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상한 의사 선생님

이 나이에 어르고 달래질 줄이야

by 손이한

자다가 아파서 깼던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전날 밤 별로 무리한 것도 없었는데 갑자기 왼쪽 어깨가 찢어질 듯이 아팠다. 급한 대로 주말 진료가 가능한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아보았지만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다. 오히려 침대를 짚고 일어나다가 우두둑하고 뭔가 끊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거 큰일이다. 쉽게 낫지는 않겠다 싶어서 정형외과를 찾았다. X-ray에서도 발견되지 않던 통증의 원인이 MRI에서야 잡힐 수 있었다.


"여기 보이시죠? 어깨 힘줄이 4개가 있는데 희미하게 연결되어 있거나 끊어졌어요. 당분간 무리하지 마시고 주사 치료를 하면서 어깨 강화 운동을 병행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스테로이드 주사의 효과는 즉각적이고 확실했다. 너무 아파서 팔을 들어 올리지도 못했던 내가 수월하게 팔을 움직일 수 있었다. 오호라, 나았구나! 어깨 근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말에 필라테스 수업에서도 어깨 부위를 집중 공략했다. 그러나 7개월 뒤, 다시 통증이 밀려와 병원에서 스테로이드 처방을 받았고, 통증의 주기는 더욱 짧아져 다음 내원은 4개월 뒤였다. 이제 스테로이드는 별 효과가 없다고 판단되어 체외충격파로 넘어갔지만 통증 강도와 부위는 더욱 심해졌다. 염증이 있을수록 통증이 더 강하다는 말에 아파도 참았던 것이 독이 되었다. 정형외과에서도 별 소득을 얻지 못하자 나는 병원 유목민이 되었다.


이곳저곳을 다녀보아도 별 소득이 없던 차에 특이한 치료를 한다는 한의원을 발견했다. 방문자 후기도 많지 않고 지인의 추천도 없이 병원을 선택하는 게 망설여지긴 했지만 밑져야 본전이다 싶어서 찾아갔는데, 엘리베이터도 없는 낡은 상가 건물에 허름한 커튼과 침대가 놓여있는 진료실. 원장 혼자서 진료하는, 말 그대로 동네 한의원이었다. 집 근처의 깔끔하고 화사한 인테리어의 여느 병원들과 달리 퀴퀴한 약방 냄새가 가득할 것 같은 분위기에 의사 선생님 또한 지긋한 연배의 할아버지일 줄 알았는데, 의외로 40대 중후반의 젊은(?) 의사 선생님이 맞이해 주었다.


의사 선생님은 내 증상을 듣더니 표정이 심각해졌다. 어깨는 쉽게 낫지도, 치료하기도 어려운 부위라서 어떻게 될지 모른다. 앞으로 3개월 동안 단계적으로 조금씩 나아지도록 치료할 거다. 치료 기간 동안은 지금 하는 운동을 모두 그만둬라. 그의 마지막 말이 마치 사형선고처럼 들렸다. 아니, 운동하지 않으면 아픈 나이인 저한테 운동하지 말라고요? 그것도 3개월씩이나? 절망에 빠진 내 표정을 뒤로하고 의사 선생님은 내 몸을 이리저리 굴려가며 상태를 확인했다.


이제껏 많은 한의원을 다녀보았지만 이 의사 선생님의 진료 방식은 정말 특이했다. 여느 의사 선생님들은 침을 놓을 때도 우아하고 간결하고 '톡' 놓는데, 그는 우악스럽게 내 어깨의 근육을 쪼개가며 혈자리를 찾았고, 침을 꽂을 때도 바늘땀을 따듯 혈자리를 헤집어가며 찔러댔다.(나중에 알고 보니 '도침'이라는 치료 방식이었다.) 환자를 섬세하게 배려하는 사람은 아닌가 보다 싶어서 몇 번 다녀보고 다른 병원으로 옮겨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의사 선생님이 팔을 들어 올려보라고 했다. 그런데 이게 웬 일? 90도 이상 들지 못하던 팔이 귀 근처까지 쑥 올라갔다. 너무 놀라서 눈만 껌뻑이는데 의사 선생님은 이미 예상했다는 듯이 태연해 보였다. 지금까지 어깨에만 몇 백만 원을 들였어도 소용이 없었는데 단 한 번의 치료로 이렇게 팔이 올라가다니. 믿을 수 없었다. 어깨에 무리되지 않도록 팔걸이에 팔을 올려놓는 습관을 들이고 잠을 잘 자야 한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나는 순종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나의 구세주였다.


