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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가영 Mar 15. 2022

바다에서 만난 포켓몬들

서핑하다 만난 듀공 그리고

누구보다 많이 여러 바다에 몸을 담가보았지만 그럼에도 바다는 내가 가진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무수히 깊고, 드넓다. 바다는 실로 우리가 볼 수 없는 미생물부터 실제로 마주하면 한눈에 담기도 힘든 생물들을 모두 담고 있으며, 내가 파도를 타는 공간이자 그들이 매일을 살아가는 터전이기도 하다. 이번 글에서는 내가 서핑을 하면서 바다에서 실제로 만났던 동물 친구들을 소개해보려 한다. 이름하여 바다에서 만난 야생 포켓몬들!



1. 파리는 언제나 싫다. 해파리는 더더욱!

아무도 없는 한적한 라인업, 비단같이 고운 표면을 뽐내며 다가오는 파도들, 푸르른 하늘, 눈이 부셔 찡그릴 정도는 아닌, 구름의 그늘과 적당한 햇빛이 환상의 조화를 자랑하는 날씨. 이 완벽한 조건들 속에 단 하나의 빌런이 뾰로롱 하고 등장하는 순간 천국 같던 서핑도 갑자기 지옥으로 변한다. 바로 해파리의 등장이다.

사계절 내내 따뜻한 섬인 인도네시아 발리에서도 수온이 바뀔 때가 있다. 특히 시원한 물에서 더운 물로 바뀔 때, 따뜻한 온도를 좋아하는 해파리들이 파도와 함께 몰아친다. 눈에 잘 보이는 '대왕 해파리'라면 오히려 대비하고, 함께 라인업 하는 서퍼들과 소통하며 피할 수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좁쌀같이 아주 촘촘한 아기 해파리들이다. 그 친구들이 라인업을 장악해 온 수면에 두둥실 떠 있다면 아무리 그곳의 파도가 좋아도 모두 그 바다에서 나오게 될 것이다. 패들링 하는 팔에, 보드에 앉아있는 동안 물에 잠겨있는 다리에, 물에 빠지는 순간 얼굴에 달라붙어 우리를 따갑게 만들 테니 말이다. 고체인지 액체인지 모를 말캉한 물체에 피부가 닿는 순간 따갑고, 찌릿한 그 느낌은 수년간 서핑을 해와도 도무지 극복해낼 수가 없다. 해파리 촉수에 심하게 쏘인 서퍼들은 피부에 두드러기가 나기도 하는데,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 본인이 몸담고 있는 바다의 수온이 미지근하거나 따뜻하게 느껴진다면 해파리 친구들을 조심하세요. 그들이 쏘고 싶어서 우리를 쏘는지는 몰라도 그들과 닿는다면 물과 전기의 만남처럼 아주 짜릿할 테니까요.





2. 성게는 정말 뾰족해

서퍼들에게 인기 있는 서프 포인트에서 수많은 경쟁을 피해 좋은 파도를 따내는 방법은 두 가지이다.

첫 번째, 내가 옆에 떠있는 대다수의 서퍼들보다 서핑을 더 잘하면 된다. 파도를 잘 보고, 패들링을 잘하고, 오는 파도를 모두 완벽하게 잡아 타면 된다. 그리고 두 번째는 첫 번째에 해당되지 않는 내가 애용하는 방법인데, 두 번째는 바로 첫 번째의 서퍼들보다 부지런하게 움직이는 것이다. 여기서 부지런함은 보통 새벽 동이 트기도 전에 움직이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남들보다 좋은 파도를 선점하기 위해 부지런하게 움직이는 새벽에, 바다의 물 때가 간조(물이 다 빠진 상태)라면 파도의 경쟁력은 더 낮아진다. 파도를 타러 가기 위해 돌과 암초로 되어 있는 리프 위를 두발로 걸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바다가 어느 정도 물이 차 있는 상태에서는 당연히 발이 땅에 닿지 않으니 패들링을 해서 파도를 타러 가지만, 그 모든 물이 빠져 발목 깊이로 변했다면 어떻게 할까. 서프보드를 손에 든 채로 양발로 걸어가는 수밖에 없다.

