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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이한 Dec 19. 2023

'함께 읽기'의 힘은 세다

독서 모임에 반드시 참여해야 하는 이유 

저녁 7시, 모든 준비를 마치고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켠다. 하나둘 사람들이 모이고 간단한 인사를 나눈 다음 각자의 시간에 몰입한다. 한 시간 반 남짓의 시간, 조용한 음악과 함께 책을 읽어 내려가다 문득 모니터를 본다. 모두 고개를 파묻고 열중해 있다. 이크, 잠깐 한눈을 판 게 들킨 것 같아 나도 황급히 고개를 숙이고 집중한다. 부산스럽던 머리가 가라앉고 기분 좋은 고요함이 감돈다. 


90분은 가벼운 책 한 권은 쉽게 읽어낼 수 있는 정도의 시간이다. 오늘 읽은 책은 박상영 작가의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직장과 작가 활동을 병행하며 얻은 스트레스를 야식과 함께 풀어내야 했던 작가의 웃픈 이야기가 담긴 에세이집이다.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 시작했던 행위라고 생각했던 글쓰기가, 실은 나 자신을 향해 나 있던 길이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 거였다."는 작가의 고백을 독서 노트에 적어 본다.  


함께 이야기를 나눌 발제문도 만들어 본다. '고된 직장 생활을 버티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나만의 사이드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있는가'... 시간이 다 되었다. 모두가 마이크를 켜고 모니터 앞으로 모인다. 각자 읽은 책을 소개하며 자신의 고민도 툭, 얹어 놓는다. 때론 무겁기도, 때론 가볍기도 하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책은 그저 핑계였을 거란 생각이 든다. 각자 살아가는 이야기, 버텨내는 이야기들이 넘실거린다. 


저녁에 시작된 모임은 밤이 될 때까지 이어졌다. 한 시간 넘게 수다를 떨다 보니 슬슬 눈이 감기고 고개가 옆으로 젖혀진다.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화면을 종료한다. 7개월이 넘도록 매주 온라인에서만 모이는 독서 모임이다.   




삶이 절망으로 가득 찼을 때, 내가 선택한 것은 '독서'였다. 


집 밖으로 나갈 에너지는 없지만 지금 당장 맨손으로 시작할 수 있는 것은 독서였다. 하지만 책을 읽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었고, 책을 읽기 위해 일부러 시간을 내는 것도 쉽지 않았다. 원래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던 사람이라면 모를까, 나처럼 나태한 사람에게 혼자서 꾸준히 습관을 형성하기란 어려웠다. 


그러다 문득, 함께 뜨개질을 한다는 '함뜨' 모임이 생각났다. 실을 짜는 길고 지루한 시간을 버티기 위해 함께 카페에 모여서 뜨개질을 하거나 온라인으로 서로의 작업량을 독려하는 모임. 독서 모임 중에서도 그런 게 있지 않을까 싶어서 찾아보니 지정 도서를 읽는 모임 말고도 자유롭게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을 읽는 모임도 많았다. 그중 온라인으로 진행한다는 한 모임에 들어가 지금까지 7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7개월 동안 나는 총 29권의 책을 읽었다. 한 달에 4권씩, 일주일에 한 권을 읽은 셈이다. 그중엔 독서 기록장까지 적지 않고 대충 훑어보다가 덮은 책도 있다. 분야는 다양하지만 주로 인문사회 영역을 읽고 경제과학 부분은 등한시하여 편협한 독서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도 일주일에 한 권이면 충분히 배부르지 않은가. 



1. 무슨 책을 읽고 있나

전공이 국어국문학과지만 전공 혐오에서인지 이상하게 소설은 끌리지 않는다. 소설도 언젠가는 읽어야 할 분야겠지만 아직은 미지의 영역으로 남기고 싶다. 최근에는 사회 문제와 관련된 책을 읽고 있다. 관심사는 물 흐르듯 변하니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분야를 읽고 있을 것이다. 


2. 어떻게 읽고 있나

점점 책을 사서 보는 것도 사치라고 느끼고 있다. 무언가를 소유한다는 것은 그만큼의 공간에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 것과 같다. 사람이 살기에도 좁은 집에 책은 관 속에 같이 묻힐 정도로 애정이 있는 것들이면 충분하다. 예전에는 자주 읽지 않아도 책장에 꽂아두면 배부르던 때가 있었는데 이젠 모두 처분하고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다. 도서관까지 가기 귀찮을 때면 전자책을 찾아 읽는다. 비록 모든 종이책을 전자책으로 볼 수는 없지만 잘 검색하면 꽤나 많은 책을 읽을 수 있다. 


