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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하얀 봄밤 Sep 13. 2020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

《데미안》 헤르만 헤세


‘내 첫사랑은 데미안이었다’  

  

중학교 때 문학반에서 《데미안》을 처음 읽었다. 중학생 때는 단순히 스토리 위주로 내용을 이해했다면 중년이 되어 독서 모임에서 다시 읽었을 때는 인생의 나이테만큼 이해력도 깊어져 문장마다 곱씹게 되었다. 같이 토론한 오십 대 여교사가 ‘중학교 때 데미안이 첫사랑이었다’라고 했을 때 데미안을 처음 읽었던 때가 생각나서 웃음이 났다. 어렴풋이 ‘내게도 데미안처럼 생각이 깊고 어른 같은 친구가 있었으면…’ 하고 생각했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 책은 청소년, 청년뿐만 아니라 중년이 읽어도 좋은 책이다. 어린 시절부터 청년에 이르는 인생의 시기마다 데미안을 비롯해 여러 인생의 스승들을 만나 깨달음을 얻고 마침내 자아를 찾게 되는 과정이 아름답고 통찰력 있는 헤세의 문장에 담겼다. 싱클레어가 인생의 고비마다 얻은 통찰이 우리들의 인생과도 맞닿아있어 이 소설을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권하지만, 한편으로는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라는 주제는 성인들에게도 계속되는 인생의 질문이 아닐까.     


고전은 시대가 바뀌어도 인간에 대한 보편성을 이야기한다. 이 책의 시대적 배경은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격변기다. 하지만 책에서 전하는 메시지에 현대인들도 공감할 수 있다. 헤세는 데미안의 말을 통해 ‘어디서나 연합과 패거리짓기가 기세를 떨치고 있다고, 그러나 그 어디서도 자유와 사랑은 없다’고 제1차 세계대전 전후의 유럽을 비판했다. ‘한 번도 자신을 안 적이 없기 때문에 불안한’ 개인들이 공동체로 도피하면서 패거리짓기를 한다고 경고한 것이다.  


21세기를 사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대학 입학 논술고사를 치르러 가는 아들을 데리고 남편과 그 대학에 갔다. 아들을 시험장에 들여보내고 우리 부부는 오랜만에 대학 캠퍼스를 거닐며 잠시 낭만을 느껴보고 있었다. 그때 뒤에서 들려온 날카로운 어떤 남자의 목소리가 분위기를 깨뜨리고 말았다.


 “촛불집회 나오는 빨갱이 새끼들은 싸그리 다 죽여버려야 해!”     


말로만 듣던 ‘태극기 부대’ 아저씨였다! 우리한테 하는 말이 아닌데도 너무 무서워서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빨리 가자며 남편 옷소매를 끌고 그 자리를 피했다. TV에서 매일 보던 ‘태극기 부대’를 직접 마주치니 기분이 착잡했다. ‘내 생각만 옳고 나만 애국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일이 얼마나 위험하고 오만한 일인가!    


진정한 연대는, 개개인들이 서로를 앎으로써 새롭게 생성될 것이고, 한동안 세계의 모습을 바꾸어놓을 거야. 지금 연대라며 저기 저러고 있는 것은 다만 패거리짓기일 뿐이야. 사람들이 서로에게로 도피하고 있어. 서로가 두렵기 때문이야. 신사들은 신사들끼리, 노동자는 노동자들끼리, 학자는 학자들끼리! 그런데 그들은 왜 불안한 걸까? 자기 자신과 하나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불안한 거야. 그들은 한 번도 자신을 안 적이 없기 때문에 불안한 거야. (데미안, 민음사, 1997, p.182)    


제1차 세계대전 전후의 유럽이나 21세기인 지금이나 불안한 개인들이 패거리짓는 혼돈의 세상은 변한 것이 없는 것 같다. 비단 태극기 부대뿐만 아니라 진보와 보수로 분열되어 자기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절대 인정하려 들지 않는 요즘의 한국 사회를 보면 말이다.  


그렇다면 헤세가 바라는 이상적인 사회상은 무엇일까? 헤세는 작중 데미안의 입을 통해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혼돈기 사회의 젊은이들에게 ‘누구나 나름으로 목표를 향하여 노력하는 소중한 존재’라는 메시지를 주었다. 복잡한 현대사회를 살면서도 자신을 알고자 노력하고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개인들이 더욱 소중할 수밖에 없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은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다. (중략) 일찍이 그 어떤 사람도 완전히 자기 자신이 되어본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누구나 자기 자신이 되려고 노력한다.’ (데미안, 민음사, 1997, p.9)    


한 사람 한 사람은 살아가면서 자기 나름의 목표를 향하여 노력하는 소중한 존재다. 그래서 개인들의 이야기가 중요하고 어떤 경우에도 존중받아야 한다. ‘우리가 서로를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의미를 해석할 수 있는 건 누구나 자기 자신뿐’이라고 헤세는 이야기하고 있다.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우리도 모르게 허물을 벗고 알의 껍데기를 부수는 그 어려운 일을 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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