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로스터리의 원두만 골라서 했다. 그러니까 맛있는 것은 기본이고 유명세까지 더한 원두들. 원두 샘플을 구매하고서 같이 맛을 보았다. 내가 감히 이 원두를 탈락시키다니!!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지만, 이렇게 저렇게 해보아도 우리의 맛과는 다른 느낌이면 또 새로운 원두를 찾았다. 핫하디 핫한 로스터리들을 나와 동일시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맛있는 원두를 바꾸어가며 사용한다는 맛에 대한 자부심은 있었다.
초반부터 맛있다는 반응에 정말 기뻤다. 특히나 맛있는 ‘산미 있는 커피’를 맛보아서 즐겁다는 평이 좋았다.
봄을 지나 여름이 왔다. 주말 아침, 오픈을 맡은 친구가 급하게 전화를 했다.
“사장님, 오늘 커피가 이상해요. 아무리 조절한다고 해보아도 쓰기만 하고, 제 입맛이 오늘 이상한 걸까요? 비가 와서 습도 때문에 그런 것 같기도 한데, 모르겠어요.”
심장이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 일단 달려가야만 했다. 아이는 7살, 잠깐 티비를 보고 있을 수 있냐고 물었다. 상당히 좋아했다. 이 부분 걱정은 접어두고, 이제 집에 있는 제습기를 챙겼다. 제습기는 다른 가전보다도 이상하게 무거웠다. 운전바보인 내가 오늘 따라 더 바보 같다. 참나. 비가 와서 그냥 끌고 가는 것도 무리이고, 박스처럼 생겨서 접었다 폈다 하는 카트에 겨우 욱여넣었다. 커다란 비닐을 찾아 제습기를 덮어두고 나도 가장 큰 우산을 챙겼다.
집에서 카페까지는 딱 1KM. 바람에 자꾸 날아가는 비닐을 줍고 또 주워가며 겨우 카페에 도착했다. 제습기를 그라인더 근처에 얼른 틀어두고, 커피 맛을 봤다. 어제와는 정말 다른 맛. 그냥 묵직함이 아니라 쓰고 기분 나쁜 끝 맛이 났다. 이것이 바로 커피 배울 때 습도가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게 바로 이것이구나. 올 것이 왔다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럴 때 어떻게 하라는 배운 것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둘 다 머리가 새하얘진 상태.
비가 와서 다행히 오픈 시간에 맞춰 손님들이 오지는 않았다. 방금 친구가 내렸던 커피의 도징량, 초수 등을 체크하고 조금 더 빠르게 내리자 생각했다. 쓴 맛은 원두가 가늘게 갈아져서 길게 뽑았을 때 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었다.
우선은 그라인더의 눈금을 굵은 방향으로 세 칸 조절한다. 도징량과 추출량은 고정해 놓으면 그라인더 눈금 한 칸에 추출시간이 3초 정도의 차이 난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 한 칸 한 칸 이동하는 것보다는 조절이 필요할 때에는 과감하게 확 갔다가 조금씩 다시 미세하게 조절하는 게 낫다. 그라인더 눈금을 옮긴 후 원두를 5초 정도 버린다. 원두를 담는 도징컵에 가득 담기는 정도이다. 아까의 눈금으로 갈려 있는 원두가 그라인더 내부에 남아있기 때문에 이렇게 버려야 지금 설정한 정도로 다음 추출 때 바로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심호흡한 후, 아까와 같은 도징량으로 원두를 포터필터에 담고 정성스럽게 정리한 후 추출을 시작한다. ‘맛있게 제발 맛있게 한 번에 가자!’ 동시에 직원 친구는 빠르게 아이스 아메리카노 잔을 새롭게 준비한다. 우리는 새 잔에, 새 빨대로 계속 맛을 보았다. 아깝기도 했지만, 그래야 보다 방해받지 않는 깨끗한 맛을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어쩌다 아침에 이런 상황이 생기면 한 줄로 길게 늘어 세워놓기도 했다.
너무 빠르다! 부정적인 맛과 찌르는 듯한 산미가 동시에 튀어나왔다. 으악! 다시, 그라인더를 다시 두 칸 조인다. 그리고 이번에도 5초 정도 원두를 버린다. 그리고 도징량을 조금 줄이기로 결정했다. 직원이 내렸던 것보다는 원두를 적게 담고, 조금 더 빠르게 내려 가볍게 만드는 것이다.
