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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이한 Jan 20. 2024

지금 당장 쇼츠 중독에서 탈출하고 싶다면

매일 밤마다 유튜브 쇼츠를 보다가 잠드는 날이 늘어났다. 처음엔 그저 귀여운 고양이 영상이 우연히 떠 있으니까, 로 시작된 쇼츠가 계속 다음 영상, 다음 영상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난 다음에는 어떨까. 평일에야 출근에 바빠 그럴 새가 없지만 느긋한 휴일 아침이면 잠에서 깬다는 명목으로 이불속에 폭 파묻혀 본격적인 쇼츠 탐방에 나선다. 이제 그만 봐야지, 싶으면 어느새 2시간이 넘어가 있었다. 


몇 년 전 틱톡이 유행했을 때만 해도 초등학생들의 유치한 문화라고 치부했던 내가 정신을 차려보니 이젠 쇼츠나 숏폼 같은 짧은 영상 중독자가 되어 있었다. 다행히도(?) 중독된 사람은 나 말고도 여럿이었다. 점점 긴 영상을 끝까지 보는 게 부담이 되는 시대가 되고 있다. "트렌드 코리아 2024"에서는 이를 '실패 회피'라고 설명한다. 


분초 사회의 하위 현상으로 '실패를 회피한다'가 있습니다. 예전에는 유튜브에서 영화 요약을 보더라도 '스포일러 피해 가기' 봤는데, 요즘은 '결말 포함'으로 보는 경향이 늘어났습니다. 결말을 알고 재미있겠다는 확신이 들면 정주행을 시작하는 거죠.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고자 하는 게 잘못이겠는가? 하지만 모두가 1.5배속에서 2배속으로, 요약본으로 보는 것에 익숙해진다면 나중에는 4배속, 6배속까지도 나오지 않을까. 그렇게 줄인 시간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또 다른 요약 영상을 보기 위해서' 쓰이게 된다. 커피 중독, 탄수화물 중독만 위험한 게 아니다. 영상 중독도 마약만큼이나 위험하다. 지금까지의 나는 잠들기 위해 침대에 누운 게 아니라 쇼츠를 보기 위해 침대에 누웠던 것일지도 모른다어차피 안 봐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정보들에 시간을 낭비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나 자신이 너무나 한심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더는 쇼츠에 중독된 바보가 되고 싶지 않았다. 


벗어날 길은 하나였다. 지금까지의 패턴을 완전히 뒤집어 놓는 것. 


생각해 보면 내가 쇼츠를 클릭했던 건 

아침에 일어나 핸드폰 알람을 끄고 시간을 확인하고 

잠들기 전 침대에 누워서 습관적으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가 

이 두 가지 패턴이었다. 이 두 개만 버티면 더 이상 쇼츠를 붙잡고 1시간 동안 방황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래서 나는 중독에서 벗어날 새로운 습관을 만들어내기로 했다. 그것도 아주 많이.  


#1. 이전까지의 아침과 저녁

알람을 끄고 핸드폰 속 이곳저곳을 탐방한다. 쇼츠를 볼 마음은 없었지만 유튜브에 들어가니 귀여운 고양이 영상이 올라와 있다. 처음 보는 고양이이지만 그래도 고양이니까 클릭을 한다. 다음 영상을 무한대로 재생한다. 이러다가 피곤하면 다시 잠들기도 하고 그대로 쇼츠를 볼 때도 있다. 배가 고파 시간을 확인하니 어느새 점심이 가까워 오고 있다. 오늘도 갓생은 글렀다. 늦은 아침, 혹은 이른 점심을 먹으러 일어난다. 

밤이 되고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켠다. 잠들기 위한 최적의 자세가 점점 핸드폰을 하기 위한 최적의 자세로 바뀌게 된다. 이곳저곳을 탐방하다가 또 쇼츠를 보게 된다. 오늘도 바로 잠들기 아쉽다는 마음에 쓸데없는 영상 몇 십 개를 돌려 본다. 눈이 뻑뻑해지니 이제 더 보는 건 무리다. 보다가 피곤해지면 자야지, 싶던 게 2시간을 넘겨 버렸다.


#2. 요즘의 아침과 저녁

간단한 아침 식사를 준비해서 책상 앞에 앉는다. 조용한 음악을 틀어놓고 일기를 쓴다. 일기엔 어제 정리되지 않은 감정을 쓰거나 오늘의 계획을 쓰거나 한다. 다음은 필사를 한다. 요즘엔 철학자들의 말과 시 한 구절을 필사하고 있다. 필사 분량은 내가 쓰고 싶은 만큼. 한 시간 남짓 여유롭게 아침 시간을 보낸다. 

잠들기 1시간 전, 요가 매트를 펼치고 플랭크 1분, 휴식 30초씩 3세트를 한다. 처음 1세트엔 거뜬했던 마지막 3세트에서는 팔이 부들부들 떨린다. 그래도 정직하게 3세트를 해낸 것에 뿌듯해진다. 다음은 유연성 스트레칭과 복근 운동. 올해는 근육량은 늘리고 체지방량은 낮춘 D형 인간이 되고 싶다. 마지막으로 호흡을 정리하며 명상을 한다. 오늘 하루 동안 둥둥 떠다녔던 마음들이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한결 개운해진 마음으로 책을 읽어본다. 자기 10분만이라도 꾸준히 베갯머리 독서를 하는 올해의 목표다. 


물론 언제나 #2의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니다. 피곤하고 귀찮다는 이유로 아침 기상 시간을 맞추지 못하거나 운동을 빼먹기도 하고 책을 한 줄도 읽지 않고 넘어간 날들도 많다. 하지만 매일 아침 일기를 쓰고 필사를 했던 것은 빼먹지 않았다. 그 점은 스스로에게 칭찬해주고 싶다. 


습관을 세우고, 기록하고, 돌아보는 것은 언제나 중요하다.


안타깝게도 아직 유튜브 앱에서 쇼츠를 차단하는 기능은 없다. 쇼츠가 뜨지 않게 하려면 쇼츠 이전버전으로 앱 자체를 다운그레이드하는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무엇일까. 어차피 유튜브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면 시선이 가더라도 클릭하지 않게 새로운 습관을 만들어야 한다. 나에게는 그것이 독서와 명상, 필사, 스트레칭 같은 것들이었다. 현대인의 삶을 살면서 시간을 내어 쓴다는 것은 정말 큰 결심이 필요하다. 나 또한 저 많은 루틴을 지켜내려면 하루에 2시간은 꼬박 써야만 한다는 게 부담이었다. 하지만 나를 위해 하루 1시간, 30분, 10분, 5분의 시간을 내어 놓는 것이라 생각하면 그리 아깝지도 않았다. 어차피 그 많은 시간을 필요도 없는 쇼츠에 투자하지 않았는가. 완벽하게 모든 것을 해내지 않아도 된다. 정말 힘들고 지쳐 바로 잠들고 싶은 날이라면 나를 충전하기 위한 단 하나의 습관만 실행해도 좋다. 그 순간, 그 하루가 쌓여 일 년을 만들고 삶을 만들 거라 믿는다. 


침대에 누워 벽지 무늬 세어보기, 따뜻한 커피 한 잔 마시며 창 밖 내다보기, 바람의 냄새를 맡으며 동네 한 바퀴 산책하기, 우리 동네에 새로 피어난 들꽃을 사진으로 담기... 구태여 시간을 내야지만 비로소 즐길 수 있는 이런 여유롭고 느린 것들사랑받길 원한다. 도파민보다 달콤하고 새콤하게, 그리고 추억으로 남아 오랫동안 간직할 수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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