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세 벌의 옷을 떠나보냈다. 작년 11월, 겨울을 앞두고 꺼냈다가 지금까지 한 번도 입지 않은 니트다. 지금까지 두 달 동안 안 입었는데 앞으로의 두 달은 입을까? 그럴 것 같지 않았다. 사실 이 옷은 작년에도 거의 손대지 않았다. 5년 전 즈음의 나라면 자주 꺼내 입었을 옷이지만 그때의 나는 이미 지나고 없다. 며칠을 고민하다 오늘 드디어 작별했다.
2024년 나의 새해 다짐은 '비우기'이다. 시작은 안락의자부터였다. 혼삶을 시작할 때부터 안락의자는 나의 로망이었다. 흔들거리는 의자에 앉아 다리를 걸쳐 놓고 나만의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것, 생각만 해도 낭만적이지 않은가. 처음 몇 년 간은 의자에 앉아 깜빡 잠이 들 정도로 편안하고 만족스럽게 잘 사용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의자 바닥이 주저앉기 시작했고 이젠 의자에 앉는 게 더 이상 편하지 않았다. 조금만 앉아 있어도 척추가 마디마디 틀어지는 느낌마저 들었다. 엉덩이에 방석 몇 개를 덧대어 애써 푹신하게 만들어 보아도 이미 무너진 균형은 바로잡을 수 없었다.
4년이 지난 어느 날, 의자를 보며 문득 결심했다. "오늘은 꼭 버릴 거야!" 생각해 보면 작년 한 해 동안 거의 앉아보지도 않은 채 자리만 차지하고 있었다. 당근에 팔아보려고 해도 군데군데 벗겨지고 낡아 나조차도 앉기를 거부하는 마당에 누가 가져갈까 싶어서 깔끔하게 폐기물로 처리하기로 했다. 의자 관절을 지탱하던 나사를 몇 개 풀어내고 보니 나무 더미만 한 짐으로 쌓여 있었다. 내가 저걸 떠 앉고 있었구나. 버리러 가는 길은 무거웠지만 집에 올 때는 가뿐했다. 집이 한 평은 넓어 보였다.
공간이 차지하는 값은 얼마나 될까. 예전에 어떤 영상에서, 스탠드 에어컨이 차지하는 평수를 계산해 보면 천장형 에어컨이 훨씬 싸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혼자 살기에 완벽한 집 [출처: 유튜브 '자취남']
천장형 에어컨을 원래는 스탠드로 하고 싶었거든요. 평수 대비 얼마인지 계산해 보고 거기다 에어컨이 잡아먹는 평수를 생각해 봐요. 그걸 계산해 보니까 천장형 에어컨이 더 저렴해요.
그렇다면 내 옷이 차지하는 값은 얼마나 될까. 수납침대 한 칸을 가득 메우고도 옷장 세 칸을 잡아먹는 내 옷 무덤들. 한 평 남짓한 옷장을 차지하는 겨울 옷 중에서 실제로 입는 건 어느 정도나 될까. 손이 많이 가는 것은 10개도 채 되지 않았다. 나머지는 격식을 차릴 때나 기분을 낼 때 입겠다며 모아놓은 옷들이다. 집이 좁은 게 아니라 짐이 많은 거였다.
옷을 비우는 일은 계절이 바뀔 때 해야 하지만 이번에는 겨울이 채 지나가기도 전에 정리하기로 했다. 옷장을 열 때마다 마음의 짐인 것처럼 가슴에 묵직하게 얹힌 기분이랄까. 미처 하지 못한 겨울방학 숙제인 것 같았다. 언젠가는 입지 않을까 싶어서 남겨 두었던 옷들을 꺼내어 마지막으로 입어 보았다. 역시나 손이 잘 가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어느 것은 너무 부해 보였고, 어느 것은 목을 죄어 답답했다. 이제 이런 종류의 옷은 그만 사야지. 미련 없이 현관 앞에 내어 두었다.
작년은 나에게 괴로웠던 한 해였다. 낯선 환경과 사람들을 만났고, 나 자신을 잃고 다른 이의 시선과 말에 너무 많이 좌지우지되며 살았다. 지금 돌이켜 보면 별 거 아니었는데도 그때의 나는 압박감에 시달려 스스로를 괴롭혔다. 모두가 날 비난한다는 생각에 사람들을 등지고 내면세계로만 깊이 파고들었다. 자연히 시야는 점점 좁아졌고 나는 헤어날 길 없이 심연으로 가라앉았다.
그러다가 다른 환경에서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서 내가 틀린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나는 조금씩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우울감에 젖어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하는 것에는 한 가지 척도가 있다. '나 스스로를 얼마나 보살피는가.' 우울함이 극에 달했을 때의 나는 먹지도 씻지도 않은 채 하루 종일 바닥에 누워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나 스스로를 갉아먹고 있었지만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우울함에서 벗어날 때쯤, 나는 매일 한 끼를 건강하게 먹고 자기 전 깨끗하게 몸을 씻을 수 있었다. 아직 수면 밖으로 걸어 나올 용기는 없다. 그래도 작년보다 올해는 조금 더 나아지리라 믿는다.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았던 옷장을 보며 답답함을 느꼈던 것은 아마 내가 조금씩 정상 궤도로 진입하고 있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내 안의 독을 모두 게워내고 싶은 느낌. 거추장스럽고 불필요한 감정들을 모두 털어내고 싶다는 마음. 그것이 나를 움직였다.
환경을 위해서라면 옷을 '비우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소비'를 줄여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당분간 단 한 벌의 옷도 사지 않으려 한다. 내가 겨울 동안 입는 옷은 기껏해야 면티 2벌, 목폴라 2벌, 카디건 2벌, 바지 1벌, 치마 2벌, 패딩 2벌이 전부다. 나머지 것들은 디자인이 조금 다르다고, 색깔이 조금 다르다고 해서 사 모은 것들이다. 패션에 관심이 많고 옷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나처럼 무신경하게 다니는 사람에게 많은 옷은 굳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자리만 차지할 뿐.
내가 다니는 제로웨이스트 카페에서는 '공유 옷장'을 운영한다. 안 입는 옷을 기부하면 필요한 사람이 가져갈 수 있는 시스템. 입고 버려지는 옷들의 종착지가 쓰레기 산이라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단지 절약하고 없애는 것을 뛰어넘어 최소한의 자원을 필요한 사람들이 나눠 가지는 순환 구조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새겨본다.
그러기 위해 중요한 것은 '내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를 고찰해 보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이느냐'가 아니라 '나 자신이 만족스러운지,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자기반성을 해보는 것. 나는 옷을 버리며 남에게 좌지우지되지 않는, 꼿꼿한 삶을 살고 싶다고 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