원두에 따라 18g에서 21g 정도까지 아메리카노 한 잔에 담는 원두의 양-도징량은 달랐다. 하지만 이렇게 같은 원두를 조금씩 조절할 때에는 판단이 필요하다. 얼추 마지막으로 좋은 맛에 다다랐을 때에는 부족한 맛을 채우기 위해 0.2~0.3g 정도만 가감하지만, 지금의 상황에서는 조금 더 훅훅 왔다 갔다 한다. 방향성을 보는 것이다. 다행히 이번에는 얼추 맛이 좀 나아졌다.
우리는 어제와 같은 커피, 우리가 알던 커피라고 생각하지 않고, 제로베이스로 그냥 마셨을 때 어떤 뉘앙스인지에 대해 집중하기로 했다. 이제는 약간의 조정만이 남은 상황이다. 다행히 그때에 첫 손님이 들어오셨다. 직원이 주문을 받으러 가고, 나는 마지막을 향해 달린다. 손님의 아메리카노가 나가기 전에 빠르게 내려 둘이서 맛을 본 후 이제야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바로 손님의 커피를 다시 만든다.
나중에는 작은 제습제도 사서 그라인더의 뚜껑에 붙여 두었다. 실제로 역할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조금이라도 낫겠지 하는 안도감이랄까. 빈 카트만 끌고 빠르게 집에 돌아오니 아이는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다리가 풀려 소파에 주저앉았다. 나중에는 여름, 겨울 등 습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에도 유연하게 대처했지만, 그날 처음 공격받았던 습한 날은 잊을 수 없다.
습도가 높아지면 원두가 수분을 흡수한다. 그래서 저항이 커지게 되고 추출이 느려져 과다 추출로 이어지게 된다. 쓴맛이 나기 쉽기 때문에 조금 빠르게 내리는 것이 좋다. 습도가 낮아지는 겨울에는 또 커피는 딴판이 된다. 원두가 건조해지기 때문에 추출이 굉장히 빨라지고 원두도 파사삭하게 갈려지는 느낌이 있다. 이럴 때에는 원두를 조금 더 가늘게 갈아지도록 그라인더를 조이고 추출을 조금 더 느리게 잡는 것이다.
이것이 이론적인 내용이지만, 바리스타는 이리저리 해 본 후 본인의 경험치를 쌓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내가 내리는 이 원두(간혹 로스터리에서 블렌드의 구성 원두를 조절하거나 변경하면 또 새로운 원두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에 대해 잘 아는 것이 중요하다. 가스가 빠지는 디개싱은 며칠 정도가 지나게 되면 딱 좋은지, 로스팅 날짜를 항상 기록해야 한다. 그리고 어느 정도를 담아 몇 초에 추출이 완성되도록 하는지 내 입으로 계속 맛보고 느껴야 한다.
에스프레소를 30g만 추출해야 좋은 향미만 담을 수 있는지, 아니면 45g까지 길게 뽑아야 충분한 단맛까지 뽑아지는지는 이론으로는 알 수 없다. 해보아야 안다. 물론 내가 로스팅한 원두를 계속 동일하게 사용 중이라면 나와는 상황이 다를 수도 있겠으나, 이렇게 저렇게 해보아야 최고의 맛을 향하여 조금이나마 가까워진다고 생각한다. 절대 한번 내려보고 ‘됐다!’ 그런 운 좋은 날은 몇 없다.
그리고 출근하자마자 원두 추출에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하기 때문에 실내를 적정 온도로 맞춰주고 그라인더와 머신도 몇 번씩 작동해 주어야 한다. 그제야 이제 준비 좀 되었다. 제대로 내려보자!라는 시점이 되는 것이다. 그라인더를 켜자마자, 머신에 물도 흘리지 않고 바로 추출을 시작하고 맛을 보게 되는 것은 달구어지지 않은 프라이팬에 고기를 올리는 격이다. 원두든 냉난방기든 아깝다고 생각하지 말고 반드시 최상의 조건을 만들어 준 후 추출을 시작해야 한다.
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