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위대한 수업] 찰스 스펜스, <감각 사용 설명서>
최근 몇 년 사이에 '맨발 걷기'가 유행이다. 십여 년 전에도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맨발로 흙바닥을 걷는 문화는 있어 왔지만, 지구와 직접 신체를 맞닿는다는 '어싱(earthing)' 혹은 '그라운딩(grounding)'이라는 용어까지 등장한 것은 낯설다. 지자체마다 맨발 길을 조성하고 맨발 걷기의 성지가 나오면서 우리 집 근처에도 몇 군데나 맨발 걷기 산책로가 생기게 되었다. 건강을 위해, 자연을 느끼기 위해 시작한다는 맨발 걷기, 도대체 왜 유행일까? 'EBS 위대한 수업'에서 그 해답을 찾아보자.
현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은 왜 건강과 행복 문제로 괴로워할까?
감각 연구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찰스 스펜스는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청각 등 우리의 주변의 환경으로부터 느끼는 감각이 그 원인과 해법을 제시할 거라고 설명한다.
각종 알림이나 정보, 소음 등 우리 사회에서 감각 과부하를 겪고 있는 사람들 대다수는 시각과 청각 정보의 과부하인 경우가 많다. 감성적 감각에 해당하는 촉각, 미각, 후각은 오히려 자극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특히 후각은 우리 기분과 감정, 기억에 더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현대 사회가 마주한 진짜 문제는 감각 과부하가 아닌 감각 불균형이다.
감각 불균형이 생기면 어떤 현상이 발생할까? 이성적인 청각과 시각이 과잉 자극되고 감성적 감각이 과소 자극되 스트레스 관련 질환의 발병이 늘어나고 불면증을 호소하는 사람도 증가한다. 잠을 못 자서 에너지를 충전하지 못하면 사회적, 인지적, 정서적 행복감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감각은 우리의 행동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까? 한 음악 심리학자가 슈퍼마켓의 음악이 매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실험을 했다. 프랑스 음악을 튼 날에는 프랑스산 와인이 75% 팔렸지만 독일 음악을 튼 날에는 독일 와인의 판매량이 72%로 상승했다. 음식 냄새나 빵 냄새, 커피 냄새 등 후각을 마케팅에 이용한 사례는 다양하다.
현대 사회에서 다중 감각을 긍정적으로 맛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찰스 스펜스는 그 해답으로 '자연'을 말한다. 자연을 보고 듣고 냄새를 맡고 느끼고 맛보는 시간을 늘리면 사회적, 인지적, 정서적 행복감을 높일 수 있지만, 자연에서 멀어질수록 부정적인 영향을 받게 되는데, 이를 ‘자연 결핍 장애’라고 부른다. 찰스 스펜스는 하루의 90% 이상을 실내에서 보내는 현대인의 다수가 자연 결핍 장애를 겪고 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주변의 공원이나 넓은 초원에 나가도 감각을 조화롭게 자극하긴 쉽지 않다. 우리 주변에서 일상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자동차, 오토바이, 비행기 소리는 자연을 볼 때의 긍정적 효과를 반감시킨다. 인간이 만들어 내는 인위적인 소음은 행복감, 몸무게, 심지어 수명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면 진짜 자연에 나가야만 긍정적인 효과를 볼 수 있을까? 찰스 스펜스의 연구에 따르면 디지털이나 합성된 자연, 조화 같은 것으로도 진짜 자연 못지않은 효과를 누릴 수 있다고 한다. 사무실이나 방 안에 인조 식물이나 인조 나무를 들여놓는 것만으로도 실제 식물이 주는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감각은 공간 설계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요즘 유행하는 칸막이 없는 사무실은 업무 생산성을 효율적으로 높이기 위해 직원을 한 공간에 모아 놓았지만, 소음에 취약하여 근무자의 행복과 사고력에 해를 끼치기도 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스칸디나비아의 환경 심리학자들이 조용한 분수나 폭포 소리를 칸막이 없는 사무실에 틀면 다른 사람이 내는 소음을 덮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자연의 소리가 주는 긍정적인 효과를 사무실 공간에서 재현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생산성과 행복감을 높일 수 있는 공간을 설계하려면 사람은 저마다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어떤 사람은 음악을 틀고 일하길 좋아하지만 고요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은 말하면서 학습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누군가는 손으로 쓰면서 배우는 걸 좋아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환경을 설계할 순 없을까? 뉴욕의 페일리 공원은 자신의 감각적 특징에 맞는 공간을 찾아갈 수 있도록 감각적 차이를 고려해 설계한 사례이다.
시끄러운 뉴욕 한복판에 있는 작은 공간이지만, 공원 한쪽 벽에는 폭포가 있고 앉을 자리와 녹색 식물도 가득하다. 이 공원의 독특한 점은 자기가 원하는 소음 수준에 맞춰 의자를 멀리, 혹은 가깝게 두는 게 가능하다는 것이다. 자연의 소리인 폭포로 오토바이나 자동차 같은 인위적인 소음을 차단하는 것이다. 이처럼 시각이나 촉각, 청각 등 개인에 맞게 감각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오감은 우리의 미각에도 영향을 미친다. 휴양지에서 산 와인을 집에서 마셔보면 그때의 맛이 느껴지지 않고, 기분이 우울할 때 혼자 밥을 먹으면 맛이 없게 느껴진다. 스위스의 요리사 드니 마르탱은 자신의 레스토랑에 오는 정장 차림의 딱딱해 보이는 손님들이 음식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재미난 실험을 한다. 식탁의 정중앙에 플라스틱 젖소 인형 하나만 놓고 손님들을 맞이하는 것이다. 호기심이 많은 손님 중 하나가 젖소 인형을 들면 '음메' 하는 소리가 나고 사람들은 놀라 웃음을 터뜨린다. 손님들의 기분은 좋아지고 음식은 더 맛있게 느껴진다. 이것을 '정신적 입가심'이라 부른다.
손님들의 만족도는 입이 아닌 정신에 의해 결정된다. 우리 머릿속에서 시각, 청각, 후각이 통합되고 음식이 주는 촉감, 맛, 온도, 통증이 기분이나 감정과 통합되기 때문이다. 음식 이름이나 음식에 담은 설명도 중요하다. 접시의 디자인이나 무게도 맛에 영향을 미친다. 흰 접시에 놓인 디저트는 더 달게 느껴지고, 무거운 접시를 손에 들고 먹으면 더 맛있게 느껴진다.
감각으로 인간의 고통을 치유하는 것도 가능할까? 병원의 기계음이나 경고음을 음악으로 대체하자 환자들의 긴장이 완화되었다거나, 음악을 들으니 진통제 복용량이 줄어들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에 따라 환자의 심리 상태를 고려한 배경 음악을 만든 사례도 있다.
후각이나 시각은 어떠할까? 달달한 냄새는 얼음 욕조에 손을 담근 사람이 더 오랫동안 버틸 수 있게 하였으며, 라벤더 향은 수면의 질을 향상했다. 삶은 감자 등의 하얀색 식재료는 파란색 식기에 담을 때 식사량이 3분의 1 더 증가하였다.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때에도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 다중 감각적 환경을 조성한다면 환자의 회복이 빨라지고 불안과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EBS 위대한 수업] 찰스 스펜스, <감각 사용 설명서>
https://youtu.be/Xv0PHjNrm1A?si=0crNCnuwoRJfj_G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