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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이한 Aug 16. 2024

나를 죽이지 못한 고통

상담 일지⑤ 생각을 전환하다

마지막 집단 상담의 주제는 '나의 원동력'이었다. 나는 분노가 삶의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상담을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나의 분노는 치료의 대상이었지만 이제는 내 삶을 이끌어 가는 에너지였다. 과거에도 지금도 그랬듯이 나는 앞으로도 부당하고 불공평한 환경에 자주 화가 날 것이다. 그런 감정을 없앨 수는 없다. 다만 분노에 먹히지 않고 분노를 길들이는 법은 앞으로 배워나가야 할 숙제다.


"이한 씨처럼 부당한 에 앞장서는 사람이 좋아요. 저는 그렇게 못하거든요."

"자기감정을 용기 있게 말하는 걸 보고 나도 배우고 싶었어요."

"이한 씨가 친절한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어요."

"이한 씨가 해준 말이 제겐 선물 같았어요."


마지막 자리여서 그랬을까. 사람들은 저마다 속에 품고 있던 말을 쏟아냈다. 사람들이 나를 비난하지 않을까 두려워했던 감정은 내가 만들어 낸 허상이었다. 사람들의 마음을 제대로 읽지 못하면서 나는 그들의 마음을 함부로 짐작하고 있었다.


"직장을 옮기고 제가 느낀 감정은 공포심이었어요. 지금까지 문제없다고 느꼈던 제 사회적 스킬이 통하지 않는 곳에 오자 두려워졌어요.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겠고 내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것 같지도 않고 오히려 왜 참견하냐는 식이었죠. 직장 동료 이상의 친구를 만들어 왔던 제게는 그게 충격이었어요. 직장은 어디까지나 직장일 뿐인데, 어느 곳에서나 친구를 만들려고 했던 것이 욕심이었죠."


집단 상담을 통해 얻은 것은 많다.


1. 판단이나 평가를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상대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2. 내가 느끼는 공포나 두려움은 상대방 때문이 아니라 상대방을 보는 그렇게 보는 나의 시선 때문이라는 것. 부정적인 감정을 상대에게 투사하면 상대가 부정적으로 보이며, 긍정적인 감정을 상대에게 투사하면 상대방도 나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된다는 것.   

3. 수동적으로 행동하면 눈치를 보는 것이지만 주도적으로 행동하면 배려가 될 수 있다는 것. 

4.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내가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가장 큰 수확은 집단 상담을 통해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며 함께 성장했다는 것이었다.




"얼굴이 무척 좋아 보여요."


일주일 만에 만난 개인 상담사는 나의 변화를 놀라워했다. 나는 그 사이 만났던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어렸을 적부터 "넌 좀 특이해.", "성격을 좀 죽여.", "나대지 마."라는 말을 듣고 자라서 항상 내 성격에 문제가 있고 고쳐야 한다고만 생각했는데, 나 또한 정상 범주에 있었다는 것을 알고 마음이 편해졌다고 털어놓자 상담사는 무척 반가워했다.


"그동안 고생이 많았겠네요. 정말 많이 노력한 게 느껴져요."

"네, 맞아요. 저 정말, 진짜 노력했어요."


상담의 주제는 나의 공포심에서 분노로 넘어갔다. 남들은 다 참고 넘어가는 것도 나는 자주 분노하게 된다고 말하며 직장에서 겪었던 부당한 사건들을 털어놓았다.


"다른 사람들은 그 상황에서 왜 다들 참고 있을까요?"

"굳이 끼어들고 싶지 않기도 할 거고, 자기에게 피해가 올 수도 있으니까요."

"맞아요. 제가 걱정하는 것은, 이한 씨가 계약직이기 때문에 똑같은 말을 하더라도 부당한 일에 더 노출될 가능성이 있거든요."

"저도 그렇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으니 나라도 제대로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괜한 참견이었지만요."

"이한 씨가 지금 가지고 있는 생각이 옳다 그르다를 떠나서, 나중에 어떤 위치에 올라갔을 때에도 생각이 변치 않았으면 좋겠어요."


조금만 더 나이를 먹으면 성질을 죽일 수 있다는데, 나는 언제쯤 이 분노가 사그라들까. 사그라드는 게 맞을까. 분노를 간직하면서도 건강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방법이 있을까.




나의 불안과 우울은 일 년 반이 넘는 시간 동안 나를 고통스럽게 했다. 조금만 더 참으면 해결되겠지, 이것만 견뎌내면 이겨낼 수 있겠지 생각하며 동굴 속에 갇혀 있었던 나를 꺼내준 것은 '상담'이었다. 상담은 병원처럼 진단명을 내려주거나 처방전을 써주지 않는다. 잘못된 인지 상태에 놓여 있는 내가 건강한 삶으로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해줄 뿐이다. 그 상황에서 내가 왜 그런 감정을 느꼈으며, 그 감정의 밑바닥에는 무엇이 깔려 있었는지 치열하게 고민하며 답을 찾아가는 것은 내담자 본인의 몫이다. 처음에는 안 그래도 힘든 사람에게 왜 자꾸 힘든 과제를 부여하는지 반발심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약이나 주사로도 해결하지 못하는 나의 심리를 해결할 수 있는 건 오직 나밖에 없었다. 상담을 시작한 지 정확히 3주 만에 나는 온전히 회복될 수 있었다.


앞으로도 나는 크고 작은 문제를 겪을 것이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는 또 치열하게 고민하고 깎여나가며 다져가는 과정을 반복할 것이다. 하지만 니체가 말했듯이,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강하게 만든다."

나는 더욱 단단해질 것이며 또 성장할 것이다. 마지막 눈 감는 날, 내가 얼마나 단단해졌을지 웃으면서 기다려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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