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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이한 Feb 12. 2024

'개인'이 아닌 '커뮤니티'로 살아남기 위해

Wavve <사상검증구역 : 더 커뮤니티> 리뷰

* 이 리뷰는 <사상검증구역 : 더 커뮤니티>의 1~8화의 내용을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 만났을 때 불문율처럼 절대 꺼내지 말아야 할 대화 주제가 있다. 바로 정치와 종교 같은 민감하고 타협하기 어려운 주제들. 그런데 그런 이슈를 정면으로 다루는 예능이 나왔다. Wavve <사상검증구역 : 더 커뮤니티>는 정치, 젠더, 계급, 개방성 측면에서 서로 다른 12명의 참가자가 만들어 내는 커뮤니티의 모습을 담은 이념 서바이벌 예능이다.  


'서로 다른 12명', '서바이벌', '생존', '갈등'이라는 키워드만 보면 원색적인 비난과 폭력이 난무하는 여느 자극적인 프로그램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하지만 놀랍게도 이 사람들은 분열과 갈등보다는 화합과 평화를 유지하는 것을 택한다. 어느 한 사람을 악인이나 희생자로 몰아 탈락시켜 더 많은 상금을 얻는 것이 아닌, 모두가 함께 살아남아 소액이라도 공평하게 상금을 나눌 수 있는 방향을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런 평화가 유지될 수 있을까. 모두가 불순분자에 대해 불안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애써 감추는 아슬아슬한 균형이 이 사회의 유지와 붕괴를 결정짓는 요소가 될 것이다. 




관전 포인트 1. 불편하더라도 우리 사회의 갈등 요소를 직시해야 하는 이유

[젠더] 데이트 비용을 더 내는 남자가 섹시한 것은 자연스럽다. 
[정치] 국가 발전에는 유능한 독재자가 필요한 시기가 있다. 
[계급] 빈곤의 가장 큰 책임은 본인에게 있다. 
[개방성] 대중매체 속 조선족 범죄 묘사는 사라져야 한다. 


이 프로그램의 큰 특징은 사람들이 가장 민감하다고 여기는 젠더, 정치, 계급, 개방성 주제에 대해 정면 돌파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은연중에 그 사람의 배경이 짐작되는 경우가 있다. 어느 지역 출신이라든지 어느 대학을 나왔다든지, 어떠한 취미를 가지고 있으며 최근의 관심사는 무엇인지. 사람들은 상대의 말투와 행동을 민감하게 관찰하며 나와 비슷한 부류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고 같은 편이 될 것인지 아닐지를 결정하여 그에 걸맞은 반응을 보이게 된다. <사상검증구역 : 더 커뮤니티>에 참가한 출연진들도 처음에는 서로를 경계하면서도 적당한 친분 관계를 유지하며 평화롭게 겉모습을 유지해 나간다. 하지만 첨예한 갈등 주제에 있어서는 서로 대립각을 세울 수밖에 없다. '익명 채팅 토론'에서 참가자들은 네 가지 주제에 대해 찬성과 반대의 입장을 정해 토론하고, 우승 팀과 토론 MVP는 상금을 얻게 된다.  


살면서 나와 다른 입장의 사람들과 깊게 이야기할 기회가 얼마나 있었을까.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불편해하는 주제가 무엇인지 알게 되면서, 나 스스로도 점점 머리 아픈 이슈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그런 입장을 드러내길 꺼리게 되었다. <더 커뮤니티>의 출연진 또한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당연히 이게 옳지!'라고 생각하던 것도 논리적인 반박이 있다면 얼마든지 다른 관점에 대해서도 긍정할 수 있다는 걸 보며 우리 사회에 왜 건강한 토론이 필요한지 알 수 있었다. 