바다 아래의 땅은 모래인 지형도 있지만 서퍼들이 좋아하는 포인트 대부분은 돌과 암초로 이루어져 있다. (*바닥이 모래로 이루어진 포인트는 지형이 불규칙하게 바뀌는 반면 리프 포인트는 바닥이 단단하여 비교적 파도가 고정적으로 깨져 파도 읽기가 수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암초 사이에는 검은 가시를 동서남북으로 펼치고 있는 성게가 살아 숨 쉬고 있다. 내 발목만 잠길 정도의 찰랑이는 수면을 바라보며 절로 지압이 되는 암초와 돌을 밟고 가는 것은 꽤나 고통스러운 일인데 그럼에도 성게를 밟는 것에는 비할 바가 못된다. 이 놈의 성게는 지뢰탐지처럼 미리 감지라도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피할 수 있는 방법은 두 눈을 부릅뜨고 발을 사뿐히 내딛는 방법뿐이다. 그러다 운이 나쁘게 지뢰를, 아니 성게를 밟는다면,

가시가 발을 파고들며 피가 납니다. 무진장 아픕니다. 일찍 일어나서 남들보다 먼저, 부지런하게 서핑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는데 머리가 바닷물에 젖기도 전에 성게를 밟아 억울합니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왔는데 자연에게 입뺀 당했다고 할 수도 있겠죠? 그래서 밟았을 때는 고통을 참고 서핑을 하거나 돌아가 치료를 하는 두 가지 옵션이 있으니 가시의 관통 깊이에 따라 본인이 판단을 해주세요. 죽진 않으니 괜찮아요. 그리고 한번 밟으면 두 번은 안 밟더라고요. 아픈 기억은 오래가기에 다음 성게를 밟기도 전에 피할 수 있는 수준이 될테니까요. 리프를 밟으며 입수하는 모든 새벽 서퍼들 파이팅.





3. K-멸치 떼를 만나다.

포항으로 서핑을  날이었다. 파도가 치는 여러   가장 사람이 없는 곳을 찾아 입수했고, 같이  일행들만 라인업에 떠있을 만큼 한적하고 파도도 무척이 좋았다. 그런데 조류 때문에 자연스레 떠내려가 처음에 위치한 자리보다 훨씬 벗어나 방파제 쪽으로 붙으니 어느 순간부터 귓가에 멸치  춤추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는 거다. 소리로 멸치의 존재를 눈치채고, 양팔을 젓는데 손가락 사이에서 멸치들이 - - 튀어 오르고 있었다. 서프보드 위에도 올라와 팔딱거리는 녀석들과 눈이 마주쳤는데 다들  먹고 지냈는지 가지고 있는 몸통들이 제법 실했다. 멸치 몸매 감상도 잠시, 내가 있는 바다가   멸치반을 넘어 멸치의 농도가  짙어지고 있었다. 이러다간 귓구멍 아님 콧구멍으로도 멸치가 들어올   있겠다 싶어  구역을 벗어나려고 애썼다. 그리고 아주 잠시 피워 올랐던 인간의 욕망으로는 얘네 먹을  있을까,  움큼 챙겨가면 돈이 될까 하는 생각도 했는데 멸치를 담아갈 호주머니조차 없었다. 그래서 입고 있는 웨트슈트 안에 넣어서 가져가 볼까도 했는데 멸치의 몸은 강철이 아니니  웨트슈트 안에서 뭉개지고 터질  같아  생각은 바로 접었다. 그렇게 서로 바로 헤어지는 것이 서로서로 깔끔했다. , 혹시 멸치들도 힘을 모아  잡아먹을 생각을 했을까. 모르겠다. 그래도 만나서 반가웠다. 한국의 멸치들아, 지금처럼 건강해라.


p.s 혹시 너희도 거기서 파도 타고 있었니?   

