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위대한 수업] 비노드 아가왈, <자유 무역의 역사>
17세기만 하더라도 유럽의 국가들은 무역을 제로섬 게임(Zero-sum Game)이라 여겼다. 즉, 한 사람의 이익을 얻으면 다른 사람은 그만큼 손실을 얻는다는 것. 하지만 영국의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절대적 우위를 갖는 제품 생산을 특화해 다른 나라와 교환하면 부의 증대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오늘날의 ‘자유 무역’은 태동하게 됐다.
선진국은 개발도상국에 비해 모든 분야에서 생산적 우위를 갖는다. 이 논리에 따르면 선진국은 가난한 나라와 무역을 할 이유가 없어진다. 가난한 나라 또한 선진국의 입김에 휘둘리는 무역은 손해다. 그렇다면 서로 무역을 안 하는 게 맞는 걸까? 이에 19세기 영국의 경제학자 데이비드 리카도는 ‘비교우위론’을 통해 생산성이 높은 국가도 생산성이 낮은 국가와 무역해야 하고 생산성이 낮은 국가도 무역으로 이익을 볼 수 있음을 증명했다.
그렇다면 무역을 통해 생산성이 높은 국가나 생산성이 낮은 국가 모두가 이익을 본다면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을까? 하지만 무역으로 인한 상대적 이득을 따져본다면 그렇지 않다. 무역으로 A국가가 10의 이득이 발생했지 B국가는 50의 이득이 발생했다면, 이를 통해 B국가는 경제 협상을 할 때 경제적으로 더 부강하다는 사실을 이용해서 다른 국가에 압박을 가할 수 있다. 이는 무역의 이득이 군사력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많은 나라는 산업 육성을 위해 수입대체 산업화 정책을 추진했다. 프레비시와 싱어의 주장은, 개발도상국들이 밀이나 설탕 같은 1차 상품 생산에만 집중하고 주석과 구리 등의 원자재는 수출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개발도상국이 공산품을 수입에 의존하게 된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수출 이익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즉, 개발도상국은 그저 원자재만 판매하는 상품 생산자로 남을 수밖에 없고 산업 고도화를 이루어내지 못하게 된다.
이 때문에 프레비시는 개발도상국이 핵심 상품만 수입하고 그 외 소비재는 국내에서 생산하는 '수입대체 산업화' 정책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무역 장벽을 높이고, 해외 투자를 제한하며, 국내 사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거나 국영 기업을 세우고, 국내 자본 이동을 제한했다. 가령, A국가의 자동차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B국가로부터의 자동차 수입이나 공장 건립을 제한하고, 대신 A국가의 자동차 산업 지원 전략을 활성화하며 목돈이 해외로 유출되는 것을 막는 것이다. 이 정책은 중남미와 아프리카, 동남아시아의 개발도상국들이 경제를 일으키는 발판이 됐다.
다만 수입대체 산업화를 추진하면 국내 기업간의 경쟁이 없다는 문제가 생긴다. 여러 국가들이 내수 시장에 두어 개의 기업만 진출하도록 허가했기 때문이다. 더 나은 제품을 개발할 수 있는 기술이 있는데도 회사에 이득이 생기지 않기 때문에 이들 기업들은 생산성 향상이나 혁신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다른 나라에 비해 뒤떨어진 제품은 수출 경쟁에서도 밀리게 된다.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많은 경제학자가 오늘날의 시장 구조에서 자유 무역은 최선의 정책인지에 대해 의문을 가졌다. 독점이나 과점 형태를 띠는 산업이 증가하면서 이들 기업이 가격을 조작해 폭리를 취하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또한 국제 무역은 자원 이동의 어려움과 실업 증가, 소득 불평등, 환경 오염, 아동 노동 ,인권 등 여러 문제를 동반하고 있다.
저임금 혹은 무보수로 일하는 아동 노동을 해결한 좋은 예가 있다. 청바지 회사인 리바이스는 방글라데시의 계약 업체에 하청을 맡겼지만, 계약 업체가 15세 미만의 아이들을 의류 생산에 동원한 것을 알고 즉시 방글라데시에서 철수하기로 한다. 그러나 계약 업체는 리바이스가 철수하면 공장에서 일하던 어린 소녀들이 더 열악한 직업이나 매춘을 택할지도 모른다며 붙잡았다.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소녀들에게 다른 일자리가 없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리바이스가 택한 해결책은 소녀들이 학업을 마칠 때까지 교육비를 지원하고, 그 동안 아이들의 친척을 고용하여 가족을 부양하게 했다. 그 후에 소녀들에게 월급을 주고 다시 고용하는 것이다. 다국적 기업이 개발도상국에서 책임감 있게 행동한 사례다.
[EBS 위대한 수업] 비노드 아가왈, <자유 무역의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