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난 이래로 자진하여 어디 나서거나 해본 적이 없다. 학창 시절 이상하게 반장은 자주 했었지만, 발표 시간도 학예회 시간도 나에게는 너무나 긴장되고 도망치고 싶은 순간들. 심지어는 소풍이나 수학여행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전혀 기대되지 않고, 그저 이 순간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던 어린이.
그 어린이는 그대로 자랐다. 아이 어린이집 엄마들과 등하원 때 자주 마주치게 되면 엄마들끼리의 모임을 갖게 된다. 하지만 그것도 너무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 반갑게 인사하러 오는 친구 어머니를 멀찍이서 보고 후다닥 인사한 뒤 도망가 버린 적이 많았다.
가게를 한다고 해서 이 성격이 변할 리가 없다. 처음 개업떡을 돌릴 때에도 주변 가게에 들어가기 전에 얼마나 심호흡하며 인사 멘트를 연습했는지 모른다. 화장실을 갈 때 마주치는 사장님들과 마지막까지 서먹했던 것은 나의 업보다.
그런 나에게 온 한줄기 빛이 있다. SCA 수업을 듣기 전에 바리스타 자격증 과정을 근처에 있는 카페에서 배웠다. 그 선생님께 혹시 함께 일할 적당한 분이 있을지 여쭈었다. 선생님은 원하는 성별과 연령대를 물으셨고, 크게 제한된 조건은 없었지만 어떤 분이 떠오른다며 추천해 주셨다.
귀여운 그 친구는 무척이나 밝았고, 커피를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탁월한 혀를 지니고 있었다. 우리는 오픈 한 달 전 몇 시간씩 함께 연습했다. 누가 내리더라도 우리가 원하는 같은 맛을 제공할 수 있도록 루틴을 만들었다.
나는 수줍은 사장, 그 친구는 아르바이트 경험이 많은 밝은 직원. 하지만 내적인 생각이나 취향은 비슷했기에 금세 친해졌다. 아르바이트 경험도 많지 않던 나는 손님을 대하는 법을 그 친구를 통해 배웠다. 밝게 인사하며 손님을 맞았고 늘 환한 표정이었던 점. 나 혼자서 일할 때 보다도 그 친구가 출근하면 더 신이 났고 즐거웠다.
점점 시간이 쌓이면서 나도 좀 능글맞아진 부분도 있겠지만, 여전히 매일매일 뚝딱거렸다.
“어머, 여기가 라떼 맛집 이라면서요?”라고 주변 추천을 받고 방문하는 손님들이 많았다. 그러면 나는 얼어버린다. “아, 아닙니다. 요즘에는 다 맛이 있죠. 허허” 로봇 같이 대답하고 마는 것이다. 그 손님은 재수가 없다고 생각했을지 모르겠지만, 내 입에서는 절대로 “어머~ 그럼요 저희 좋은 원두 쓰고 커피도 엄청 맛있어요!” 이런 멘트는 나오지 않았다. 스몰톡에서 단골 형성이 시작되는 건데 참으로 쉽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손님들은 비슷한 성향의 사람을 선호하게 되는 것 같다. 밝은 여성분들이나 젊고 활기찬 분들은 귀여운 직원을 좋아했고, 근무시간에 맞춰 방문하기도 했다. 의외로 나를 좋아해 주시는 분들도 많았다. 조금 더 차분하고 내면의 아름다움을 가진 멋쟁이들! 후후.
전 직장에서 교수님들의 이야기에 맞장구를 쳐드리는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고객님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잘했던 것 같다.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내가 억지로 텐션을 높이지 않았던 것은, 못했던 것도 있지만 지치지 않기 위해서다. 그리고 진심으로 늘 대하고 싶어서였다.
결국 가게의 단골은 운영하는 사람들을 따라가게 되는 것 같다. 나와는 다른 온도를 맞추는 것은 회사나 사회에서도 충분하다. 카페는 조금 휴식을 가지고 싶은 곳. 그래서 나와 맞는 성향의 사장을 찾아가는 것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