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작가인 듯 작가 아닌 작가인 척 하는 나

민박집 주이의 생업과 글쓰기 병행기

by 변방의 공돌이

민박집 주인의 생업과 글쓰기 병행기.
2015년 독립출판 한 <제주의 작은 작업실>은 절판 되었습니다.
책은 사라졌어도 글만은 남기고 싶어 브런치에 옮겨놓습니다.



민박집 주인에게 겨울은 비수기, 여유, 노는 날들의 연속, 생활비 걱정 등 일치하지 않는 의미의 몇 가지 단어들로 정의된다.
오늘은 뭐하고 놀지를 고민하다가도 생활비 걱정에 한숨이 나오기도 한다.
그래도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을 만나면 자연스레 위로가 되는 법.
이웃 민박집의 주인들을 만나서 수다를 떨다 보면 요즘처럼 손님이 없을 때나 놀지 언제 노냐고 하나같이 입을 모은다.

겨울의 어느 평범한 아침.
공복에 커피를 좋아하는 나는 휴일임에도 불구하고 아침 일찍 일어나 커피를 내렸다.
전기 주전자에 물을 끓이고, 원두를 갈고, 드리퍼에 필터를 끼우고......
드리퍼 아래로 뚝뚝 떨어지는 커피를 보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베란다 창 너머의 당근밭에 눈보라가 몰아치고 있었다.
창문이 덜컹거릴 정도로 거센 바람을 타고 내린 눈은 이내 당근밭을 뒤덮었다.
눈은 내리지 마자 녹아버리지 않고 당근밭을 새하얗게 뒤덮었다.
그것은 지금 제주도는 연중 최저 기온인 0도라는 뜻이다.
제주도가 이 정도면 서울은 얼마나 추울까.
내복에 니트에 패딩에 목도리에 장갑에 털모자까지 쓰고 걸어가며 입김을 뿜어댈 서울 사람들의 출근길은 얼마나 추울까.
그렇게 눈만 빼꼼 내놓고 걸어가던 오래전 나의 출근길 또한 얼마나 추웠던가.
혹한의 출근길이 얼마나 괴로운지 잘 알기에 집 안이 더 따뜻하게 느껴졌다.
따뜻한 커피를 놓고 작은 작업실에 앉아 있는 나는 안락하다 못해 괜한 죄스러움까지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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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외환위기가 고조에 달해 가던 때 나는 대학 졸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때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던 나는 이 나라는 곧 공무원 우대의 시대가 올 것임을 예견 했다.
취업 재수생 선배들은 나라의 녹을 먹고 사는 사람이 되기 위해 매일 도서관에서 공무원 수험서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국고는 비어버렸지만 그 창고를 관리하는 사람에게는 녹봉을 준다고 하니, 밥벌이도 안 되는 대학졸업장 따위 미련 없이 잊어버리고 9급 공무원 시험에 매진하고 있었다.
선배들은 몇 번의 시험에 응시 했고, 합격자 발표 후에도 계속 도서관을 지켰다.
저렇게 열심히 공부해도 되기 어려운 것이 공무원이라면, 앞으로 이 나라의 공무원은 최고의 엘리트 집단이 되거나, 아니면 이 나라의 엘리트들은 전부 공무원 시험 준비나 하고 있을 것 같았다.
세상에 일 년 내내 밤낮으로 “얄리얄리얄라셩 얄라리얄야” 같은 걸 외워도 동사무소에서 등본 떼 주는 일도 하기 어려운 세상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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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과잉학습의 연령은 더 낮아져 이 나라의 영유아들은 한국말을 떼기도 전에 영어를 배우게 되었다.
더 나아가 자전거를 탈 줄 알게 될 즈음의 아이들은 한국어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언어를 배우러 외국으로 떠나 가족이 생이별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내 자식의 직업은 내가 정한다는 오만방자한 부모가 판을 치게 되었으니, 가족해체와 애정결핍 그리고 “글로벌 리더”라는 새로운 직업군을 등장시킨 IMF의 영향은 이 나라에 실로 큰 재앙이었다.

