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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하얀 봄밤 Sep 13. 2020

교양인이 되는 법

《페터 비에리의 교양 수업》페터 비에리



교양이 있는 사람이란 자신에 대해 아는 사람, 그리고 그 앎을 얻기가 어째서 어려운지를 아는 사람입니다. (페터 비에리의 교양 수업, 은행나무, 2018, p.31)    


“이 책을 읽으면 나도 교양인이 될 수 있을까 해서 읽어봤어요.”


독서 토론 모임에 나온 어느 회원의 말에 우리 모두 까르르 웃었다. 책이 얇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을 것 같고 표지도 예뻐서 선택했는데 내용은 전혀 가볍지 않았다. 소감을 먼저 나누고 한 시간 동안 돌아가며 회원들이 책을 낭독했다. 눈으로만 읽다가 낭독을 하니 시각, 청각을 동시에 활용하는 색다른 느낌이었다. 회원들의 아름답고 개성 있는 목소리에 다시금 놀랐다. 그녀들은 새로운 독서 토론 방식으로 낭독을 한 경험이 신세계라며 좋아했다.     


어느 회원은 “평소 교양인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진지하게 나 자신에게 질문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라고 소감을 이야기했다. 다른 회원은 “철학책은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은 얇고 이해하기 쉬워서 좋아요. 독서 토론도 좋지만 낭독을 하니 색다른 경험이라 더 좋은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낭독하며 책을 읽으니 책의 내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묵독보다 책을 읽는 속도는 느렸지만 천천히 이해하며 읽을 수 있었다. 게다가 집중도 더 잘 됐다. 회원들이 돌아가며 읽으니 자기 차례를 놓치게 될까 봐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게다가 이해가 가지 않던 문장도 소리 내 읽으니 더 수월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독서 모임 회원들의 말처럼 교양인이 되고 싶은 것은 지식을 갈구하는 인간들의 보편적 의지일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 교양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는 어느 회원의 이야기처럼 말이다. 페터 비에리는 “교육은 타인이 나에게 해줄 수 있지만, 교양은 오직 혼자 힘으로 쌓을 수밖에 없습니다.(p.9)”라고 말한다.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유치원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남이 정해주는 교육에 의지해서 살아간다. 평생 남의 기준에 맞춰 공부를 좇다 보면 자신의 힘으로 교양을 쌓는 방법은 알지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성인이 되어서 하는 공부는 청소년기의 공부와는 달라야 한다. 청소년기의 공부가 남이 해주는 교육에 의한 타율적인 것이라면 성년기의 공부는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자율적인 공부여야 할 것이다.    


교육은 항상 어떤 쓰임새를 목적으로 합니다. 무엇을 하기 위해, 어떤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노하우를 습득합니다. 돈이든 권력이든 사회적 인정이든 목적이 무엇이든 상관없습니다. 그런데 교양은 다릅니다. 물론 교양을 축적하는 과정에서 어떤 능력이 따라오기도 하고 유용함을 가져다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는 교양의 결정적 특성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교양은 유용성을 포함하지 않은, 그 자체로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페터 비에리의 교양수업, 은행나무, 2018, p.38)    


페터 비에리는 이 험한 세상에서 희생당하지 않고 자신을 지키며 살기 위해서는 교양인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내가 진짜로 알고 이해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나와 다른 사람들이 알고 있다고 믿는 것 중에 그리 확실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p.15)와 같은 질문의 과정을 통해서 얻은 이차적 지식의 중요성도 이야기한다. 이런 질문들을 쉬지 않고 던질 때 우리는 교양인이 될 수 있으며, “논리적으로 그럴듯해 보이는 교묘한 강압이나 세뇌, 또는 사이비 종교로부터 자신을 굳건히 보호할 수 있다.”(p.17)라고 말한다.   

 

지식은 희생자가 되는 것을 막아줍니다. 뭔가를 알고 있는 사람은 불빛이 반짝거리는 곳으로 무작정 홀릴 위험이 적고, 다른 사람들이 그를 이익 추구의 도구로 이용하려고 할 때 자신을 지킬 수 있습니다. (중략)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보는 것입니다. 내가 진짜로 알고 이해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나와 다른 사람들이 알고 있다고 믿는 것 중에 그리 확실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꼼꼼히 장부를 검사하듯이 우리의 앎과 이해를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중략) 이런 과정을 통해서 얻어낸 지식을 이차적 지식이라고 합니다. (페터 비에리의 교양 수업, 은행나무, 2018, p.14~15)    


요즘 한국 사회에는 가짜 기사들이 넘쳐난다. 정보를 얻기 위해 자신이 직접 발로 뛰어서 취재하지 않고 남이 쓴 기사를 확인도 하지 않은 채 가져다 쓰는 기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진짜 기사와 가짜 기사를 올바른 감식안으로 가려낼 수 있는 독자들이 얼마나 될까. 페터 비에리는 교양인의 이차적 지식이 있고 없음에 따라 ‘믿을만한 언론인과 정보의 원천을 왜 의심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 무작정 갖다 쓰는 단순 무지한 기자로 구분’(p.15)된다고 말한다.     


우리는 가짜 기사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수 없을 만큼 혼란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스스로의 끊임없는 질문과 통찰로 얻은 나만의 기준이 있어야 삶을 책임 있게 살 수 있을 것이다. 교양인이 되는 길은 혼자 힘으로 깨우쳐야 하는 힘든 여정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나 자신부터 아는 것이다. 나 자신을 먼저 알아야 세계를 대면하는 방식도 깨우칠 수 있을 것이다. 페터 비에리도 ‘교양이 있는 사람이란 자신에 대해 아는 사람, 그리고 그 앎을 얻기가 어째서 어려운지를 아는 사람’(p.31)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는 자기 자신과 세계를 대면하는 방식으로서의 교양을 쌓는 방법을 자상하게 알려주고 있다. 안내를 차근차근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어느새 교양인의 고갱이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페터비에리#교양수업#교양인#지식#교육#교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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