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인찍기는 정서적 혼란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진짜 문제를 밝혀내지 못하게 하고,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없게 하며, 적절한 해결책을 생각할 수도 없게 한다.
데이비드 번스 - Feeling Good 107p
자기 비하에 빠져 '쓰레기', '이기적인 놈', '최악' 등의 부정적 낙인으로 나를 규정하고 싶은 유혹이 들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 낙인들이 실제로 의미하는 게 무엇인지 따져야 한다. 귀찮음을 무릅쓰고 꼬치꼬치 캐물어야 한다. 그러면 내면의 주장들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일반화였는지 알 수 있다.
우울도 마찬가지로 '나는 아무짝에도 쓸모없어'식의 생각을 유발한다. 이는 '형편없고 무가치한 나를 아껴야 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자기혐오적 물음으로 이어지며 '차라리 죽는 게 낫겠어'로 끝맺는다. 이때도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자신이 쓸모없는 존재라는 자동적 사고에 저항하는 것이다. '과연 정말 그럴까? 내가 정말 아무런 가치도 없는 존재일까?' 물론, 부정적 생각은 훨씬 일리 있고 매력적으로 느껴지니 저항은 말처럼 쉽지 않다. 그러나 사람은 흐르는 존재다. 조각상처럼 굳어있지 않으며 시공간 속에서 경험하고 생각하며 변화한다. 그 어떠한 낙인도 사람을 규정할 수 없다. 낙인은 내가 만든 틀에 나를 억압할 뿐이다. 매일마다 밥을 먹는 사람이 있다고 치자. 우리 대부분은 여기에 속한다. 그럼 그 대부분을 '밥만 먹는 사람'이라며 지나치게 일반화하고 낙인찍어도 되는 걸까?
'나는 내가 한심하다고 느끼고, 실제로도 한심해요. 아니라면 왜 내가 이 모양 이 꼴이겠어요?'
자신을 '한심한 사람'이라고 낙인찍으며 이에 대한 근거로 지나친 일반화를 하고 있다. 물론 과제나 일, 연애에서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사실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알 수 있는 사실은 그러한 일에 서투른 사람이라는 거지, 한심한 사람이라는 말이 아니다. 낙인을 찍으면 안 되는 중요한 이유는 하나 더 있다. 낙인은 일어난 사건을 모호하게 뭉뚱그려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게 만든다. 반면, 서투른 사람이라는 현실에 기반한 사고는 '어느 부분에서 서툴렀을까?', '그 부분을 어떤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라는 의미 있는 물음을 던질 수 있게 한다. 이 과정을 통해, 낙인으로 인해 생긴 혼동과 절망감으로 뒤덮인 세상이 한 꺼풀씩 벗겨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괴롭고 침울한 늪에서 빠져나오는 건 쉽지 않다. 그러나 한번, 두 번 힘겹게 기어오르는 반복적 경험은 마음에 근육과 요령을 붙여 감정 소통에 능해지게끔 돕는다. 자, 이제 지표면 위로 올라섰다. 이 곳이 실제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작점이다. 잠깐, 시작점이라니. 앞으로의 여정이 너무 멀고 힘겹게 느껴지는가? 하지만 분명히 기억해야 할 점은, 우리가 가장 힘겹고 역겨운 과정을 거친 후 영광스런 시작점에 서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 겪어왔던 수모와 고통은 삶의 레이스 중에 겪을 어떠한 고난도 넘어설 수 있도록 첨예한 도구가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