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소설
나는 네가 그리웠다. 너를 찾는다면 내 인생의 전부를 너에게 바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또 몇 년이 지나자 내 목숨을 다 바쳐도 좋으니까 너를 만나게, 우연이든 필연이든,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든 필연을 가장한 우연이든 만나게 해 달라는 협박을 신에게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또 몇 년이 지나자 너를 만나게 되면 너를 죽여 버리리라, 만나는 즉시 죽여 버리리라 작정했다. 너를 죽이기 위해서라도 너를 만나야 했다.
그러다가 운명처럼 너를 만났어. 대학교 입학하고 얼마 되지 않았다. 네가 내 앞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고등학교 때 보다 그다지 자라지 않은 듯 그대로인 네가 벚나무 사이로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 영정사진처럼 얼어붙은 채 서 있었다. 간절함이라는 감정의 농밀함이 실체로 발현된다는 물리적인 법칙을 목격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너는 정지화면이 된 나를 멀뚱하게 바라보더니 슬로비디오처럼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드디어 팔을 뻗치며 닿을 수 있는 가까운 거리가 되었다. 나는 네 옆에 바짝 붙어있는 남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 남자는 나와 너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한참 동안 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나는 네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너의 보일 듯 말 듯한 미소가 지나갔다. 나는 네 미소에 정신이 아찔했다. 너는 옆의 남자에게 나를 소개하였다. ‘고등학교 때 같은 반 친구야. 이게 얼마만이지? 어떻게 나를 알아보았니? 근데 너도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 같아. 이렇게 대학교에 와서 보네.’ 나는 네 의례적인 인사에도 나를 알아봐 주는 것으로 감격하였다. 나와 마찬가지로 너도 기숙사에 있다고 말했다. ‘이제 자주 보겠네. 그럼 다음에 또 보자.’ 하며 네가 말했고 네 옆에 있던 남자가 나의 울먹이는 표정을 보았던지 어디 가서 차를 마시고 오든지, 하고 말하자 그가 ‘그럴 필요 없어. 할 말이 있을 게 뭐가 있어? 그렇지?’ 하고 말했다. 너와 남자는 멀어졌다. 나는 너의 차가움이 다르게 느껴졌다. 모든 감정을 배제해야만 하는, 냉정하게 감정을 베어버린 듯 느껴졌다. 그것이 무엇일까, 나는 수시로 너와 마주쳤던 길을 걸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공과대학 강의동과 기숙사를 어슬렁거렸다. 어딘가 정신이 나간 듯 불안하고 위태로운 나를 느꼈을까 내 옆엔 아무도 없었다. 어차피 그 당시엔 교우관계를 하는 것조차 죄의식을 느껴야 하는 엄혹한 이데올로기의 시기였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네가 내 강의실 앞에 서 있었다. 너는 암울한 표정이었고 나는 너에게 무서운 일이 일어났음을 눈치챘다. 반가움이 아니라 무서움이었다. 네가 앞장섰고 나는 그 뒤를 따라갔다. 강의실 복도가 실험실처럼 병실의 복도처럼 느껴졌다. 너는 도서관 벤치에 앉았다.
“놀랐지? 이렇게 찾아와서.”
얼마나 이런 날을 손꼽아 기다렸는지 몰라, 나는 말을 삼키고 있었다. 네 집 앞을 몇 번이나 가봤어. 네가 이사 갔던 것을 알고 절망했어. 너를 만날 수 있는 여러 통로를 수소문했지만 아무도 너를 알지 못한다는 것에 두려움을 느꼈어. 어쩌면 너를 평생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죽을 것 같았어. 나는 이 말을 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난 촉이 빨라. 감정에 대해선. 특히 달짝지근하고 축축한 감정에 대해선 말이야. 지금 그걸 느껴. 나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는 널 말이야.”
그렇다면 내 감정을 알면서도 모른 채 하고 있었단 말인가, 나는 네 말이 쉽게 와닿지 않았다. 너는 철저히 자신의 감정에 대해서만 말했다.
“네가 이미 눈치를 챘겠지만 말이야. 그 자식과 헤어졌어. 버림받았어. 첫사랑인데 말이지. 너에겐 내가 첫사랑이지? 불행하게도 말이야. ”
네가 결별한 대상은 그때 가로수길에서 만났던 남자였다. 네가 말했다.
“널 자주 떠올렸어. 하지만 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 무서워서 미칠 지경이었어.”
너와 나 사이엔 길고 긴 침묵이 흘렀다.
그때 본관 쪽에서 시위가 시작되는 소리가 들렸다. 독재정권 심판과 민주항쟁의 함성이 너와 내가 있는 벤치까지 울려 퍼졌다.
“나도 저들처럼 혁명가가 되어야 할 것 같아. 저들이 위험한 것을 무릅쓰고 뛰어드는 것처럼 말이야.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지. 내 사랑도 그랬는데 말이지. 목숨을 걸고 우린 사랑을 해야 하거든. 하지만 나는 도망치고 있는 것일지도 몰라. 나의 불운한 태생에서 부터 탈출하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지. ”
네가 벤치에서 일어나 가로수 길을 지나 본관 광장 앞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저 무모하고 위험한 시위 대열에 합류하는 너에게 강렬한 질투가 일어났다.. 넌 도피하지만 난 그러지 않겠다. 나는 나를 드러내기로 더 이상 숨지 않겠다는 결심을 내렸다.
