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종합선물세트

민박집 주인의 생업과 글쓰기 병행기

by 변방의 공돌이

민박집 주인의 생업과 글쓰기 병행기.
2015년 독립출판 한 <제주의 작은 작업실>은 절판 되었습니다.
책은 사라졌어도 글만은 남기고 싶어 브런치에 옮겨놓습니다.




도대체 이 책의 주제가 무엇인지 궁금해 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다.
작가도 아닌 것이 작가 코스프레 하느냐, 겨우 에세이 한 편 계약해 놓고 글 쓰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주제 넘는다고 생각하지 않느냐 라고 말이다.
자! 흥분들 하지 마시고, 제 말 좀 들어보세요.
글은 써야겠는데 나를 둘러싼 일상 중에는 어떤 이야기꺼리가 없네요.
제주도 정착기는 이제 철 지난 이야기 같고, 민박집 운영기는 해봐야 별 재미없을 것 같고, 그렇다고 ‘글을 쓰는 것이란’ 같은 거창한 주제를 다루기에 나는 자격미달이죠.
그래서 제주도에 정착해서 민박집을 운영하며 글을 쓰는 이야기를, 그러니까 맛도 없고 양도 적은 과자 몇 개 묶어서 종합과자선물세트로 팔면 그럴싸하게 보이는 것 같은, 그러니까 흔쾌히 사기는 망설여지지만 사 놓고 나면 든든한 기분이 드는 종합과자선물세트 같은 그런 책이랄까요.
죄송합니다.
이왕 돈 주고 산거니까 재밌게 읽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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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불분명이라는 어이없는 고백을 해버렸으니, 이번엔 철이 좀 지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지난 몇 년 동안 각종 미디어에서 수없이 다루었고, 이제는 뭐 특별하지도 않는 제주도 정착기 되겠다.
도시를 떠난 이유는 나도 남들과 별다르지 않았다.
뭐든지 빠르기만 한 도시를 벗어나 여유롭고 느린 삶을 살고 싶어서였다.
좀 다르게 말하자면, 죽도록 일은 하는데 회사는 왜 만날 어렵다고 하는지, 직원들이 벌어다 준 돈은 대체 어디로 갔기에 회사가 망하려고 하는지, 그런데 우리 위에서 갑질하던 대기업에는 왜 돈이 차고 넘치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만날 야근에 주말근무까지 해 가며 몸도 마음도 피폐해져야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노른자 상가의 세입자가 죽도록 일해 봤자 비싼 월세 내느라 건물주 주머니만 채워주는 꼴인 것처럼, 나 역시 잘 사는 것들 주머니만 채워주는 개미떼의 일원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 와중에도 우리끼리는 여왕개미에게 충성경쟁이나 벌이고 있는 꼴이었으니, 더러워서 회사 못 다니겠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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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위해서는 타락한 경제체제를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아무리 뛰어도 그럴 수는 없다.
가진 자들의 손아귀에서 조금이라도 멀어지고 싶었을 뿐이다.
그렇다고 산 속에 들어가서 땅 파고 사냥하며 먹고 살 수도 없다.
우리 모두는 이미 타락한 경제체제의 일부가 되어 버렸으니까.
지금까지 살면서 동네 마트나 식당, 고객센터, 버스기사, 청소부, 판매원, 수리기사, 배달원에게 혹은 하청업체에게 갑질 한번 안 해본 사람 있나?
만약에 있다면, 대한민국은 본인도 모르는 새 의도치 않은 갑질, 진상질 하고 살 수 밖에 없는 사회임을 모르고 있을 테다.
먹이사슬의 아래쪽에 있는 우리는 우리보다 더 약한 사람을 괄시하고 무시하고 짓밟으면서 살아가고 있다.
우린 모두 다 똑같은 것들이다.
우린 모두 못돼먹었다.
가진 자나 못 가진 자나 타락한 경제체제에 매몰되어 있는 이 사회는 그래서 앞으로도 언제나 불합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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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 정착한지 3년.
이 시골 마을의 식당 종업원은 다소 불친절하고, 동네 마트에서는 썩은 채소도 팔고, 도로는 운전규칙을 모르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모는 트럭으로 무법천지다.
하지만 섬에 살면 그렇게 되는 것인지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이다.
도리어 우리에게 밥을 팔아주는 것만으로도 그 식당에 감사해 하고, 잡자마자 늑대인간으로 변신되는 운전대의 주요기능이 작동하지 않는 신비로운 경험에 놀라울 따름이다.
나뿐만 아니라 이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다 그렇다.
어디 가서 불친절과 서비스 부족을 이유로 갑질이라도 하려 했다가는 미친놈이 된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그동안 보고 느낀 제주도의 시골마을에는 천박한 계급체계가 없다는 것이다.
갑질은 신분제가 유지되고 있다는 망상 속에서 발현 되는 것.
생계형 트럭과 에쿠스가 나란히 서 있는 반석빌라의 주차장이 존재하는 제주도 시골에는 갑질이 존재하지 않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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