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를 준비하며 했던 엄청난 고민들. 그중에서도 꽤나 골치가 아팠던 것은 바로 용량에 따른 잔 선택이다. 그러니까 본격적인 맛보기 이전, 내가 주문한 메뉴를 받아 들어 즉각적으로 마주하는 것이 바로 잔.
매장에서 마시는 유리잔과 테이크 아웃 잔 두 종류를 함께 고려해야 했다. 우리가 정한 용량이 바로 잔 사이즈가 되는 것인데 우리는 묽은 커피는 원하지 않았다. 그리고 안에서 마시거나 밖에서 마시거나 심지어는 배달까지도 같은 농도로 즐길 수 있기를 원했다. 대부분의 매장이 그렇지만 매장과 같은 양이 되도록 테이크 아웃컵을 주문했다. 너무 큰 컵은 농도를 맞추는 것도 문제였고, 멋이 없다고 생각했다. 운영하면서 테이크 아웃 아이스잔 만이라도 조금 더 얼음 채워 크게 할 걸 그랬다고 내내 후회하기는 했지만.
처음 주문한 원두는 모모스커피의 에스쇼콜라였다. 이 맛있는 커피로 신나게 농도를 잡아보았다. 내가 원하는 커피의 농도를 잡기 위해 에스프레소를 길게, 또 짧게도 추출해 보았다. 라떼는 우유에 밀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 아메리카노보다 1~2g의 원두를 더 담았고, 진한 맛을 위해 추출은 에스프레소가 흐물거리기 전에 짧게 끊었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에스프레소 36g + 얼음 + 물 180g, 핫 아메리카노는 89도의 물 230g. 아이스라떼는 에스프레소 32g + 얼음 + 우유 160g으로 잡았다. 추출도 맞춰보고, 5g씩 물과 우유를 가감해 가며 맛을 본 후에 잡은 레시피였다. 물과 우유 양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잔이 클 필요는 없었다.
서울 시내의 어디 힙한 카페의 테이크아웃 잔이 그렇듯이, 우리도 핫은 10oz, 아이스는 14oz로 결정했다. 1oz는 28.349…g 정도인데 쉽게 30g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핫 아메리카노나 라떼는 300g, 아이스 메뉴는 420g 정도의 컵이라고 보면 되는데 너무 꽉 채워 담을 수는 없으니 그것보다는 실제 음료 양은 적다. 수치로 이야기하면 감이 잘 오지 않는데, 테이크아웃 잔 모두 내 엄지와 검지를 벌린 정도의 높이, 10cm 안팎이다. 그러니까 처음 음료를 받아 들면 ‘에게?’ 하는 정도로 작은 사이즈.
그리고 리드. 음료 뚜껑에서 또 힙을 논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돔형 리드, 위가 둥그런 모양의 리드는 말고, 핫 아이스 모두 평편한 뚜껑으로 주문했다. 그러니 양은 더! 적어 보인다. 야호.
우리는 컵홀더를 제작하는 대신 핫잔과 동일한 10oz 컵을 제작했다. 우리의 시그니처 색상과 로고가 간단히 들어있는 종이컵. 이 종이컵 안에 흰색 10oz 컵을 끼우면 핫 음료 잔이 되고, 14oz짜리 플라스틱 컵을 끼우면 아이스 음료 잔이 준비되는 것이다. 조금 더 작은 잔으로 제작했다면 14oz 아이스용 플라스틱 컵이 쏙 들어가지 못하고 좀 튀어나와서 양이 많아 보인다. 그렇게 하는 카페도 많았지만 ‘양이 적어도 맛있게 마시고 말자!’ 뭐 이런 막무가내 정신으로 돌진하기로 했다.
나는 멋들어져 보이려고, 그리고 적절한 농도로 딱 맞추려 14oz로 아이스컵을 샀지만, 사실 16oz를 구매했어도 됐다고 본다. 그러니까 얼음으로 나머지를 가득 채우는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몇몇 손님들의 ‘맛있지만 양이 너무 적다.’라는 귀여운 투정도 다 해소하지 않았을까?