나는 너에 대한 단념 대신 다른 남자에게 돌진하였다. 나에게 호감을 표시하였던 다른 남자, 섹스를 아주 잘하게 보이는, 언제든 몸을 포갤 준비가 장전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대상을 찾아 몸을 겹쳤다. 최루탄의 매캐함 대신 비누향으로, 정의로운 세상을 만드는 의지보다 나른하게 연애하고 싶은 성애로, 나는 음습하고 축축하고 더러운 곳만 찾아다니며 섹스했다. 더러울수록 좋았다. 그래야 나 자신을 덜 자책하게 되니까. 깨끗한 시트에 올라가면 두려움이 몰려왔어. 그래서 그 위에 오줌을 눴어. 그럼 침대 위의 대상과 그 섹스 행위에 열중할 수 있었어.
나는 그렇게 황량하고 을씨년스러운 도시의 찻집과 술집과 여관을 오갔어. 나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남자에겐 이렇게 말했지. ‘우린 결혼할 수 없겠지?’ 그러면 ‘이래봬도 난 정조가 있는 년이야. 킬킬.’ 그렇게 말했고 나는 그럴 때면 그 상대에 더욱 매달렸다. 섹스와 돈, 그리고 냉소가 그렇게 굴절되어 가고 있었어.
너의 혁명은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너는 나에게 편지를 썼고 그것이 경찰의 손에 들어갔던지 어느 날 기숙사로 형사가 찾아왔다. 형사가 미묘한 웃음을 지으며 연락이 오거나 뭔가를 안다면 실토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내 얼굴이 얼마나 창백하게 변했는지 형사는 ‘그러니까 정상적인 사람과 연애하는 거야. 내 참 더러워서 입에 담기도 힘드네.’ 하고 가버렸다. 모욕감에 나는 겨우 기어가다시피 기숙사로 들어갔다.
얼마 후 네가 제적당한 후 바로 군대에 징집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부대에 찾아갔을 때 넌 서릿발 같은 냉기에 온몸을 떨었다. 그럼에도 너는 오히려 내가 안쓰러운지 다시는 찾아오지 않아도 된다, 고 했지.
“연애는 잘되고 있는 거야? 얼굴 보니까 연애에 열중하는 표정인데.”
네가 놀리듯 이죽이죽거렸다.
“연애 좋지. 뜨겁고 달콤하고 짜릿하고. 마약이 연애보다 좋을까. 여기서 내가 연애충동을 숨기느라 얼마나 힘든지 넌 상상도 하지 못할 거야. 상상해 봐. 여기 완전 어장인데 말이지. 낄낄. 참, 형사가 너에게 갔었지? 내가 너에게 편지를 한 통 쓴 게 있었거든. 수색하면서 그것을 찾은 거지 뭐. 그 형사 맛있게 생겼어. 구미가 당겼어. 그래서 내가 그놈에게 신호를 보냈지. 구애의 눈짓을 하였어. 근데 그놈이 한눈에 날 알아봤어. 전염병 바이러스처럼 보더라고. 낄낄.”
네가 그런 말을 할 때마다 낡은 식당 위에 매달려 있는 촉수 낮은 알전구가 공중에서 흔들렸다.
“난 제대하면 바로 아무 여자나 만나서 결혼할 거야. 여기 와서 느낀 건데 말이지. 안될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 우린 유령이지. 게이의 세계는 말이야. 반은 유령으로 절반은 연기자처럼 살아야 해. 너도 군대를 가면 달라질 거야. 같이 있는 인간들이 정말 끔찍하게 생각되거든. ”
“그런 말 같지 않은 게 어디 있어? 다른 여자를 이용한다는 게.”
“몇 번 휴가 나가서 시도해 봤어. 선임 따라. 나쁘지 않았어. 다만 설레지 않았고 집중이 되지 않았을 뿐.”
내가 말했다.
“숙제처럼 할 것 같으면 집어치워. 그건 네가 좋아하지 않는다는 뜻이야. 연애처럼 설레지 않으면 그건 가짜야.”
네가 말했다.
“정곡을 찌르는구나.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우린 이제 더 이상 나쁜 상황에 빠지지 말아야 해. 여자와 손도 포개고 겹치고 팔짱을 끼고 활보하는 거지. 더 이상 누가 볼까 봐 데면데면하게 연기할 필요도 없고. 비밀과 거짓말로 살아가자. 그게 숙명이야. 난 제대하면 정상적으로 살 거다. 정상인과 같이 평범하게. 너랑 엮이고 싶지 않다. 이제 서로 보지 말자. ”
너는 내 심장을 찔렀다. 나는 그 무엇도 할 수 없는 지경으로 몰렸다. 나는 너와 분리되어 있는 시간을 견딜 수 없었다. 내 몸은 절절 끓어올랐고 맹렬하게 섹스를 하고 나면 더 지독한 수치심에 몸을 씻었다. 그리고 다른 대상을 찾았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다. 너는 네 말대로 결혼했다, 고 들었다.