2-1. 전자책/이북 리더기의 장점

호불호가 있겠지만 나는 전자책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종이책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전자책에 입문하기까지 마음의 벽을 넘어야 하지만, 일단 전자책에 입문할 수 있다면 수십만 권의 책을 가볍게 들고 다니며 틈날 때마다 훑어보기에 용이하다. 전자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이북 리더기는 필수이다. 태블릿이나 스마트폰으로 읽어도 되지만 이북 리더기는 가볍고 무엇보다 눈의 피로도가 거의 없다. 어두운 방에서 조명 없이도 읽을 수 있고 마음에 드는 구절을 하이라이트 하거나 메모할 수 있으며, 어플과 연동하여 독서 기록을 남기기도 좋다. 


2-2. 전자책/이북 리더기의 단점

하지만 명확하게 단점도 존재한다. 전자책은 실물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리 쌓아 놓아도 눈으로 확인할 수 없다. 독서를 하려면 때로는 마음의 부담감도 있어야 한다. 내가 읽지 못한, 읽어야 할 책이 저만큼이라니! 라는 느낌을 전자책에서는 받기 어렵다. 300페이지 이상의 두껍고 어려운 책을 읽을 때면 전자책이 주는 묘한 가벼움 때문에 몰입하여 읽기 어렵다는 느낌도 든다. 또 이북 리더기는 전자 잉크라는 방식으로 글자를 구현하는데, 페이지를 넘기는 속도가 더디고 잔상이 남는다. 이미지 중심의 책이라면 이북 리더기보다는 태블릿으로 보는 것이 낫다. 


3. 독서 기록을 남겨야 하는 이유

영화나 드라마의 장면은 세세한 표정 하나, 대사 하나까지 기억하기 쉽지만 책은 그렇지 않다. 최근 필사와 낭송을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 눈으로만 읽는 책은 생각보다 많은 부분에 구멍이 나 있다는 것이었다. 쉽게 읽을수록 쉽게 기억에서 잊히게 된다. 손으로 정리하는 습관을 들이면 조금 더 오랫동안 저장해 둘 수 있고 나중에 찾아보기도 좋다. 올해 내가 몇 권의 책을 읽었으며 어떤 분야의 책을 주로 읽었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기록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이다. 


독서 기록을 남긴다면 독서 어플이나 메모장, 엑셀 등 다양한 플랫폼이 있겠지만 나는 노션(https://www.notion.so/)을 선호한다. 노션은 용도에 따라 업무 회의록, 가계부, 투두리스트 등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데, 나는 독서기록 무료 템플릿을 공유받아 사용하고 있다. 엑셀의 편리함에 감성을 한 스푼 얹은 느낌이다. 



4. 독서의 힘이 부족할 때면, 함께 읽기

올해 총 5개의 독서 모임에 가입했다. 온라인 자유독서 2개, 희곡 읽기 2개, 환경 독서 1개. 모임에 따라 일주일에 한 번 혹은 한 달에 한 번 모이기도 하고, 온라인이나 오프라인, 자유 독서이거나 지정 도서인 등 모임의 성격과 형식은 다양하다. 개인 일정이 생기면 모두 참석하지 못할 때도 있고 그때그때의 지정 도서가 내 입맛에 맞지 않아 참여하지 않을 때도 있지만 최소 주 1회는 참석하고 있다. 한 달에 책 한 권도 읽지 않았던 때에 비하면 비약적인 성장이다. 


사람의 관심도는 그에 얼마나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하느냐에 따라 달려 있다고 한다. 독서가 필요하다고 느 끼면 책을 사모으거나 책을 읽을 시간을 내거나 둘 중 하나의 전략을 택해야 한다. '시간이 부족해서 책을 못 읽는다'면 자기 전 30분은 무조건 책을 읽을 거야, 처럼 독서 시간을 일부러 빼두어야 한다. 하지만 전술했듯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꽤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함께 읽기'의 힘이다. 혼자라면 금세 포기할 것도 여러 명의 지지와 응원, 감시가 있다면 해낼 수 있다. 


최근 새로운 독서 모임을 기획하고 있다. 더 많은 희곡을 읽어보고 싶은데 근거리에 마땅한 모임이 없어 온라인으로 희곡 낭송 모임을 만들어보려고 한다. 독서 중에서도 마이너한 낭독 분야, 그중에서도 가장 마이너하다는 희곡을 읽는 모임이라 얼마나 사람들이 모일지는 미지수이지만 일단 도전해 보고 빠르게 실패해보려 한다. 누군가는 나와 같은 고민과 갈증이 있을 거라 믿는다. 


독서란 우물과도 같아서, 내가 좋아하는 분야를 누구보다 더 깊게 파내려 갈 수 있다. 그렇게 깊게 내려가다 보면 다른 사람은 또 얼마나 깊은지 알지 못한 채 나만의 세계에 빠지기도 쉽다. 혼자 읽는 독서의 맹점이 여기에서 온다. 함께 읽을 때, 함께 이야기를 나눌 때, 그리하여 생각과 생각이 이어질 때 비로소 독서는 완성된다. 올해 독서라는 취미와 만난 것이 퍽 재미가 있다. 이렇게 또 나만의 곳간을 채워나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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