     



4. 듀공을 아시나요?

[Dugong]이라 쓰고 듀공이라 읽는 듀공. 소리 내서 말해보세요 듀-공. 저는 듀공을 만날 때까지 듀공이 듀공인지 몰랐어요. 그러니까 듀공이란 단어를 보고 이 친구의 모습을 정확하게 떠올릴 수가 없었죠. 여러분은 듀공을 아시나요?

인도네시아 발리섬 최남단에는 그린볼(Green Bowl)이란 포인트가 있습니다. 절벽 아래로 그림 같은 파도가 들어오는 곳인데 바다가 큰 수림(樹林)에 둘러싸여 있어 말 그대로 '그린 볼'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물이 맑아 수심이 있어도 바다 바닥의 리프가 한눈에 보일 정도로 자연친화적인 포인트예요. 자연친화적인 만큼 지상에서 바다에 가기 위해서는 산 길을 깎아 만든 수백 개의 계단을 내려가야 합니다. 그렇게 수백 개의 계단을 내려가면 눈앞에 광활한 바다가 펼쳐지는데요. 고진감래의 맛이 있어 제가 너무도 좋아하는 포인트입니다. 어느 날도 어김없이 계단에서 이미 탈탈 털린 하체를 붙들고 바다로 입수하는데 눈앞에 못 보던 매끈한 등들이 수면 위로 올라와 있는 것이 아니겠어요? 그 매끈한 등을 보니 과학책에서 본 포유류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고 하면 믿으실까요. 말을 보고도 소를 보고도 나오지 않았던 포유류라는 단어가 바다에서 나왔어요. 정말 그보다 포유류 같을 순 없었거든요. 듀공의 매끈하면서 듬성듬성 털이 붙은 등이 조금씩 올라왔다 내려갔다 하면서 제 눈앞에서 살아 숨 쉬고 있었어요. 그 숨 쉬는 등의 곡선을 눈으로 따라가다 보니 듀공의 실체 크기를 체감할 수 있었는데요. 그러고선 오. 마이-갓. 실제 육성으로 터져 나온 말이었습니다. 저는 살아오면서 육탄전이라고는 4살 터울인 친오빠와 해본 것이 전부예요. 실제 싸움 경험이 실로 적긴 하지만 누군가와 싸워도 이길 수 있다고 자신하며 모든 싸움에 최선을 다했던 제가 그 순간에는 온 피부로 느낄 수 있었어요. 대자연 앞에서 제 동물적 직감이 말했어요. 싸우면 내가 진다. 100퍼센트.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자마자 같이 패들 하던 로컬 친구를 붙잡고 소리쳤습니다. 아.. 나 이거 어떡해야 돼? 나 무서운데? 무서워! 하니 그 친구가 사람 좋은 웃음을 보이면서 괜찮아 가영, 쉬는 중이야. 괜찮아. 하며 너무도 쉽게 듀공 사이를 피해 패들링을 하더군요. 그렇게 온순하게 쉬고 있는 듀공들을 신기하게 바라보며 저도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서는 무사히 파도를 타러 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이후, 그린 볼가면 듀공 볼 수 있어! 하고 큰소리를 친 이후에 몇 번이고 다시 갔지만 그곳에서는 듀공을 다시는 만날 수 없었어요. 그날이 제가 듀공을 볼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날이었다면 듀공의 숨 쉬는 등을 조금 더 오래 바라보았을 거예요. 우리 조상에게 바다의 인어라고도 불렸던 듀공은 이제 전 세계적으로 멸종 위기에 처해있다고 해요. 제 눈으로 보고, 같은 바다에 떠있던 동물이 이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바다에서 저에게 위협을 가해도 괜찮으니 그대로 살아 오래오래 바다에 있어주었으면 합니다. 진심으로요.     

이제 듀공을 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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