로 이 허위의 부부관계 때문일 것이다. 사랑 때문인지 필요 때문인지 혼동하며 살아가는 부부는 윤택한 생활로 인해 더욱더 진실을 알아내기가 어렵다.
남자들은 자신을 기다리고 돌봐주는 아내보다 돈을 벌어주는 여자를 원하고 여자 또한 이념이나 가치관이 있어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남편보다 아부를 하든 사기를 치든 동료를 배신하든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하길 바란다. 이제 더 이상 사람들은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믿지 않는다. 그들은 돈만 있으면 그 어떤 것도 얻을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그리하여 이곳 여관에서는 돈과 섹스만이 가치관의 전부가 되는 것이다.
이제 초원장의 기운은 다했다. 초원장은 백설처럼 하얀 외장을 가지고 있었지만 지금은 하얀색인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거무튀튀하게 변했다. 22개의 방 중 15개가 장기투숙자의 방이다. 7개 방의 대실회전율은 하루 고작 1회이거나 이틀에 1회 꼴이다. 그나마 유원지를 떠도는 창녀가 늙은 사내를 데리고 들어오지 않는다면 그 1회의 대실도 없다. 주위 무인텔의 월풀 목욕이나 안마기, 최신 인터넷을 마다하고 초원장에 들어올 이유는 없다. 대실료 1만 원 숙박 2만 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에다 비교적 전망이 좋다는 그 이유로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한때 수부실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던 그 많던 손님들은 모두 인근의 최신식 모텔로 흘러 들어갔다. 이제 초원장에 들어오는 사람은 가난한 자 들뿐이다. 섹스가 아니라 생활에 지친 사람들이 들어오는 경우가 더 많아지고 있다.
이렇게 된 데에는 할머니의 자비심도 한몫을 차지했다. 휴지 한 묶음, 과자 한 봉지라도 팔 것이 있다면 초원장의 문을 밀고 들어오는 사람들은 몇 푼의 돈이라도 받아 나갈 수가 있었다. 할머니는 남루한 옷차림을 한 그들의 손에 무엇인가를 넣어주지 않고서는 안 되었고 그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물 한 잔이라도 대접해서 보내야 하였다.
“제가 사람대접받은 게 사모님이 처음이에요. 모두들 얼마나 나를 업신여기는지. 돈이 없으면 벌레보다 못한 존재로 취급받거든요.”
바람댁이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하지만 이런 행상인들로 인해 현관 입구의 대리석 바닥은 흙투성이가 되었고 그나마 전망과 저렴한 대실료 때문에 들어온 연인들은 그런 발자국을 보자마자 얼굴을 찌푸리며 서둘러 나갔다.
가난한 연인들은 이런 저렴한 여관이라는 곳에 들어와 사랑을 나눠야만 하는 신세에 대해 불만을 털어놓았다. 여자는 하루빨리 돈을 모아 집을 사고 그 집의 푹신한 침대에서 사랑을 나누고 싶다, 온갖 사람들이 다 뒤엉켜 누웠을 이런 더럽고 누추한 곳에서 사랑을 나누는 것이 얼마나 자신을 비참하게 만드는지 아느냐고 남자에게 따졌다.
“이제 더 이상 다른 남자의 정액냄새는 맡고 싶지 않아.”
여자는 소리 질렀다. 남자는‘미안해. 미안해.’하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었다. 그러나 로미오는 알고 있었다. 이들이 그렇게 갈망하던 안정된 집에서 살게 되면 곧 얼마 지나지 않아 각자 다른 상대와 다시 이곳으로 들어오게 될 것이라고. 그들은 사랑을 찾아 이곳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지키고자 하는 것은 가족과 일부일처제이고 그것은 불륜을 통해서만 견고할 뿐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 신념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가족에 대한 푸념을 늘어놓곤 하였다. 남자는 늙은 부모와 함께 사는 한 부부간의 섹스가 만족스럽지 못하며 게다가 돈만 밝히는 아내하고 사는 것에 질려하고 여자는 아이들을 성공적으로 키우는 게 너무 어려워 죽고만 싶다고 불평했다. 그들은 어떻게든 부부의 관계를 복원시킬 요량으로 미지근한 살을 비비며‘영원히 당신만을 사랑해.’ 하고 나가지만 그때일 뿐,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상대와 뒹굴고 갔다.