마이클: 신비로운 게 뭔지 알아요? 반대 입장에서 제가 대변을 해야 되는 입장에서 하다 보니까 저도 어느 정도 설득이 되는 거예요. 겸손해졌어요. 와, 선입견이 이렇게 무서운 거구나. 이 프로그램을 하면서 자기 객관화가 빠르게 되고 있고 많은 걸 배우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세 번째 토론, '빈곤의 가장 큰 책임은 본인에게 있다'을 보며 '하마'가 피드에 올린 글은 가난한 사람을 바라보는 차가운 시선에 경종을 울린다. 우리에겐 경험하지 않고서는 절대 알지 못하는 것들이 많이 있다. 함부로 '알고 있다', '이해한다'라고 말하는 것은 얼마나 폭력적인가?

하마: 빈곤 문제에 있어서 가장 답답하다고 느끼는 지점은, 빈곤에 대한 논의가 너무 자주 빈곤하지 않은 사람들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빈곤한 사람들이 빈곤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이유는 경제적 빈곤이 다른 빈곤과 너무나 쉽게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구체적인 사실들은 빈곤을 직접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상상하기 매우 어렵습니다. 빈곤은 단순히 경제적인 부의 박탈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빈곤은 인간이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역량을 매우 다양하고 다면적인 방식으로 제한합니다. 그중 하나는 자신에 대한 믿음을 잃는 것이기도 합니다. 




관전 포인트 2. 뒷담화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하는 이유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커뮤니티 안의 작은 세력을 형성한다. 누군가는 공격을 받기 쉽다는 이유로, 누군가는 내부의 적이 있을지 모른다는 이유로, 누군가는 자신이 안전한 울타리 안에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유는 여러 가지이지만 그들 마음에 공통적으로 숨어 있는 감정은 '불안'이다. 


틈만 나면 남 욕하는 사람, 대체 왜 그럴까? 뒷담화 대처, '이렇게'만 하세요! [타인의 심리 읽어드립니다 EP.1] | 김경일 교수
남 욕을 많이 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본인이 행복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늘 불안하다는 겁니다. 왜 그럴까요? 이런 사람들 중엔 자기보다 더 불행한 사람을 찾아야만 그것으로부터 느끼는 약간의 우월감을 통해서 '그래도 나는 괜찮다'라는 못난 안녕감을 가지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중에 가장 안 좋은 유형이 '내가 싫어하는 사람은 다수가 싫어해야 했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을 강요하는 사람이죠. 이런 사람들은 그런 다수의 힘을 얻기 위해서 자꾸 내 옆으로 와서 다른 사람 욕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고립되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강한 사람은 내가 가지는 이 감정이 다수의 감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사상검증구역 : 더 커뮤니티>에는 다른 주민들이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도록 불신을 조장하는 '불순분자' 역할의 '벤자민'이 있다. 출연진들은 게임을 진행하는 내내 불순분자가 자신들을 공격하지 않을지 걱정하며 서로를 의심하게 된다. 정작 불순분자는 상금을 획득할 수 있는 최종 게임까지 살아남기 위해 의심을 사지 않도록 주어진 미션에 최선을 다하고 무해한 존재로 보이게끔 연기를 하고 있는데, 출연진들은 불순분자를 색출하기 위해 가장 공격적이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놓는 다른 사람들을 의심하며 저격하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사회에서 맞닥뜨릴 수 있는 여러 장면들을 보게 된다. 담배를 피우거나 술, 커피를 마시는 동안 은근하게 세력을 구축하고 정치를 한다거나, 당사자가 없는 자리에서 그 사람에 대한 의심을 공유하며 목소리를 높인다거나, 중요한 정보를 공유하지 않고 숨기며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으려 한다거나, 너무 의견이 강하다거나 또는 의견이 없다는 이유로 적대감을 세운다거나... 어디선가 한 번은 이런 장면을 목격하지 않았던가. 무리에서 소외되거나 뒤쳐지기 싫다는 이유로 뒷담화의 현장에 남아 있었던 것이 나만의 경험은 아닐 것이다. 