하지만 제일 특이한 건 의사 선생님의 말투와 행동이었다.


"이한 님! 오늘은 좀 어때요? 잠 많이 못 잤나 보네. 피곤해 보여요!"

"따끔. 잘 들어갔어요. 조금만 참아요. 잘 참았다! 많이 아팠죠?"

"자세를 이렇게 해볼까? 옳지, 잘했다."


마치 소아과에 온 듯한 낯선 말투라고나 할까. 처음엔 그가 나를 유치원 어린아이로 보는가 싶기도 했다. 이런 환자 대접이 어색해서 뭐라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면, 그는 민망한 듯 얼른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버리곤 했다. 처음엔 동네 병원이니까 아주머니, 할머니들 응대하려고 일부러 저런 말투를 쓰나 싶기도 했는데, 계속 지켜보다 보니 그는 진심으로 환자들과의 수다를 즐기는 것 같기도 했다. 어쩔 때는 오랜만에 방문한 환자와 근황 이야기를 나누다가 진료 시간이 늦어지기도 했다. 어깨 통증으로 피곤함이 가득한 나는 그의 수다를 배경 삼아 잠에 빠져들기도 했다. 어느덧 병원 침대가 우리 집 침대만큼이나 익숙하게 느껴졌다.


어깨는 금방 나아지지 않았다. 좋았다가 싶으면 컨디션에 따라 다시 악화되기도 하고, 몇 주 동안 정체되기도 했다. 나의 상태를 가장 먼저 알아차리는 것은 의사 선생님이었다. 정작 몸의 주인인 나는 전날에 어땠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는데, 그는 내가 어제 잠을 잘 잤는지 못 잤는지도 금세 알아차렸다.


"내가 보기에, 이건 운동을 무리했다고 끊어진 게 아니야.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서서히 누적되었다가 '이젠 못 버티겠어!' 하면서 끊어진 거지. 그래서 하루아침에 아팠다고 하지만 사실은 이전부터 무리가 갔던 거야. 왼쪽 어깨만 보면 엄청 고생 많이 한 할머니라니까? 몸이 피곤하면 바로 안 좋아지니까 무리하지 말고, 어깨 말리지 않게 자세 교정 의식하고. 이제 유산소 운동은 좀 해도 괜찮을 거 같아요. 수고했어요!"


병원에 방문할 때면 그는 바쁜 와중에도 항상 침대 커튼을 열어젖혀서 안부 인사를 건넨다. 침을 놓으며 어르고 달래기도 하고, 꾸짖고 타이르기도 한다. 척추 교정을 마치고 나면 항상 잘 가라며 어깨를 두드려 준다. 무뚝뚝한 나는 그의 행동에 일일이 반응하지 않으면서도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투박한 진심을 담고 있다고 느낀다. 환자와 눈을 맞추고 인사하는 것, 근황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몸에 힘을 실어 뼈마디를 맞추는 것이 단지 의사이기에 가능하지는 않으리라.


4월에 시작한 진료는 8월이 된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처음에는 팔을 들어 올리는 것도, 살짝 짚거나 당기는 것도 불가능했던 내가 이제 귀 가까이까지 팔을 들어 올리거나 약간 무거운 것을 드는 것도, 손을 짚고 일어나는 것도 가능해졌다.


"제가 어느 정도까지 기대하고 치료를 받으면 될까요?"


내 질문에 그는 자신의 팔을 직접 뒤로 젖히면서 시범을 보였다.


"사람들이 팔의 각도가 똑같이 나오는 건 아녜요. 나 봐요. 왼쪽과 오른쪽의 각도가 다르죠? 내 목표는 이렇게 팔을 움직일 때 통증이 없는 거예요.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조금씩 나아질 거예요. 그래도 처음보다는 많이 나아지지 않았어요?"


네, 맞아요. 나는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처음에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그도 이젠 익숙해졌다. 아버지가 아이를 다루듯 어르고 달래는 말투도 이젠 더 이상 특이하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중년에 접어든 나이에 아이처럼 취급을 받는 것이 어색하면서도 따뜻한 위로로 느껴진다.


어깨가 다 나으면 그와도 작별이리라. 이 병원을 방문한 지 4개월, 앞으로 또 얼마큼의 시간이 필요할진 몰라도 완치가 되면 인사 한 마디는 꼭 남기고 싶다. 수다쟁이인 의사 선생님에게 너무 무뚝뚝한 환자여서 미안하지만 마음으로는 항상 고마웠다고. 이렇게 한 편의 글로 남길 만큼, 당신은 기억에 오래 남을 의사 선생님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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