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세 사람의 침대
“부라보.”
안이 손뼉을 치며 함성을 질렀다.
“세 사람의 침대라면 우리 사이를 말하는 건가? 이성애자인 한 여자와 동성애자인 남자 두 사람 말이야.”
로미오는 안의 말뜻을 알았다. 엄마를 사이에 두고 아버지와 안이, 안의 아내와 아버지, 그리고 안이 나란히 함께 누워 있는 것.
안은 졸업앨범을 꺼내왔다. 아버지와 안의 졸업앨범이었고 단체사진 속의 아버지는 웃고 있었지만 그 옆에 안은 잔뜩 화가 난 얼굴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안을 놀리듯 말했다.
“다른 친구들에게 들통날까 봐 그날도 계속 인상을 쓰고 있었어.”
“그래야지, 그럼. 내가 하지 않았으면 너나 나나 무슨 일을 당했을지도 몰라. 아마 졸업하지도 못했을 거야.”
“위험했지. 하지만 그 위험조차 감수할 자신이 있었는데. 죽어도 좋겠다고 생각할 만큼. 그래서 도망갔었니?”
“맞아. 너 옆에 있다간 나도 죽을 것 같아서. 넌 용광로처럼 끓어올라 날 단번에 녹여버릴 것 같았거든.”
아버지와 안은 농담을 했다. 아버지가 말했다.
“네가 쓴 소설을 읽고 나니 내 삶이 한결 가벼워지더라. 한없이 무겁게 느껴졌던 삶이 일시에 보상받는 것 같은. 내 삶은 늘 비난받았거든. 비정상, 소수자, 변태 이런 단어가 튀어나오면 견딜 수 없었거든. 그러니까 우리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우리뿐이야. 우리와 처지가 다르면 절대로 이해할 수 없어.”
“나도 그랬어.”
안이 거들었다. 내가 말했다.
“전 아버지랑 처지가 같잖아요. 그러니까 … 쓸 자격이 있어요.”
“그렇지.”
“아버진 완벽한 삶을 사신 거예요. 아낌없이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으셨으니까요.”
“너도 이루어질 거야. 두려워만 하지 않으면.”
안이 눈을 흘기며 말했다.
“나는 내 아들이 나와 같은 처지가 되어선 안 된다고 지금까지 목숨을 다해 막았는데 지금 두 사람을 보니 질투가 나네. 천형처럼 고통스러웠는데 액운만은 아닌 거네. 지금 두 사람은 완전 공감의 합일체가 되었어.”
“사랑은 어디까지나 자연스러운 거지. 남자가 남자를, 여자가 여자를, 여자가 된 남자를, 남자가 된 여자를, 아니면 자신이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나 모든 억압에서 자유로워야 한다는 거.”
“완전 작가의 아버지답네. 이래서 내가 널 사랑하는 거지.”
아버지의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안이 그런 아버지의 입에 뜨거운 키스 세례를 퍼부었다. 그러다가 로미오의 입에도 키스를 했다.
“이건 작가에 대한 존경과 애정의 표시.”
로미오는 사람을 이해한다는 일이 이토록 뜨거운 사랑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실감했다. 이제 로미오는 자신을 시험하고 이해하는 것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자각이 들었다. 그것이 비록 시련과 고통을 가져온다고 해도 시도하고 결행하고 말아야 하겠다, 하는 비장함이 구름처럼 부풀어 올랐다. 그러나 그 자신감은 내가 예상한 것보다 더 혹독한 지경과 만났다.
안은 접견방에 휠체어를 탄 아버지를 들여다 주고 나가버렸다. 교도소에서 본 아버지의 얼굴은 참혹했다. 마치 로미오가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여기 교도소 안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거긴 춥지? 겨울인데 난방이 되지 않으니… 조금만 견뎌라. 합의금을 준비하고 있으니까.”
로미오는 할 말이 없었다.
“아버지 건강은 어떠세요? 몸은 괜찮아요?”
“약이 간편해져서 한결 좋아지고 있어. 내 걱정은 하지 마.”
“왜 묻지 않으세요? 내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다 알아. 그럴 수 있으니까. 누구든 실수는 할 수 있으니까.”
“그날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여자 친구에게 바람을 맞은 날이었어요. 전 저를 시험하고 싶었어요. 여자 친구는 막상 내가 관계를 맺으려고 하자 그러는 거예요. 안 되겠다고, 넌 이상하게 끌리지 않는다고. 마치 시험을 푸는 수험생 것 같다고 했어요. 내가 애쓰는 것을 여자 친구도 알아차린 거예요. 난 혼자 있고 싶었어요. 그래서 찜질방에 갔고. 거기서 내 옆에서 자고 있는 한 남자를 봤어요. 그 남자도 혼자 온 것 같았어요. 호감을 표시하는 것 같아서 나는 심장이 두근거렸지요. 그러다가 잠이 들었고. 나는 옆에서 곤하게 잠자는 그 남자에게 다가가서 몸을 더듬었어요. … 그런데 그 남자가 내 뺨을 갈기더니 찜질방 주인을 부르고. 주인은 경찰을 부르고 … 일이 그렇게 커져버린 겁니다.”
“알아. 경찰서에 갔어. 합의금을 주지 않으면 네 형량이 늘어난다고. 지금 내가 합의금을 구하고 있어.”
“대출해서 꼭 갚을 거니까 우선 좀 빌려주세요.”
“걱정 마 … 넌 온갖 일을 겪는구나. 소설적으로 좋은 주제가 되겠어.”
“소설거리는 계속 늘어나고 있어요. 여기에서도 온갖 일이 벌어지고 있으니까요.”
“그렇지. 그래도 여기 바깥보단 힘들겠지. 싫은 사람을 피할 수 없으니까.”
“아버지가 계신 곳도 그렇지요. 사람들은 다른 것을 용납하지 않으니까. 우리와 같은 류들을 인정하지 않으니까.”
“난 세상에서 격리되지 않았어. 내가 오히려 세상을 격리시키는 것과도 같지. 너도 그렇게 해. 어떻게 해서라도 살아남아야 해.”
“생존이 삶의 목적이 될 줄은 몰랐어요. 삶의 목적은 좀 더 근사한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근사한 것이 될 수 있어. 마음먹기에 달려있지 … 난 살아남으려고 네 엄말 이용하기까지 했다. 결혼하면 사람들이 더 이상 날 의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어쩌면 나도 너처럼 좀 더 순일했어야 하는가, 너를 통해 내가 많이 달라지는 것을 느껴.”
“전 아버지를 통해 달라지고 있는데요. 살고 싶은 마음이 들거든요.”
“고맙다. 나오면 네가 가장 하고 싶은 것을 계속해야지. 소설 말이다. ”
“그럴 거예요. 여기서 쓰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고 있어요. 잘 때 천장에 소설을 써요.”
“책을 더 넣을게.”
“감사해요.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