'A가 이번에 승진에서 누락됐대.', 'B가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던데?', 'C는 여자 친구랑 헤어졌나 봐.' 등등... 우리는 대화를 통해 타인에 대한 많은 정보를 그리고 끈끈한 유대감을 얻는다. 이 유대감은 '무리에 속해야만 비로소 안전할 수 있다는 안도감'을 의미하기도 한다. 유대감이 강하면 강할수록 나와 다른 무리에 대한 배척과 경계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불안도가 높은 사회는 사소한 오해로도 불꽃이 되어 타오를 수 있다. 마이클이 받은 하트의 개수가 달랐다는 이로 며칠 동안이나 논쟁이 이어졌던 사례가 바로 그것이다. 그저 기억이 잘못되었거나 말을 실수했다고 가볍게 넘어갈 수 있었던 일도 개인의 권리나 자유, 안전이 보장받지 못한다는 불안이 높다면 사건이 되고 만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우리가 뒷담화에서 공유했던 수많은 정보들 중 실제로 일어났던 것은 몇 개인가? 그리고 내가 불안해했던 만큼 실제로 나를 뒤흔들었던 것은 몇 개인가? 되짚어보면 나에게 영향을 줄 정도의 대단한 정보도, 대단한 사건도 아닌데 그저 '무리에 속해 있고 싶어서' 이야기를 나눈 경우가 대다수일 것이다. 이런 불안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한 방법은 뒷담화의 현장에 동조하지 않는 것이다. 자신이 직접 보고 들은 것만 믿고 자신의 신념을 지켜나가며 판단한다면,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불안감을 조장하는 '불순분자'가 있더라도 얼마든지 공동체가 평화롭게 유지될 있다. 




관전포인트 3. 이 세상에 따뜻한 사람이 많아져야 하는 이유 


평화롭기만 했던 커뮤니티에 위기에 닥친다. 이제까지 '모두를 위한', '모두가 함께'를 외치던 출연진들이 자신의 사유재산을 희생해야 하는 순간이 오자 반감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평화로울 때는 착하고 바른 아이처럼 살아갈 수 있지만, 위기의 순간에서는 생존이 가장 큰 목표가 될 수밖에 없다. 


그 순간에도 높은 사회적 감수성을 보여준 사람들이 있다. 이방인이 당황하거나 어려움을 느끼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환영의 인사를 보여주고, 커뮤니티에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기꺼이 안내해 주며,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공감하며 행동할 수 있는 사람들. 나 혼자 먹고살기에 급급하지 않고 주변을 챙기며 내 몫을 나누어줄 수 있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우리 사회는 따뜻해질 수 있지 않을까. 


단지 '나 또한 이방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는 언제나 이방인으로 살아간다. 새로운 학교, 새로운 직장, 새로운 친구, 새로운 가정, 새로운 지역... 그곳에서 내가 환대받길 바라듯이 다른 사람을 환대해주어야 한다는 것은 너무 이상적인 이야기다.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논하자면 선한 사람이 다수인 커뮤니티에서는 악인이 세력을 펼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육이나 사회, 정치의 목표는 선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람들을 양성해 나가는 것이어야 한다. 그렇게 길러낸 선한 사람들은 우리 주변의 악인을 저지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이 프로그램에서 토막으로 소개하는 <나 홀로 볼링>이라는 책은 선한 개인이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커뮤니티'의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과거 미국에서는 볼링장을 중심으로 많은 커뮤니티들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볼링을 치기 위해 여러 사람이 모여야 했고 자연스럽게 함께 어울려 토론하는 문화가 형성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TV가 등장하게 되면서 볼링장은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TV 앞에만 있어도 충분히 오락거리가 채워지는데 굳이 더불어 함께 볼링장으로 향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이제 볼링장에서는 저마다 혼자 볼링을 한다. 사회적 연계와 연대를 담당하던 커뮤니티는 붕괴되고 말았다. 

