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미오와 로미오

7. 편지

by 이도원

어느 날 한 통의 편지가 초원장으로 왔다. 이번엔 안이 아니라 아버지의 편지였다. ‘네 엄마가 이혼서류를 가지고 여길 왔었다. 네가 소설을 쓴다고, 그리고 너도 날 닮았다고. 도와주라고 했어. 아비노릇을 하라고. 소설을 쓰는데 도움이 되라고.’

하지만 로미오는 가지 않았다. 견딜 수 없을 때까지 견뎌보자, 소설로 옮겨보자, 하는 오기로 버텼다. 결국 견딜 수 없을 지경에 가서 로미오는 아버지를 찾아갔다. 더 이상 살 가치가 없다, 는 자살충동이 일어날 때마다 전화를 걸었고 그때마다 아버진 두 말도 하지 않고 오냐, 했다. 아버지의 집은 예전보다 더 낡아있었지만 정갈했다. 아버지의 연인인 안은 밥을 짓고 빨래를 하고 형광등을 갈고 마당을 가꾸고 아버지를 돌보았다. 아버지의 침대는 햇볕이 잘 드는 방에 있었다. 아버지는 거의 하루를 거기서 보낸다고 했다. 로미오가 가면 안은 자리를 비켜주었다.

“네가 잘못한 건 없다. 그러니까 … 그건 모두 내 잘못이다. 네 엄마와 내가 이렇게 된 것은. ”

아버지는 말을 채 잇지 못했다.

“엄마가 눈치챘던 거예요. 제가 남자를 짝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일기장에 그걸 썼었거든요. 죽어버리고 싶다, 들키면 죽어버려야 한다. 뭐 이런 내용이었거든요.”

아버지는 고통스러움에 얼굴이 일그러졌다.

“정말 그런 생각을 했던 거니? 죽어버리겠다고.”

로미오는 입술을 깨물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우리가 잘못이라고 생각하니? 이것은 잘못의 문제가 아니야. 그 누구도 우릴 욕할 수 없어. 편견과 혐오 때문이지. 그것 때문에 그런 어리석은 생각을 하다니. 아마 네 엄마는 네 성정체성 때문이 아니라 너의 자학 때문일지도 모른다. 자학하는 사람을 도울 방법은 없다.”

“어떻게 아버진 이것을 견뎌왔어요? 어떻게 이런 무서운 세상을 …”

“나를 믿었다. 이렇게 혼자 힘으론 일상생활을 하지 못하는 처지가 되었어도 말이다. 무엇보다 너에겐 소설의 세계가 있지 않니? 난 네가 멋진 소설을 쓸 것이라고 생각해. 나에겐 스토리가 있고 너에겐 스토리를 훔치고 엮는 탁월한 솜씨가 있어. 내 이야기를 써도 돼. 내 모든 기록물을 주마. 편지도 일기장도.”


아버진 편지꾸러미와 일기장을 로미오에게 주었다. 로미오는 초원장으로 돌아와 그것을 읽었다. 아버지가 안에게 결코 부치지 못했던 편지의 절반은 절망이고 절반은 희망이었다. 사랑의 억압이 절망이었고 그럼에도 하염없이 기다리고 신뢰하는 것이 희망이었다. 로미오는 부치지 못한 편지를 읽으며 아버지가 단념과 포기로 사랑을 더욱 키워나갔음을 부정할 수 없었다. 아버지의 편지는 불가능한 사랑의 위대함을 맞붙고 싸운 격투기 같았다.

수업을 듣던 중 네 책이 교실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것을 막 주워주려는 순간 너의 손과 부딪쳤다. 손끝에 전율이 일어났다. 너도 마찬가지였던지 허겁지겁 손을 치웠다. 나는 소변이 마려운 강아지처럼 낑낑대는 꼴이 되었다. 나는 네 마음을 알 길이 없어 그의 주변을 맴돌았다. 너는 냉정했다. 그리고 졸업식 날 너는 가족사진을 찍고 있던 중 나에게 웃는 듯 우는 듯 알 수 없는 표정을 하고 내 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신 볼 수 없었다.

어느 날 졸업앨범 맨 뒷장에 있는 너의 주소를 보고 집을 찾아갔을 때는 너는 이미 이사 간 뒤였다. ‘야반도주처럼 갑자기 이사 갔어. 아들? 아, 그 학생 말이구나. 학교를 그만두었는지 집에만 있는 게 어디 아픈 가 했지. 이따금 집에서 큰 소리도 나고. 아, 몇 번 응급차가 오기도 했어. 근데 학생은 이 집 가족과 무슨 관계가 있는 거야? 이렇게 꼬치꼬치 묻는 게 말이야?’ 나는 이웃 여자의 날카로운 시선을 피해 허겁지겁 골목을 나왔다.

너의 소식을 아는 친구는 없었다. 단지 몇 차례 갔던 동창회에서 몇몇이 이상한 말을 하였다. ‘자퇴한 모양이야. 정신병원에 들락날락한다는 말도 있고. 근데 그 자식은 좀 이상했어. 어떻게 말해야 하나. 여자처럼 느껴지는 거야. 나만 그런 게 아니라니까. 다들 그랬어.’

아버지의 편지는 고통스러웠다. 평생 사랑만 하다가 죽어버리리라, 하는 무책임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로미오였다. 사랑중독증에 걸린 아버지는 자유와 방탕을 즐긴 만큼 타인의 눈치를 살피며 적어도 행복해선 안된다는 생각을 했던 로미오로서는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조차 들었다. 하지만 이런 낭만적인 감정도 잠깐, 로미오는 아버지의 일기장을 소설화하는 것에 전력을 다했다. 로미오는 타인의 불행이나 슬픔, 분노, 수치심, 죄의식 이런 것에 기댈 수밖에 없는 것이 소설가의 운명이라는 것을 통감했다.


로미오는 편지를 읽던 중 더 이상 읽어 내려갈 수가 없어 깊은숨을 쉬며 자주 멈췄다. 아버지의 부치지 못한 편지는 불가능한 사랑의 위대함 같았다. 나 또한 그랬다. 사춘기였던 당시 낯설고 폭력적으로 다가오는 성징에 혼란스러움을 느끼고 있었던 로미오는 뭔가 모호하면서도 불온한 어떤 지점에 가닿았고 그럴 때마다 그 감정을 소설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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