컵 사이즈는 상권이나 주요 고객층에 따라 보통 달라진다. 오피스 상권에서는 직장인들이 벌컥벌컥 마시며 목 타는 심정을 달래야 하기 때문에 조금 더 큰 컵을 선호한다. 그리고 매장의 품질을 강조하고 싶은 곳에서는 그보다 조금 더 작은 컵을 준비한다. 많은 매장에서는 핫 13oz, 아이스 16oz 세트로 사용하고, 우리처럼 조금 더 농도를 잡고 싶은 곳들은 핫 10oz, 아이스 13oz – 14oz 정도라고 보면 된다. 요즘에는 아이스를 16oz 이상의 큰 컵으로 하는 곳들도 많은데, 그렇게 되면 굉장히 연해지거나 해서 맛이 덜하고, 맛있게 하려면 커피를 아주 진하게 내린다거나 샷을 추가해야 등 판매에 있어서도 쉽지 않다.
이제 매장 잔이 남았다. 매장의 잔은 그 카페의 분위기나 콘셉트와도 연결되는 것이기 때문에 아주 신중히 골라야 한다. 일단 나는 아이스 잔은 낮은 잔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팔을 휘두르다가 혹은 쟁반에 올려 서빙하다가 쏟을 것이 염려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의 아이스 아메리카노, 아이스 브루잉 잔은 굉장히 넓고 낮은 유리잔으로 결정했다. 아메리카노 핫 머스는 남편의 고집과 추천으로 킨토에서 구매했다. 우리는 브루잉, 산미/고소 원두 세 종류를 구분하기 위해 세 가지 색상의 머그를 준비했다.
그리고 또 중요한 핫 라떼잔. 사람들은 큰 잔을 좋아한다. 양이 많으면 즐거움이 더 커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라떼만큼은 더더욱 밍밍하게 만들 수 없었다. 최종 선택으로 260ml짜리의 안캅의 라지카푸치노 잔으로 구매했다. 라떼는 특히 입술에 닿는 느낌이 중요하기 때문에 잔의 두께가 너무 얇아도 안되며, 샷과 스팀우유의 적절한 조화, 그리고 라떼아트가 예쁘게 그려지는지 등 고려할 사항이 많았다.
결정하기 전에는 너무 어려워서 좋아 보이는 브랜드의 적절해 보이는 사이즈 잔을 하나씩 주문했다. 그리고 우리가 사용할 원두와 ‘매일우유’의 조합으로 어떤 사이즈가 가장 맛있는지 계속 연습해 보았다. 라떼 잔도 쨍하게 하얗고 각진 제품을 미리 점찍어 두었으나 내 실력으로 예쁜 라떼아트를 그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여러 주문 끝에 그리 크지 않은 잔으로 결정.
아이스 라떼 잔도 우리의 레시피 + 얼음 대여섯 개에 딱 담기는 사이즈로 주문했다. 라떼잔은 깨끗하게 씻고 식기세척기로 돌려도 우유 자국이 남는다거나, 우유 냄새가 밸 수 있어서 다른 음료와는 꼭 구분해서 쓰기로 했다. 그런데 아차차, 라떼를 사랑하는 많은 여성분들의 질타로 아이스라떼 잔은 조금 더 큰 사이즈로 다시 주문했다. 그리고 얼음으로 더 채웠다. 그 이후로는 양이 적다는 말을 매장 잔에서는 들은 적이 없네.
잔이야말로 그 카페 사장의 여러 고민과 생각이 담겨있고 심지어는 성격과 성향까지 표현하는 것 아닐까 생각한다. 이제는 내가 손님으로 다른 카페에 갔을 때, 그러니까 커피가 필요할 때. 너무 작은 잔으로 서빙된다면 속으로 약간 돈이 아깝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러다가도 또 너무 큰 컵을 만나면 덜컥 ‘앗, 맛이 없겠다.’라는 걱정을 지레 하기도 한다. 나도 여느 손님과 다르지 않게 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