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글을 쓴다는 것

민박집 주인의 생업과 글쓰기 병행기

by 변방의 공돌이

민박집 주인의 생업과 글쓰기 병행기.
2015년 독립출판 한 <제주의 작은 작업실>은 절판 되었습니다.
책은 사라졌어도 글만은 남기고 싶어 브런치에 옮겨놓습니다.



오래전부터, 글을 쓰는 작가는 모든 면에서 나와는 차원이 다른 경지의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었다.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깊을 뿐만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아주 넓은, 세속적인 학위와 무관하게 배움의 과정이 완성된 지적인 인간의 결정체로 생각해 왔다.
내가 잘 하고 싶은 걸 실제로 잘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가지는 경외감은 당연한 것이다.
수많은 작가들의 인터뷰를 보면, 일생을 글을 써 온 거장이라 하더라도 창작의 고통 없이 손쉽게 글을 쓰지는 않는 것 같다.
무언가 한 가지 이상은 결핍된 채로 내려주는 것이 재능인가 싶기도 하다.
그들은 매일 글 쓰는 훈련을 하고 영감을 얻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이리라.

작가란, 대단할 것 없는 집안에 한명쯤은 있으면 좋을 것 같지만, 밥벌이나 할 수 있을지 걱정하는 부모님을 걱정해야 하는 그런 직업인지 모른다.
자식이 작가라고 어디 가서 한번쯤 자랑할 수는 있겠지만, 정말로 자랑스럽게 생각할지는 의문이다.
국가공인 자격증은 없는 직업이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아무나 하기에는 생계 걱정을 안 할 수도 없는 것이 또 문제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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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글을 쓰며 살겠다고 제주도로 이주했지만 매일 민박집 일에만 메여 있었다.
민박집 일은 생각보다 여유롭지 않았다.
바지런히 청소를 끝내고 나면 손님이 입실하기 전 오후의 몇 시간 정도만이 민박집 주인에게 허락되는 자유 시간이었다.
그 시간이나마 집중하기 위해 청소가 끝나는 대로 서둘러 동네 카페로 가서 글을 썼다.
오전 내내 청소하느라 몸은 지쳐 있었고, 민박집 예약전화까지 받아 가며 글을 쓰다보면 그날 민박집 손님이 입실할 시간은 금방 와버렸다.
절대적으로 부족한 에너지와 시간 속에서 나는 매일 글을 썼고, 탈고를 했다.
그리고 한 출판사와 계약을 했다.
출판 계약을 하기까지 내 원고가 겪은 우여곡절은 무척이나 기구했다.
여기저기서 무시 받았고, 그럴 때마다 나는 시장이 원하는 이야기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사이에서 갈등 했다.
말할 수 없는 이유로 한 출판사와의 출판 계약이 무산되기도 했다.
내 원고가 책이 되어 세상에 나오기까지의 지루하고 기구했던 우여곡절은 기회가 된다면 다음에 차근차근 소개해 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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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침대에 누워서 TV 리모컨을 돌리고 있었다.
리모컨을 빙빙 돌렸다는 게 아니라 채널의 +버튼을 반복적으로 눌렀다는 뜻이다.
딱히 할 게 없는 시간을 채우는 데는 TV 리모컨만큼 유용한 물건은 없는 것 같다.
100개가 넘는 채널을 하나하나 넘기다 보니 이렇게 많은 채널은 누가 다 보는지 궁금했다.
이렇게나 다양한 세상 사람들의 관심사가 누군가에게는 아무 쓰잘때기 없을 수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채널은 목적지 없이 돌아가다가 한 곳에서 멈추었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가가 강연을 하고 있는 채널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평소에 즐겨보지 않는 예능프로였다.
안타깝게도 그 강연은 끝나가고 있었다.
그 소설가는 상처 받고 있는 청춘들에게 성공을 향한 주입식 교육의 연장선 같은 강연이나 하고 있을 사람이 아니었기에 강연 내용이 더더욱 궁금했다.
본방을 사수하지 못한 것이 안타까웠고, 예능프로를 좋아하지 않는 나의 편협한 채널 선호도를 반성했다.
그러나 지금이 어떤 시대인가.
토요일 오후부터 TV 앞을 지키며 재방송을 기다려야 하는 그런 시대가 아니지 말이다.
천 원만 결재를 하면 IPTV로 언제라도 다시보기를 할 수 있으며, 약간의 인내심으로 3주 만 기다리면 그 방송을 공짜로도 볼 수 있다.
돈도 없고 인내심도 없다면 인터넷에서 동영상 파일을 다운로드 받을 수도 있으니, 놓친 방송 다시보기에 가장 대중적인 그 방법은 불법치고는 너무도 간편한 것이다.
며칠 후, 나는 IPTV로 천원을 결재하고 그 방송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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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자는 두 명이었다.
그 소설가에 앞서 한 기업가의 강연이 있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을 성공이라는 보이지 않는 방울을 바라보고 살도록 선동할 게 뻔한 이야기를 굳이 듣고 싶지는 않았다.
결재한 천원의 절반 치에 달하는 분량을 미련 없이 빨리 감기로 넘겼다.
기업의 성장은 착취를 기반으로 한다고 생각하는 나는 기업가를 향한 시각이 경멸에 가깝다.
성공한 기업가랍시고 방송에 나와서 앞으로 자기가 착취할 대상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건 공적자산인 전파 낭비에 불과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소설가의 강연을 요약하면 내용은 이러했다.
“나는 소설가가 되기 위해서 힘든 시간을 참고 버틸 수 있는 시대를 살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지금 우리는 참고 버티면 지금보다는 나아질 거라는 기대치가 낮은 시대를 살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는 더 힘들어질 것이다. 성공을 통해 행복을 찾으려 하기 보다는 내면을 채우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설을 읽는 것을 추천한다.”
맞다.
오래 전, 내 방황의 방향을 가르쳐 준 것이 소설이었고, 방황의 끝은 낭떠러지가 아님을 확인시켜 준 것도 소설이었다.
소설 속에 잘 먹고 잘 사는 비법 같은 건 없었지만, 부자가 아니어도 잘 사는 사람들이 있었다.
길을 가르쳐 주지는 않았지만, 내가 아는 길이 길의 전부가 아님을 알게 해 주었다.
30분 정도의 그 강연은 쌓아도 쌓아도 끝이 없는 스펙인 줄 알지만 계속 쌓는 것 말고는 할 게 없는 청춘들에게 공감과 위로와 현실감을 일깨워 줬을 것 같은 명 강연이었다.

