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학교 시절을 라디오 키즈로 보낸 덕분에 항상 ‘좋아하는 음악 리스트’는 가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카페에서 틀고 싶은 음악과는 조금 달랐다. 가사가 두드러지게 들리지 않으며 대화나 독서, 작업에
방해를 주지 않는 음악. 그래서 카페를 준비하기 시작하면서 새롭게 리스트를 구성하기로 했다. 남편은 ‘대세는 스포티파이’라며 음악 스트리밍 어플도 지정해 주었다. 당시에 나는 스포티파이를 잘 모르기도 했고, 하나하나 다 지정해 주는 남편에 대한 반감으로 그냥 쓰던 네이버뮤직을 쓰겠다고 통보했으나 거절당했다.
우선 내가 가지고 있던 리스트에서 소위 카페에서 틀 만한 음악을 추리기 시작했다. 리스트에서 하나하나 틀어보며 넣고 빼기를 반복했다. 좋아하는 음악만을 모아뒀으니 그 과정은 정말 즐거웠다. 그런데 생각보다 수가 적었다. 요즘엔 더 짧기도 하지만 한 곡당 4분으로 잡았을 때 2시간은 틀 수 있어야 나도 손님도 지겹지 않게 느낄 것 같았다. 그래서 어플이 추천해 주는 음악을 계속해서 들으며 리스트를 늘려 나갔고, 좋아하는 음악가와 연관되어 있는 곡, 음악가의 음악들도 죄다 듣기 시작했다. 길을 가면서도, 티비를 보면서도 좋은 음악이 나오면 어플을 이용해 지금 이 곡을 검색했다. ‘이 정도면 분위기 멋진 카페가 될 테지. 후후’ 음악에 대한 자신감은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좋은 음질을 위해 뱅앤올룹슨의 베오사운드1을 거금을 들여 구매했다. 역시나 저음이 멋지고 공간을 꽉 채우는 소리가 참 좋았다.
그런데 매장 오픈 후, 생각보다 나의 리스트만 틀기에는 단골손님 비중이 컸으며, 오랜 시간 노트북 작업하는 손님도 많았다. 그리고 나도 그 리스트만 듣는 것은 점점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또 이 노래? 이 카페는 맨날 이 노래만 틀더라?’ 혹은 이런 분위기의 노래만 나오는 카페라고 규정되는 것이 싫었다.
그래서 다른 카페의 리스트를 찾아 틀기 시작했다. 우선 가장 처음에는 남편의 추천으로 ‘블루보틀커피재팬’ 리스트를 틀었다. 수십 개의 플레이리스트가 갖추어져 있었는데, 다른 카페에서는 잘 들어보지 못했던 그런 음악들도 많이 담겨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쉽게 분위기, 계절, 시간, 날씨 등에 따라 찾아 틀 수 있어서 내가 선망하던 라디오 디제이가 된 기분이었다.
그리고 우리 카페와 컨셉이 비슷하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인 이상순 씨의 카페 ‘롱플레이’ 플레이 리스트를 틀었다. 롱플레이 플레이리스트에서 쾌감이 느껴질 때에는 오히려 카페에서 흔히 나오지 않을 법한 우리나라의 옛 노래, 김현철, 윤상, 어떤 날, 그리고 80년대의 음악이 흘러나올 때였다. 한국의 시티팝을 틀 때에 오는 힙함을 어린 직원들도 좋아했다.
그리고 한가할 때에는 로우키 커피의 플레이 리스트를 틀었다.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카페처럼 우리도 많은 사랑을 받기를 원했다. 로우키 음악을 틀면 로우키처럼 되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감! 로우키 음악 리스트는 그리 많지 않아서 정말 한산해서 지루할 때 아껴가며 틀었다.
돌려가며 틀던 모든 음악들이 지겨워질 때쯤 폰트커피의 플레이리스트를 찾았다. ‘좋은 품질의 커피를 편안하게’라는 문구를 내건 폰트커피의 느낌처럼 조금은 차분하면서도 멋쟁이 느낌이 가득한 음악이 들어있었다. 이 음악을 틀 때면 또 이 공간이 새롭게 느껴졌다.
손님이 가득 차 있는데, 또 이야기를 크게 나누는 손님이 가득하다면. 날씨가 좋은 경우 살짝 문을 열어둔다. 그러면 이야기 소리는 밖으로 흘러나간다. 하지만 여름이나 겨울에는 쉽게 문을 열어둘 수 없다. 그럴 때에는 리사 오노나 나오미&고로의 음악을 틀었다. 오히려 엄청 조용하고 속삭이는 음악이 흘러나오게 되면 사람들의 톤도 조금 낮아진다.
음악이 없는 카페도 있다.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한 카페도 있다. K-POP만 나오거나, 피아노 연주곡만 흘러나오는 카페도 있다. 어떤 종류의 음악이든 소리이든 카페의 공간을 채우게 된다. 손님들이 만들어낸 다양한 소리의 배경으로 깔리는 음악은 이 공간을 만든 사람만이 틀 수 있다. 어쩌면 카페 사장의 특권이라고 할 수 있다.
운영 마지막 즈음에는 정말 내 마음대로 음악을 틀어보자 생각했다. 마지막을 향해 가면서 내 마음도 조금 복잡했는데, 그것을 조금 해소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그래서 그냥 좋아하는 음악을 틀었다. 평소에는 절대 틀지 않았던 김동률, 토이, 페퍼톤스의 리스트를 하루 종일 틀기도 하고, 하루는 남편이 좋아하는 신해철 음악을 종일 틀었다. 또 하루는 유재하 님의 음악을 틀고 있었다. 자주 오시던 50대 남성 분이 들어오던 때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이 흘러나왔다.
“아니 사장님, 이게 무슨 일이에요? 이 음악이 여기서 흘러나오다니! 크으… 눈물이 나네요.”
“하하하 오늘은 제 마음대로 노래예요.”
손님은 커피를 드시면서 아내분께 전화하셨고, 아내분이 오시면서
“아니 무슨 감성에 젖었다고 오라고 하는 거야?”
“이 주옥같은 노래들을 들어봐…”
그 주에는 그래서 40대, 50대 이상의 손님 감성을 후벼 파는 이문세라던가 그런 느낌의 노래를 틀었다. 옛노래를 틀면 말수는 줄어들고 창 밖을 바라보며 옛 추억에 잠기는 분들이 많았다. 아 정말 음악의 힘이 크구나 싶었다.
바쁜 시간이 끝나고 같이 일하던 직원 친구는 쉬는 시간이 되어 밥을 먹으러 갔다. 때마침 이승환 노래가 나왔다. 또 옛 노래구먼, 속으로 따라 부르고 있는데 손님이 가까이 다가와
“사장님, 왜 사장님만 혼자 계시면 옛날 노래가 나와요? 직접 트시는 거예요?”
“헉! 아녜요. 어플이 알아서 트는 건데, 눈이 달렸나 갑자기 옛 노래가 나오네요. 얘가 제 나이를 아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