"남자들은 오로지 돈 밖에 모른다. 이 여관을 드나드는 모든 남자가 그랬고 네 할아버지가 그랬다.”
할머니는 나쁜 남자의 대표적인 특징이 바로 여자를 돈으로 보는 것이라고 했다. 그들은 여자의 낭만적인 순정을 이용하여 돈을 구걸한다. 여자는 이제 막 불이 붙기 시작한 사랑이 모욕당하는 것이 두려워 남자에게 돈을 건넨다. 그러나 여자는 조금씩 달라지는 남자의 모습을 보며 그제야 ‘속았구나, 이용당했구나.’하고 뉘우치지만 건넨 그 돈이 족쇄가 되어 더더욱 남자에게서 벗어나지 못한다. 잃어버린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남자를 단념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초원장에 들어온 대개의 연인들이 돈으로 부패하고 변질했다. 단언하건대 여자에게 돈 이야기를 꺼내는 남자를 조심할지어다. 물론 남자들의 도움을 넙죽넙죽 받아먹는 여자들 또한 그것이 독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말지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공짜가 가장 비싼 법이다. 로미오는 그것을 이곳 초원장에서 깨달았다.
조선족 여자는 걸레로 창문틀과 벽, 방바닥을 닦고 있다. 척척 일을 찾아서 했던 바람댁과는 달리 일일이 말해줘야 한다. 그럴 때마다 바람댁이 간절해진다. 할머니는 바람댁을 데리고 병원에 갔지만 이미 치매가 진행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할머니가 말했다.
“뇌를 찍은 사진을 봤는데 완전 구멍이 뚫렸어. 허옇게 숭숭. 오래전부터 좀 이상했지. 여관 마당에서 제 가슴을 손으로 마구 두드리며 ‘형님, 왜 이렇게 가슴이 답답하지요? 미칠 것 같아요.’ 하지 않겠어? 그때 서둘러 데려갔으면 좋았을 텐데. 이런 일은 상상하지 못했어. 평생 우리와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쩌지?”
“우선 치료를 해봐야 하니까 여기선 어렵겠지. 사람을 구하는 게 급하네. 미자가 청소를 하겠다고 하지만 말려야 해. 주방일도 벅차니까. 알겠니? 못하게 해야 해.”
로미오는 더 이상 바람댁을 떠올려선 안 된다, 고 생각했다. 조선족 여자가 아니면 이런 낡은 여관 청소일을 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호기롭게 여관방에 들어온 지 한 시간도 되지 않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나간 여자도 많았다. 방 한가득 땅콩과 깨어진 술병, 담배꽁초와 침대 위에 지린 오줌자국을 보던 여자가 비명을 지르며 객실에서 뛰쳐나가기도 했다.
조선족 여자는 급하긴 급했던 모양이었다. 바람댁이 요양원으로 가게 되고 급히 구인광고에 내자마자 달려왔고 인근 모텔 단지의 월급과 턱없이 적은 돈에도 지금 당장이라도 일을 하겠다, 했고 1층 수부실 끝 비품실, 창문 없는 방에 자도 되겠느냐는 말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조선족 여자는 옷도 몇 벌 없는지 매번 똑같은 옷을 입고 수수한 얼굴로 들어와 묵묵히 일했다. 바람댁의 욕설과 짙은 화장에 질린 로미오는 그것만으로도 조선족 여자가 미덥게 느껴졌다. 다만 전화통화가 길다는 것이 문제였다.
여자는 한 번 통화하면 근 삼십 분간 전화를 이어갔는데 여자의 어눌한 한국말을 들으면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너 때문에 왔는데 네가 행복하지 않는다면 어쩌란 말이냐? 나이 든 남편이니까 더 잘 돌봐야지. 잠자리만 생각하지 말고 좀 어질게 살아. 여기 와서 일하면서 알게 된 건데 여자들이 너무 헤퍼. 몸을 이렇게 함부로 굴리는 게 얼마나 더럽게 생각되는지 몰라서 물어? 내 딸이 외간 남자랑 이런 여관 같은 곳에서 뒹구는 것을 상상만 해도 힘들어. 나는 걱정하지 마. 내 밥벌이는 하니까. 돈이 좀 모아지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거니까. ”
로미오는 난감했다. 장기투숙방이 되어가고 있는 판국에 여자가 고향에 갈 수 있는 월급을 줄 여력은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