아직 날개를 펴지 못한 청춘들의 불안처럼, 세상에 일찍 나온 사람들의 미래 또한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지금은 그럭저럭 벌어먹고 살고 있지만, 나 역시 미래가 낙관적이지 않다.
제주도가 자가 성장하는 섬이 아니고서야 면적은 변함이 없을 테고, 여행자의 수는 한계가 있으며, 숙박업소는 섬이 터질 만큼 많이 생겼기 때문이다.
민박집으로 벌어먹고 사는 이 상황은 갈수록 나빠질 것이다.
그렇다고 사업을 확장하기에는 자산이 턱없이 부족하고, 어딘가에서 자금을 끌어올 수완도 없다.
로또 말고는 기댈 곳 없는 생계형 영세 자영업자의 미래가 어떨지는 불을 보듯 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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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은 지병과 같다.
완치가 불가능하고, 평생 관리를 해야 하는 지병.
하도 지긋지긋 해서 차라리 친구처럼 대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는 지병.
불안도 그런 것이지 모른다.
아무리 자기계발을 해도, 스펙을 쌓아도 떨쳐지지 않는 것.
우리는 뭘 해도, 뭘 안 해도 불안한 시대를 살고 있는 게 아닐까.
내가 글을 쓰고 싶어 하는 건, 불안 관리를 위해서 인지도 모른다.
달리 말하자면 변하지 않는 현실을 자포자기한 스스로에게 하는 위로랄까.
또 달리 말하자면 불안한 미래를 위해서 딱히 할 게 없으니 하고 싶은 것이나 하고 살자는 것이랄까.
대단한 필력의 내공도 없으면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야 말겠다는 욕심도 없으면서,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소설을 쓰고야 말겠다는 야망도 없으면서 뻔뻔하게 계속 글을 쓸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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