  

미시간 대학 병원의 직원으로 근무하다가 은퇴한 64세 램버트는 신장이식 수술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놓고 3년째 기다리고 있었다. 우연히 램버트의 딱한 처지를 들은 33세의 회계사 보쉬마는 그를 찾아가 자기 신장 한쪽을 기증하겠다고 했다. 존 램버트와 앤디 보쉬마는 동네 볼링 리그를 통해서만 서로 아는 사이에 불과했다. 보쉬마는 백인, 램버트는 흑인이다. 그들이 함께 모여 볼링을 쳤다는 사실이 세대와 인종의 차이를 뛰어넘게 했던 것이다. 이런 작은 방식으로 미국인들은 서로서로 다시 연계를 맺을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에도 보쉬마와 램버트 같이 선뜻 자신의 몫을 희생할 수 있는 선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들이 힘을 발현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에게는 느슨한 결속력을 지닌 커뮤니티가 활성화되어야 한다. 1인 가구가 전체의 3분의 1을 넘어서는 상황에서 퇴근 후 일상이 '혼자' 헬스장에 가거나 '혼자'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보는 게 전부인 사람들이 많아져서는 안 된다. 나이가 들수록 정보의 고립은 가속화된다. 폐쇄적인 일상에서 벗어나 여러 사람들과 유대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더 많은 플랫폼들이 생겨야 한다. 




애신: 사회에서의 나는 직업이 있지만 여긴 직업도 없고, 여기서 얻게 된 돈에 따라 내가 평균보다 못 미치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평균보다 높은 사람이 될 수 있고, 그래서 그 관점도 달라지더라. 내가 여태까지 생각했던 시선이랑도 너무 달라. 근데 그게 여기는 돈이 내 생과 너무 직결돼 있어.  
슈가: 사회에서 살면서는 생존 문제라든지 나와 반대되는 사람들의 입장을 생각할 기회가 잘 없는데 여기서는 완전 반대의 삶을 살 수도 있는 거지. 


테드: 저는 여전히 천국에 대한 기대를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우리 안의 불편함을 만들기 위해서 계속 디자인을 해 놨을 뿐 진짜 다 살 수 있는 1%의 가능성은 계속 있는 거 아닌가? 어쩌면 '사회 안에 있는 불순분자와 함께 살아가는 것 자체도 사회다'라는 그림일 수도 있잖아요. 언제나 불순분자를 다 솎아내지 않잖아. 사회 속엔 언제나 이상한 사람들이 있잖아. 난 그래서 아직 천국에 대한 꿈을 버릴 수 없어. 


그동안 여러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보며 피로감을 느꼈던 이유를 이 프로그램을 보며 깨달은 것 같다. 대부분의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는 유능한 개인을 보며, 혹은 개인의 비약적인 성장을 보며 환호하게 된다. 아무리 생존을 위해 팀을 이루어 살아남는다고 해도 결국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것은 최후의 1인뿐이다. 그 과정에 어떤 책략이나 배신, 폭력이 있더라도 마지막 승리한 사람만이 영광을 차지하고 상금을 거머쥐게 된다. 


하지만 <사상검증구역 : 더 커뮤니티>에서는 유능한 개인의 승리보다 전체의 안녕과 행복을 바라는 것이 더 인간다운 행위라는 것을 매 회차마다 증명해내고 있다. 나는 '나'라는 배경에서 벗어난다면 가냘픈 존재에 불과하며, 그래서 나는 나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존재한다는 것을, 그래서 우리에게는 내가 어떠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서로 기댈 수 있는 건강한 커뮤니티가 꼭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또한 나는 얼마나 편견에 갇혀 있던 사람이었는지. 누구보다 폭력적이고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알고 보니 가장 개방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이었으며, 어떠한 의견에도 수용적인 자세를 취하던 사람이 상황에 따라서는 가장 위선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었다. 인간이란 생각보다 어떠한 틀 안에 규정되지 않는 다채로운 존재였다. 그래서 다잡아 본다. 어떠한 계층이나 사상에 구애되지 않고, 상대방에게 언제나 열린 마음을 가지고 진실한 태도로 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어렵지만 꾸준히 실천해보려 한다. 나 또한 그 혹은 그녀처럼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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