그러다가 네가 나타났지. 너는 어떻게 알았는지 내 결혼식에 왔다. 나 또한 군대를 제대하자마자 바로 결혼이라는 것으로 환승했다. 깊숙이 쓴 모자와 마스크 때문에 처음엔 너를 알아볼 수 없었다. 나는 하객 가운데 앉아있는 너를 발견할 수 있었다. 네가 미소 짓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 미소에 마음이 무너질 듯 아릿한 감정에 목이 메었다. 단체사진을 찍고 너를 찾았을 때 너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어.
그러다가 그 일이 있었어. 지하철 역 앞 어느 지하이었어. 말로만 듣던 곳이었지. 어둡고 더러운 골목으로 들어가자 지하 계단이 있었고 거길 내려가자 질척이고 끈적이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어. 전등은 하나도 켜지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 속이었어. 입구에서 돈을 받았어. 지폐를 몇 장 주자 비틀거리며 중심을 잡지 못하는 내 팔을 누군가가 잡았고 그가 의자인지 방바닥인지 모를 곳에 나를 억지로 주저앉혔어. 이윽고 벌거벗은 한 남자가 나를 더듬었고 이내 내 입술에 혀를 넣었어. 그리고 나의 온몸을 애무하였지. 나는 ‘난 역시 이런 것이 잘 어울려.’하면서 맹렬하게 섹스에 집중했지. 그것이 내 본래의 모습이었던 거지. 나는 환한 햇살 속에 자유롭게 활보하는 평범한 일상이 불가능한 숙명을 타고났다는 것을 확인했어. 몇 명의 남자가 나를 덮친 것인지 몰라.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을 때는 새벽이었어. 지하 창문으로 빛이 희미하게 들어왔어. 나는 비닐 장판 위에 전라로 누워 있었고 바로 옆에 있는 남자도, 내 발치에 쓰러져 누워 있는 남자도, 그리고 주렴이 내려와 있는 다른 방에서도 마찬가지였어. 난 비틀거리며 일어나서 다시 계단을 올라가 지하 문을 열고 나왔지. 골목은 텅 비어있고 토사물과 쓰레기로 난장판이었어.
나는 그 일이 , 그날 밤의 일이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일로 나에게 돌아오리라는 예감을 가졌고 그 예감은 적중했어.
그리고도 10년을 잘 버텼어. 나는 절반은 아내와 나머지 반은 다른 남자와 보내는 이중적인 일상을 보냈어. 그러다가 어느 날 퇴근하면서 몸이 이상한 것을 느꼈어. 고열이 나면서 오한이 들었어. 병원에 갔더니 혈액검사를 해보자고 의사가 말했어. 그리고 얼마 지났을까, 의사는 에이즈라는 것을 알리며 경멸과 혐오의 눈빛으로 내 몸을 훑는데 … 끔찍했어. 의사는 간호사에게 내가 앉았던 의자를 소독하라는 지시를 하였고 진료실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너에게 전화했어. 마치 죽음을 향해 떠나는 사람처럼 비장한 마음이 들었어. 다행히 네 아내가 아니라 네가 받았다. 안녕, 이라고 하고 싶었어. 하지만 나는 차마 그 말을 할 수 없었고 너도 마찬가지였어. 침묵이라는 것을 통해 너와 내가 얼마나 무수히 많은 말을 하고 있는지 나는 느꼈어. 너의 목소리를 단 한 번만 듣고 끊으려고 했지. 하지만 성공하지 못했어. 애당초 나는 죽을 마음도 널 잊을 마음도 없었던 거지.
“너는 어디까지 가봤니? 나는 바닥에 있어. 숨조차 쉴 수 없는. 이게 지난날의 방탕의 결과라면 받을 수밖에 없겠지. 건강했을 때는 그렇게나 죽고 싶어서 환장이었는데 이제 아프니까, 더러운 병에 걸렸다고 하니까, 사실 이건 더러운 병이 아니야. 당뇨병이나 마찬가지야. 무지와 편견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이 떠드는 거지. 그들은 무턱대고 오래 살고 싶어 하고, 무턱대고 겁을 내고, 무턱대고 두려워하고 무턱대고 시기하는 것들이니까. 하지만 매일 약을 먹어야 하는 병에 걸리고 보니까 사는 것에 오기가 나. 에이즈에 걸렸어.”.
“갈게. 어디야?”
너는 한달음에 달려왔다.
너는 내 방 창가에 즐비한 약병을 보았다. 모두 유통기한이 지난 것이었다. 나는 약을 거부하고 있었다. 면역이 떨어져서 단박에 죽길 바랐던 거야. 스스로 목숨을 버리지 못하니까, 그럴 용기가 없으니까 약을 먹지 않는 것으로 저항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