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자뻑합시다

민박집 주인의 생업과 글쓰기 병행기

by 변방의 공돌이

민박집 주인의 생업과 글쓰기 병행기.
2015년 독립출판 한 <제주의 작은 작업실>은 절판 되었습니다.
책은 사라졌어도 글만은 남기고 싶어 브런치에 옮겨놓습니다.


책은 좋은 점이 참 많다.
몇 가지를 꼽자면 무료한 시간을 채워주고, 지적 수준을 향상시키며, 사고의 확장에 도움이 된다는 것.
매일 회사와 집만 오가며 바삐 사는 우리들은 소설을 통해서 인간의 본성과 사회의 명암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역사, 철학, 사회과학 도서를 읽음으로서 최소한 무지한 인간으로 생을 마감하게 되는 불명예스러운 최후는 방지할 수 있다.
하지만 세상의 어떤 가치도 어느 지점을 넘으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낸다.
언젠가부터 독서의 효용성 보다는 책 자체를 좋아하게 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꼽는 책의 좋은 점 중에서 최고는 인테리어 효과 되시겠다.
단, 한두 권만 있으면 효과가 없다.
되도록 벽 하나를 채울 정도는 되어야 책등의 문자와 그림과 색감이 서로 연결되어 그로테스크함을 발산할 수 있다.
물론 책도 일정량을 넘어가면 짐이 된다는 것.
세상의 어떤 가치도 어느 지점을 넘으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니까.

P1060287.jpg?type=w773




책으로 가득한 내 책장은 오래된 빌라의 칙칙함을 상쇄시키며 나름의 시각적 효과를 내고 있다.
그런 책장을 바라보고 있으면 가끔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저마다의 인지도와 공력을 자랑하는 저자들의 책들이 한데 모여 있는 것이 내 눈에는 신기하게 보인다.
저 속에는 노트에 줄만 그어도 출판사가 줄을 설 유명작가가 있는가 하면, 죽도록 쓰고 고친 원고를 들고 출판사에 줄을 서야 하는 작가도 있을 테니 말이다.
후자의 경우처럼 인지도 없는 저자의 글이 책으로 태어나 내 책장으로 들어오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사연이 있었을까.
집필을 끝낼 때까지의 정신적, 육체적 고난은 물론이고, 출판사들의 냉담한 반응까지.
수많은 출판사로부터 거절을 당하고도 자기 이름의 책이 나오기까지 저들은 무슨 힘으로 글을 썼을까.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인이라면 책 한 권 세상에 내 놓는 것이 뭐가 힘들겠냐마는, 어릴 때부터 백일장을 비롯한 온갖 글쓰기 대회를 휩쓸며 작가의 꿈을 키워왔다 한들(내가 그랬다는 건 절대 아니고) 유명세 없는 그저 평범한 보통 사람의 글은, 특히 나처럼 별 볼 일 없는 사람의 글은 애초부터 상품성이 훼손되어 있는 글인지도 모른다.

P1040936.jpg?type=w773




일 년 동안 써 온 원고를 고치고 고쳐서 여러 출판사로 메일로 보냈다.
출판사들은 하나같이 “우리는 바로 이런 원고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당장 계약합시다.” 라고 하지 않았다.
무심하게도 아무 응답이 없거나 거절 메일을 보내왔다.
형식은 다르지만 맥락은 비슷한, 그렇지만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는, 그리고 거절의 의사가 명확한 메일을.
그 후 지금의 출판사와 계약을 하기까지 고치고, 투고하고, 거절당하고를 수차례 반복했다.
한 다리 건너서 아는 출판계 종사자들에게 전해들은 바를 종합하자면, 내 원고가 책이 될 수 없는 이유는 무궁무진했다.
출판사의 입장에서 볼 때, 책의 주 구매층인 2, 30대 여성들에게 나는 그리 매력적인 저자가 아니라는 것.
아쉬우나마 팔로워가 10만 명 정도 되는 트위터리안도 아니라는 것.
출판계가 워낙에 불황이라 대부분 출판사들의 사정이 좋지 않다는 것.
감성팔이든 청춘팔이든 뭐라도 나에겐 팔 게 없다는 것.
결정적으로 내 원고의 내용이 대중적이지 않다는 것.
그렇다.
늘 시장에서 외면당하는 건, 남들 안하는 거 하겠다고 달려들거나, 허접한 걸 독창적이라고 우기는 것들이다.

2006_08_19_076.jpg?type=w773




출판이 힘들 거라는 현실을 직시한 순간, 내 글은 마치 쓰레기 같이 보였고, 뜬구름 잡는 헛지랄이나 하고 있는 내가 한심해지기까지 했다.
그렇게 비전 없이 시간 낭비나 하고 있는 나는 시장에서 외면당할 조건을 다 갖춘 허접한 작가 지망생일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의욕의 최대 적인 자기비하에서 벗어나기 위해 정신승리의 길을 택했으니 그건 바로 자뻑의 자세였다.
세상은 천재를 한 번에 알아보지 못하는 법이라 여기기로 한 것.
그러니까 내가 천재일 지도 모른다는 망상적 자뻑과, 초야의 숨은 고수를 알아보지 못하는 속세의 우매함을 안타까이 여기는 우월적 자뻑과, 내 글에 내가 감동 먹는 나르시시즘적 자뻑 말이다.
그것이 곧 시장 선호도 떨어지는 작가 지망생의 생존법 되겠다.
다소 민망하지만, 남들이 하도 안 해줘서 내가 내 글 칭찬 좀 하겠다는데 누가 뭐랄까.
욕구는 있으나 재능은 발견된 적이 없는, 혹평은 흔하게 들었으되 호평은 잘 듣지 못한, 어제도 썼고 오늘도 썼지만 내일은 쓸 기운이 없는 작가 지망생이 힘을 내기 위해서 가져야 하는 것이 자뻑의 자세 말고는 뭐가 있을까.
그것은 높은 벽 앞에서 겁을 먹고 선 자신을 감싸주려는 최소한의 연민이지 결코 자만이 아니다.

P1060833.jpg?type=w773




매거진의 이전글3. 글을 쓴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