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엄마
미자이모는 아침부터 부산하게 움직였다. 로미오가 병원에서 큰아버지를, 요양원에 있는 바람댁을 데리고 오면 목욕을 시키고 제사상을 차리는 것이 모두 미자이모가 할 일이다. 아버지는 안과 함께 휠체어에 타고 오기로 했다. 로미오는 엄마에게 전화를 해야 하는 것을 자꾸만 미루고 있다. 엄마가 병원에 왔을 때의 일 때문이었다.
엄만 무덤처럼 깜깜한 병실에서 할머니가 누워있는 침대를 한눈에 발견하지 못했다. 침대에 걸려있는 이름표를 보고 나서야 겨우 침대로 다가갈 수 있었다. 할머니는 눈을 감은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엄마는 할머니의 코에 손바닥을 갖다 대었다. 마치 엄만 자신이 방문하고 있는 동안만큼은 제발 눈을 감고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자 그것을 눈치채기라도 하듯 할머니가 갑자기 눈을 떴다. 할머니가 로미오와 엄마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짧은 순간,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여기 좀 앉으세요. 욕창도 없고 지금은 식사도 잘하고 계세요. 물론 언제 어떻게 될지도 모르지만요. 어제도 여기 한 분이 잠자는 사이에 돌아가셨거든요.”
엉거주춤 서 있기만 하는 로미오와 엄마를 보며 간병인이 말을 걸었다. 여섯 개의 병상 중 하나가 비어있는 것을 보았다. 푸른색 담요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할머니가 엄마에게 손을 내밀었다. 엄마는 할머니의 앙상한 손목을 잡을까 말까 망설였다. 간병인은 그동안 환자의 며느리가 왜 오지 않았는지 궁금했다며, 손자가 얼마나 극진히 할머니를 돌보는지 감동했다면서 주절주절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리고는 정말 엄마가 비정한 여자인지, 아닌지 확인하고 싶은지 엄마의 얼굴에 바싹 자신의 얼굴을 갖다 대었다. 엄만 그런 간병인의 얼굴을 확 떠밀었다. 로미오가 간병인의 손에 몇 장의 지폐를 찔러주지 않았더라면 엄마와 간병인은 서로 몸싸움을 벌였을 것이다.
엄만 마지못해 할머니의 손을 잡았다.
“단박에 죽어야 돼. 이런 꼴을 당하지 않으려면. 네 할머니의 팔자도 참, 나 못지않다. 하지만 제일 피해자는 나야. 이 할망구가 아니라.”
나는 쉿, 하고 입술에 손을 갖다 대며 말했다.
“할머니 다 알아들으셔. 귀는 멀쩡하셔. 그러니까 말조심해. 제발.”
“네 할머니 통장에 돈이 좀 많이 있을 텐데. 네 할머닌 지독한 구두쇠였으니까. 안 쓰고 모두 남겨두었을 거야. 네 아버지와 너에게 주려고. 하지만 나를 빼놓으면 안 되지.”
엄마는 살아있는 할머니를 벌써부터 무덤 속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네 명의로 되었다고 네 것이 되는 것은 아니야.”
“할머니와 아버지는 엄마가 이렇게 따질 걸 이미 아시고 처리한 게 분명해요. 엄마가 다르다는 것, 그러니까 모든 것을 희생하는 보통의 엄마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 말이에요.”
“그래. 나는 자식을 이기는 이 세상 첫 어미가 될 거니까.”
로미오가 진저리를 치며 내뱉었다.
“엄만 갈수록 형편없는 사람이 되어가는군요.”
엄만 입을 다물었다.
로미오는 이미 엄마는 죽음에 더 가까워 있는 할머니와 아버지에 대해 어떠한 슬픔도 연민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것은 처음부터 그랬다. 엄마는 오로지 시댁의 재산이 탐나서, 그것도 형제, 그것도 형은 정신이상으로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므로 결국 재산이 모두 멀쩡한 동생인 아버지가 차지할 것이라는 야망 때문에 결혼한 것이다. 그건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야 자신의 성정체성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것이 잘못된 선택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사람에 대한 도리와 예의가 빈곤한 처지의 남녀가 성취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어머닌 할머니의 통장에 든 약간의 현금조차 탐냈다.
“이것조차 네가 가지겠다는 거야?”
“엄만 우리 가족공동체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떠나갔잖아요. 그러니까 이건 정당한 거예요.”
로미오는 그동안 엄마가 가져간 돈의 액수와 입금 전표, 차용증을 내밀며 공정한 처리임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