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미오와 로미오

9. 세 사람

by 이도원

로미오는 편지를 다 읽고 난 뒤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 수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아버지의 목소리는 많이 쉬어 있었다.

“몸의 면역성이 다 떨어져 겨우 말을 할 지경이네. 파킨슨이 더 심해지고 있어. ”

안이 전화를 바꿔주며 했던 말이 실감 났다.

“네 소설이 나와 같은 사람들을 살릴 수 있을 거야. 혐오감과 격리의 대상이 되는 나와 같은 존재들을 평등하게 만들 수 있을 거야.”

로미오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겨우 이렇게 말했다.

“어떻게 하면 아버질 이해할 수 있을까요. 완전히.”

“이미 넌 나를 이해하고 있다. 충분히.”

아버지의 가쁜 숨이 느껴졌다.

“난 네 작품의 최초의 주인공이자 독자이고 싶다. 그러니 기다리마. 살아서. 꼭 살아서. 질병이 나를 침몰시키는 일이 없도록, 내 정신을 갉아먹는 일이 없도록 하마. 네 소설이 완성되도록 말이야. ”

로미오는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절차를 통과했다. 그때의 주인공도 아버지였다. ‘첫사랑’ 아버지가 사랑을 고백했을 때의 공허한 눈빛과 쓸쓸한 웃음, 굳게 닫힌 입술, 차가운 손, 안의 무거운 뒷모습을 그렸다. 아버지의 열정과 안의 뜨거운 냉정이 교차하는 그 단편은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신춘문예 당선집을 받고 잠시 정지된 화면처럼 되었다가 접혀있던 침대의 테이블을 올리고는 읽기 시작했었다. 아버지 입에서 나온 입김은 공중으로 마구 흩어졌고 탁자 위의 커피는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었다.

“소설의 주인공이 바로 나라는 것을 알겠구나. 엇갈림, 이루어지지 않음, 결핍, 이런 것이 자신을 자유롭게 한다는 주제가 신선했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의 의미를 잘 그리고 있어. 아들아, 넌 나의 스토리를 잘 엮어야 해. 내가 죽는 것으로 만들면 더욱 드라마틱하게 되겠지. 날 죽여도 된다.”

로미오는 아버지의 편지를 바탕으로 한 편의 소설을 썼다. 세간의 날 선 비평이 있었다. 동성애에 대한 낭만적인 옹호가 사회혼란을 가중시키며 작가의 커밍아웃을 정당화하는 구실로도 작용한다는 평이었다. 로미오는 일체의 말도 하지 않았다. 이건 사생활의 영역이다. 양성애자의 사생활을 존중하듯 동성애자, 성소수자의 사생활이 검열과 격리와 혐오의 구실이 되어선 안 된다. 이런 편견이야 말로 변태적 행위다.

로미오는 계속 소설을 써 내려갔다. 성소수자를 위한 잡지에 소설을 연이어 발표했다. 로미오는 하루 종일 연인을 기다리며 질병에 쓰러져가는 한 남자의 고백을 주제로 썼다. 소설은 수용하기 어려운 주제의 아슬아슬한 곡예라는 평단의 비평을 들었다.

“뭐가 아슬아슬하다는 거지? 우리의 삶이 뭐가 그렇다는 건가?”

안이 말했다.

“안은 이 소설이 마음에 들지 않는가 봐. 소설가는 비겁하대. 겪지도 않았으면서 겪은 사람보다 더 아는 체하고 엄살을 피운다고. 삶이 늘 이중적이어서 그렇지. 하지만 소설의 결말에 대해서는 희망적이어서 좋다고 하더라. 그럼 성공이지 뭐. 참 신기한 게 내가 아무렇게나 쓴 것을 가지고 어떻게 이런 인물을 창조할 수 있느냐는 거지. ”

그때 안이 말했다.

“누가 그래? 내가 소설가를 비난한다고? 자긴 말을 자꾸 보태서 탈이야.”

“그래서 방에서 나온 거야? 그렇게 사색이 다되어서.”

“웃기시네. 소설 들으려고 그런다. 여기, 작가가 있을 때 들려달라고 부탁하려고.”

“그게 좋겠네. 작가가 들려주는 소설은 더 근사할 거야. 그렇지?”

안이 방석을 나에게 던져주었다.

“뒤로 편하게 기대서 읽어줘.”

아버지의 침대 위로 안이 올라갔다. 철제 침대에서 스프링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안은 아버지의 팔에 기댔다. 로미오는 침대 옆 소파에서 안이 던져준 방석을 등에 갖다 대고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아버지와 안도 로미오를 바라보며 웃음을 지었다. 아버지가 말했다.

“이러면 소설의 제목대로 되는 건가. 「세 사람의 침대」 그럼 우리가 세 사람의 침대 위에 있는 셈인가?”

안이 소리 내며 웃었다.

“소설은 참혹한데 현실은 그런대로 멋지지 않나?”

안의 말에 아버지도 껄껄 웃었다. 안이 다시 말했다.

“자, 작가님 우린 들을 준비가 다 되었어.”

로미오는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이런 날이 왔구나, 하는 뿌듯함이 몰려들었다. 아버지도 마찬가지일까, 로미오를 보는 눈빛이 젖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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