정부에서는 나를 받아줄 것 같지 않았다.
공무원이 아닌 직업을 구하기 위해 불특정 다수의 기업에 무차별적으로 이력서를 살포 하는 노선을 걸었다.
이메일 접수, 현장 접수, 우편 접수 등 각각의 방식을 고수하는 기업들에 맞춰서 하루는 우체국에서, 하루는 내 방의 컴퓨터 앞에서, 하루는 버스를 타고 그 기업을 방문하며 바쁜 졸업시즌을 보냈다.
약 300통에 달하는 이력서를 무차별적으로 살포한 결과 딱 한 회사에 최종 합격을 하였으니, 많고 많은 인재들 중에서 하필이면 나를 채용한 그 회사가 참으로 딱했다.
힘든 취업 전쟁에서 살아남은 나는 첫 월급을 받고 부모님께 내복을 사 드렸다.
처음으로 받아본 월급 명세서는 이제부터는 자력으로 생존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나의 독립선언문 같았다.
그리고 그 내복은 따뜻했던 부모님의 품을 떠나는 자식의 작별 선물 같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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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만원.
에세이 원고의 계약금이다.
처음으로 글을 써서 번 돈이었으니 작가 지망생인 나에게는 아주 의미 있는 돈이었다.
부모님께 내복을 사드렸던 첫 월급보다 어쩌면 더 의미 있는 돈인지도 모른다.
의미 있게 쓰고 싶었다.
예를 들면 내가 글을 쓰는 동안 밥을 차려주고 음식물 쓰레기를 비워가며 가사노동을 한 워니에게 선물을 한다던가, 탈고되지 않은 내 원고를 읽고 소감을 말해준 친구에게 근사한 저녁을 산다던가, 아니면 읽지도 않을 세계문학 전집을 사던가 말이다.
하지만 그 돈은 없다.
통장에 들어오자마자 카드 값으로 빠져나가 버렸다.
그 돈이 어떤 용도로 사용되었는지는 나도 알 길이 없다.
금액으로 따져보면 민박집 보일러에 들어간 두 드럼 정도의 기름 값으로 치면 딱 맞겠다.
그러니까 오랫동안 작가 지망생이었던 내가 글을 써서 번 첫 번째 수입은 민박집을 운영할 두 달 치의 밑천으로 사용되고 만 것이다.
그 돈이 의미 없이 사용된 것은 아니다.
민박집 겨울 영업의 철칙은 첫째도 난방, 둘째도 난방이기 때문이다.
춥다고 소문나면 손님이 끊긴다.
보일러 빵빵하게 돌려가며 민박집으로 돈을 벌어야만 오늘도 쓰고 내일도 쓰고 모레도 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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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업 작가로 산다는 건 어떤 삶일까.
겨울 비수기나 불경기를 신경 쓰지 않고 묵묵히 글을 쓰는 것만으로도 생계가 가능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게 가능하다면 하루하루 시달리게 될 창작의 고통은 또 어느 정도일까.
우리는 작가라는 직업에 지나친 경외감을 갖고 있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까지 든다.
독자는 독자대로, 글쟁이는 글쟁이대로 작가라는 직업에 대한 기준이 분분하다.
때론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기도 한다.
문예지를 통해 등단을 해야만 진정한 작가다 부터, 등단을 했더라도 장편소설을 한 편 쓰지 않고서는 작가라고 할 수 없다, 그리고 작가가 별거냐 뭐라도 쓰면 그게 작가지 까지.
등단 여부로 진골과 성골을 따지는 그쪽 세계의 관례 같은 것이 어쩌면 의사나 변호사 같은 사람들이 가지는 선민의식과 비슷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밤낮 없이 글을 쓰는 작가 지망생들의 뜨거운 열정과, 글 쓰는 삶을 부러워하는 독자들을 보면 작가라는 직업에 부여된 경건하고도 근엄한 인식이 당연한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어디 가서 나를 소개할 때, 민박집 주인이라고 하지 글을 쓰고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작가세요?” 라고 돌아오는 질문에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라서다.
나는 그 질문에 함축되어 있는 몇 가지 의미들에 부합하는 인간도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작가가 별건가 뭐라도 쓰면 작가지라고 생각하는 쪽이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에게 나는 작가 코스프레나 하고 있는 사람으로 비춰지는 것이 싫다.
글을 쓴다는 것은 청소부가 쓰레기를 치우고, 조적공이 벽돌을 쌓고, 도장공이 페인트칠을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청소를 잘 하든 못하든, 벽돌을 잘 쌓든 못 쌓든, 페인트칠을 잘 하든 못하든 어쨌든 그들은 청소부고 조적공이고 도장공이다.
글을 잘 쓰든 못 쓰든, 남에게 인정을 받든 못 받든 어쨌든 지금 이 순간에 글을 쓰고 있는 작가 지망생들은 스스로 본인은 작가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는 것 아닌지.

사실 별 의미 없다.
뭐가 됐든 글을 쓰면 되는 것이지 작가면 어떻고 아니면 또 어떤가.
나라에서 작가 수당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말이지.
추운 겨울, 작은 작업실에 앉아서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작가인 듯 작가 아닌 작가인 척 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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